기영이(1)
다시 기영이의 주먹이 진방이의 광대로 향했다.
떡! 진방이의 광대와 그 주변으로 순식간에 빨갛게 멍이 올라왔다.
기영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그 무렵에도 정현네 집은 아직 가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해마다 이삿짐을 쌌고, 그러다 보니 정현이 다닌 초등학교만 네 군데였다. 5학년 때 전학 간 곳이 서국초등학교였고, 기영은 거기서 정현이 처음 만난 아이였다.
전학 온 첫날부터 기영은 정현을 이상할 만큼 자연스럽게 받아줬다.
새 학교, 새 교실, 처음 보는 얼굴들 틈에서도 정현도 원래 적응이 꽤 빠른 편이었지만, 기영은 뭔가 남달랐다. 어디를 가도 금방 중심이 되는 애들이 있는데, 기영이 딱 그랬다.
공부도 상위권이었고, 운동도 잘했다.
밝고 명랑했고, 목소리에는 늘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날렵한 눈매에 훤칠한 키, 사람을 끌어당기는 리더십. 무엇보다 축구를 너무 잘했다. 그래서 그 시절 기영의 별명은 호나우두였다. 브라질의 천재 스트라이커. 그 이름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운동장에서의 기영은 진짜 빛이 났다.
한 번은 옆 반과 반대항 축구를 할 때였다.
기영이 공을 잡고 치고 나가면 수비수들이 정말 양옆으로 갈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중앙선 근처에서부터 혼자 몰고 올라가더니, 깊게 들어오는 태클을 가볍게 피해냈다. 몸이 공보다 먼저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대로 골대 앞까지 질주한 기영은, 골키퍼가 방향을 읽는 순간 반대쪽 구석으로 낮고 빠르게 공을 깔아찼다.
철썩.
공이 그물에 꽂혔다.
그게 그날 기영이 혼자 만들어낸 일곱 번째 골이었다.
“야, 새끼야. 너 진짜 호나우두 아니냐?”
“아까 돌면서 수비수 제치는 거 봤냐?”
“골키퍼 가지고 놀다가 넣는 건 또 뭐고.”
아이들이 침이 마르도록 기영을 칭찬했다.
이상하게 정현은 그 칭찬이 마치 자기 몫인 것처럼 들렸다. 기영이 자기랑 제일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방과 후, 둘은 늘 그렇듯 같이 집으로 걸었다.
“야, 우리 집 갈래?”
“그럴까? 게임기 해도 돼?”
“아니, 안 돼. 아빠 와 있어.”
기영 아버지는 선장이었다. 동네 앞바다에 나가는 작은 배가 아니라, 한 번 나가면 반년에서 일 년씩 먼바다를 돌고 오는 큰 원양어선 선장이라고 했다. 그래서 기영네 집에는 대체로 아버지가 없었고, 기영 엄마와 동생 가영이만 있는 날이 많았다.
가영이는 아직 어렸다.
오빠들보다 한참 어린 나이였고, 그래서 더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정현이 저녁까지 놀다 가로등 주위로 하루살이들이 빙빙 돌기 시작할 때쯤 집에 가려고 하면, 가영이는 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오빠 안 가면 안 돼? 우리 집에서 자고 가면 안 돼?”
“오빠 또 놀러 올게.”
그 말을 남기고 문을 나서면, 뒤에서 곧장 가영이 울음이 터졌다.
정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가곤 했다.
몇 번 본 기영 아버지는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걸걸했다. 눈썹은 짙고 위로 치켜 올라가 있었고, 눈은 깊었고, 코는 유난히 컸다. 콧수염부터 구레나룻, 턱수염까지 이어져 있어서 어린 정현 눈엔 만화영화에 나오는 악당 같기도 했다. 게다가 집에 있을 때는 늘 똑같았다. 늘어난 러닝셔츠에 팬티 차림. 그게 정현이 기억하는 기영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기영은 그런 아버지가 엄하긴 해도 좋다고 했다.
마셜군도에서 폭풍을 만나 죽을 뻔한 이야기, 바다 위에서 해적 같은 놈들과 맞붙었다는 이야기, 항구에서 본 이상한 나라들 이야기. 기영은 아버지의 무용담을 마치 자기 일처럼 신이 나서 떠들었다.
