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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짝꿍텝 Oct 06. 2024

송곳(2)

사랑일까?

학기 초 첫 조회시간, 교실 안 아직은 어색한 공기가 가득한데 교탁 앞에 꽤 뚱뚱하지만 왠지 살 속에 근육이  상당할 것 같은 작고 다부진 선생님이 서있다. 그는 국어과 선생이자 우리 반 담임인 김영락 선생으로, 순둥순둥, 동글동글한 외모에 네모난 안경, 5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백발이다. 이 모든 것이 슬램덩크의 안 선생님을 닮아 있어서 그는 별명이 안 선생님이었다(김선생인데 별명은 안선생).


담임은 2학년에 올라가자마자 첫 날 나에게 임시 반장을 시켰는데, 학기 초가 지나고 좀 한가할 때 하겠다던 반장선거 없이 담임은 그냥 나보고 계속 반장을 하게 했다. 귀찮았던 것이 틀림없다. 한 번은 왜 나를 반장을 시켰느냐고 물어보니 ‘네가 우리 반에서 1학년때 성적이 제일 좋던데?’라고 했다. 납득할만한 이유였기에 그렇게 그냥 나는 그런가 보다 하게 되었다.


“반장”


“야, 나도 내 이름 있거든?”


“눠 이음이 반장 아늬야?”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나한테 실실 웃으며 장난을 거는 이 녀석의 이름은 김충근이다. 일반적인 애들보다 약간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친구였는데 학기 초에 애들한테 발음 이상하다고 놀림당하는 것을 말려준 이후로 나한테 굉장히 의지를 하는 녀석이다. 발음이 어눌하고, 공부를 못하는 것 외에 이 녀석도 다른 녀석들과 딱히 다를 게 없었지만 별종 취급을 당하는 이유는 4교시까지만 같이 수업을 듣고, 5-6교시는 ‘특수반’이라는 비슷한 지적수준을 가진 애들과 함께 수업을 들으러 가는 까닭에서였다. 선생님은 내게 충근이가 특수반에 잘 찾아갈 수 있도록 점심시간이 끝나기 5분 전까지 해당 교실로 충근이와 함께 동행하라고 말씀하셨다.


“충근아”


“나 이름 정현이잖아. 조. 정. 현 어제도 알려줬잖아. “


“아?! 늬가 정현이야? 반장이 아늬야?”


“아니, 반장이야. 반장 맞는데 이름이 정현이라고.”


“그래, 반장 맞아. 반장. 맞지? 반장?”


“어… 그래 반장 맞아.”


충근이를 특수반 교실에 데려다주고 다시 우리 교실로 돌아가려는데 충근이가 나한테 손을 흔들었다. “반장 잘 가~ 반장~ 곰아워~” 내가 뭐 특별히 잘해주는 것도 없는데 충근이는 나에게 매일같이 고맙다고 말한다.


“어, 충근아. 수업 잘 들어~“


딩. 동. 댕. 동


오늘따라 5교시 시작종이 빨리 울린다. 나는 서둘러 교실로 달려가려는데 마침 경고문이 눈에 들어온다. ‘교내 정숙’ 나는 서두르면서도 최대한 발소리가 나지 않게 총총걸음으로 다시 교실로 황급히 향했다. 5교시는 영어 시간이다. 영어과목의 김재덕 선생님은 눈매가 얇고, 얼굴도 작고 길쭉한 편에, 입술도 얇은 편이라 뭔가 얍삽해 보이는 인상의 선생님이었다. 종 치고 나서야 들어오는 나를 살짝 쳐다보더니


“얼른 앉아라 속 안 좋아도 종 치면 일단 끊고 오고~ 들어와서 다시 손들고 화장실 갔다 온다고 해라.”


“특수반 동행 다녀왔어요. “


“그래 특수임무 하느라 고생했다. “ 그는 시답지 않은 농담을 건넸다.


김재덕 선생님은 재미없는 농담을 던져놓고 안 웃으면 웃을 때까지 계속해서 농담을 던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보통 쓴웃음을 지어주고 ‘하. 하. 하.’라고 소리를 내주고는 한다. 그의 수업 방식은 너무나 신박한 것이었기에 잠깐 소개한다. 2학년 1학기 첫날 김재덕 선생님은 우리에게 동아 출판사에서 나온 우리의 영어 교과서 맨 뒤 단어정리 된 부분을 펴라고 했다.


“자, 여기에는 총 1천2백 단어가 수록되어 있는데 지금부터 1달 동안 너희는 이 단어를 다 외우게 될 거야. 다 외웠는지 확인하는 방식은 매주 화요일 그리고 목요일마다 이 중에서 무작위로 약 백 단어씩 문제를 낼 거야. 그리고 틀린 개수대로 발바닥을 맞는다. 쉽지?  질문 있는 사람?  없지? 오~케이. “


그 뒤로 진짜 매주 두 번씩 100문제의 영단어 퀴즈가 출제되었고, 정말 틀린 개수대로 발바닥을 주걱으로 맞았다. 선생님은 첫날밤에 신랑을 거꾸로 매달고 식구들과 친구들이 발바닥을 두들겨 주는 것이 정력을 향상해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고, 몇몇은 선생님이 말하는 정력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을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정말 쪽지시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짝꿍이랑 바꿔서 채점했지? 1번부터 쭉 앞으로 나오면서 시험지를 낸다. 교탁에 발 올리고 틀린 개수 큰 소리로 외쳐. 두 가지 방법이 있어. 10개 이상 틀린 놈들은 10개짜리 슈퍼파워 한 대로 맞을지, 잔잔하게 10대로 맞을지 골라. 알겠지? 자 1번. “


“12개요. 슈퍼파워요.”


“오~케이”


떡!!!!!!!!!!!! 따닥!


예상 못할 만큼 강력한 한 대를 맞은 녀석이 나머지 연타가 발에 닿자마자 윽 소리와 함께 자신의 발을 움켜쥔 채로 마치 번개 맞은 사람처럼 굳은 채로 교탁 아래로 굴렀다. 나를 포함한 아이들의 얼굴이 굳었다.


“자, 지금부터 피하거나 넘어지는 놈은 두 배~ 2번“


“7개요.”


따다다다다다닥


“다음”


”40개요. 잔잔하게요. “


따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10개요. 슈퍼파워요.”


떡!!!!!!!!!!!


나는 딱 하나 illegal(불법의)이라는 단어에서 l을 한 번만 써서 틀렸는데 우리 반에서는 제일 많이 맞춘 경우였다. 그러나 가장 많이 맞췄다고 해서 특별대우는 없었다. 경쾌한 손목스냅을 통해 딱! 한 대를 맞았는데 발바닥에 전기가 찌릿하고 흘렀다. 첫 주에는 이렇게 단어시험 보고 발바닥 맞다가 한 시간이 다 끝났다. 선생님은 지친 기색 없이 웃는 얼굴로 그야말로 신나 하며 아이들의 발바닥을 후려갈겼다. 선생님의 손목 스냅을 보며 나는 곁 눈으로 시곗바늘을 응시했다. 무려 10초당 약 30대에서 32대를 갈겨대는 굉장한 솜씨였다. ‘아, 저 인간은 남 발바닥 때리려고 태어났나?’‘


“이게 다 정력에 도움이 되는 거야. 나중에 졸업하면 스승의 날 감사하다고 선물 사들고 올 거다. 다 선생님이 너희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


나는 그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 입꼬리 한쪽이 묘하게 올라간 것을 보면서 저 선생은 변태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한 번 맞고 나니 아이들의 영단어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등하굣길에 수첩에 단어장을 만들어서 외우고 다녔고, 쉬는 시간에도 여기저기서 단어 뜻과 스펠링을 외우는 아이들이 생겼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자 거짓말처럼 반 아이들의 대부분이 1200개나 되는 단어를 줄줄 외우는 수준이 되었다. 외삼촌이 지난번에 군대 가서 ‘처맞으면 다 된다 ‘라고 이야기했었는데, 그 말이 바로 이거구나’라는 것이 선험적으로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The chief joseph surrendered to the american army…”


선생님의 교과서 읽는 소리가 이제 자장가로 들려오는 목요일 식후 지옥의 5교시 나는 눈꺼풀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18번!”


번호가 18번이었던 영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뒤에 “


그 뒤에 앉은 것은 나였다. 나는 반쯤 졸다가 벌떡 일어났다.


“다음 부분 읽어.”


“야… 어디야?” 나는 소곤 거리며 짝꿍인 규호에게 물었다. 규호는 당연히 자신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고, 나는 당황하는 얼굴로 선생님을 쳐다보려는데 분필이 날아와 이마 정중앙에 꽂혔다. 딱!  


“야.. 내가 해태 투수로 갔으면 선동렬이도 벤치나 달궜을 텐데 말이야.” 선생님이 고소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짝꿍“


그 사이에 주변에 수소문을 해서 읽던 곳을 알아낸 규호가 일어났다.


“넌 뒤로 나가서 손 들고 있어.”


“Chief Josheph was shocked….”


규호의 다소 떨리는 목소리를 뒤로한 채 나는 터덜터덜 교실 맨 뒤의 사물함 쪽으로 걸어 나갔다. 집중하라고 교실 뒤로 내보내는 것은 선생님의 희망사항일 뿐 보통 학생들은 교실 뒤에 서게 되면 온갖 잡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나 역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잠시 내 허벅지에 닿았던 여학생의 엉덩이 감촉, 당황해서 귀와 목덜미까지 빨갛게 익어버린 그녀의 얼굴이, 그리고 갑자기 출발하는 버스의 반작용으로 내 쪽으로 덮쳐오던 장면이 슬로 모션으로, 무엇보다 그 정체를 분명히 알 수 없는 샴푸 냄새가 아련하게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아 손등으로 얼굴의 온도를 재봤다. 제법 손등으로 전해오는 체온이 뜨끈했다.


딩동댕동~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반장~“


“네. “


“네가 반장이야? 반장이 집중 안 할래?”


“죄송합니다. “


“됐고, 이따가 유인물 애들 나눠줄 거 있으니까 교무실 들러.”


“네”


드르륵 탁 선생님이 교실에서 나가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너 오늘 진짜 뒤져볼래? “


“야, 이 씨발새끼야. 안 놔? 이 개 호로자식이. “


“네가 먼저 놔 이 씨발놈아.”


창가 뒷자리에 않는 기영이랑 진방이가 서로 죽일 듯이 노려보며 서로의 멱살을 잡고 안 놔주고 있었다.


“이 창녀 새끼가.”


“너 지금 뭐라 그랬냐?”


“느그 엄마 창녀라고 했다.”

 

짝! 진방이의 손바닥이 기영이의 얼굴을 크게 돌려 버렸으나 여전히 둘의 손은 서로의 멱살을 단단히 잡은 상태였다. 두 명 주위로 반 아이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다시 기영이의 주먹이 진방이의 광대로 향했다. 떡! 진방이의 광대와 그 주변으로 순식간에 빨갛게 멍이 올라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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