정현은 그럴 때마다 큰아버지를 떠올리곤 했다.
아마존에서 벌목 사업을 했다며 신기한 외국 동전을 주고, 자신을 한국의 인디아나 존스라고 불렀던 사람. 결국엔 그 큰아버지 때문에 집안은 큰 빚을 떠안고 무너졌지만, 어린 정현에게 그 기억은 여전히 반짝이는 구석이 있었다.
그날도 그런 생각을 하며 둘은 기영네 집으로 들어갔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친구도 왔어요.”
기영이 먼저 큰 소리로 인사했다.
“어, 그래 왔냐? 정현이도 왔어?”
뜻밖에도 아저씨는 정현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네, 아저씨. 잘 다녀오셨어요?”
“그래. 정현이 아버지가 선생님이시라며?”
“네.”
“그래서 그런지 인사성이 참 밝구나.”
“감사합니다.”
“기영이랑 사이좋게 지내라. 기영이 많이 도와주고.”
“네.”
뭘 도와주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었다. 그래도 아저씨가 자기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고, 기영이랑 계속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도 싫지 않았다.
그런데 아저씨 말투는 무심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날이 서 있었다.
정현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공연히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드는 종류의 목소리였다. 기영은 그 옆에서 별렇지도 않게 신발을 벗고 방으로 먼저 들어갔다. 원래 늘 그런 집인 것처럼.
그때 정현은 한 가지를 눈치챘다.
늘 자기를 반갑게 맞아주던 기영 어머니가 그날은 집에 없었다.
부엌 쪽도 이상하게 조용했다. 냄비 끓는 소리도 없고, 라디오도 없고, 가영이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영이는?”
정현이 묻자 기영은 방문을 열며 툭 대답했다.
“몰라.”
너무 짧고 아무렇지도 않은 대답이라, 정현도 더 묻지 않았다.
둘은 방에 들어가 가방을 던져두고 드래곤볼 만화책부터 꺼냈다.
그 무렵 드래곤볼은 셀의 등장으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고, 초사이어인이 된 손오공 일행은 거의 종교였다. 그건 단순한 만화책이 아니라 대화였고, 생활이었고, 하루의 일부였다.
기영은 그림도 잘 그렸다.
익숙하다는 듯 얇은 모조지를 드래곤볼 위에 덧대더니 손오공을 그대로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에네르기파를 쏘는 손오공이 종이 위에 완성됐다.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서툴던 정현 눈엔 그게 거의 묘기처럼 보였다.
“기영아, 넌 커서 만화가 될 거야?”
“아니. 난 엄마처럼 화가가 되고 싶어.”
“엄마가 화가야?”
“아니, 지금은 아니고. 예전에 미술 전공했대.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결혼하면서 포기했대.”
기영은 선을 긋던 손을 멈추지 않은 채 그렇게 말했다.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그 말을 여러 번 혼자 되뇌어본 애처럼.
정현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엄마들도 꿈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너무 당연한 얘기인데도 이상하게 낯설고 신비롭게 들렸다.
“아, 그래? 멋지다.”
“그래도 만화는 그릴 거야. 드래곤볼보다 더 재밌는 거.”
“좋아. 난 네 첫 번째 독자 할게. 대신 야한 장면도 많이 넣어.”
“그래. 야한데 재밌고, 재밌는데 신나고, 신나는데 박진감 넘치는 만화.”
둘은 그 말이 너무 웃겨서 한참을 깔깔댔다.
늦은 오후 빛이 방 안으로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다.
모조지 위의 손오공, 책장에 꽂힌 만화책들, 침대 맡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양말, 웃다가 뒤로 넘어가는 기영의 얼굴.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게 멀쩡해 보였다. 아니, 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반짝거려 보였다.
그래서 정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날이 마지막일 줄은.
기영의 웃는 얼굴을 그렇게 오래 보는 것도, 그 집에 놀러 가는 것도.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기영 어머니는 집을 나간 날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정현은 한참 뒤,
기영의 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게 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