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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짝꿍텝 Oct 27. 2024

송곳(5)

담임 선생님의 분노


담임은 양호실 안에 들어가 잠시 진방이를 살피더니 김재덕 선생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말 그대로 그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덕포 시내에다 작은 꽃가게를 여셨다. 아빠의 월급 상당 부분은 빚보증 때문에 차압을 당하는 상황이었고,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외가에서 엄마에게 가게를 차려준 것이었다. 가게의 이름은 ‘녹색의 공간’으로 엄마의 감수성이 담긴 이름이었다. 엄마는 수요일이면 아직 여명이 밝아오기도 전에 일어나서 수십 킬로를 트럭으로 달려 꽃시장이라고 불리는 도매시장에서 당일 출하하는 싱싱한 꽃들을 사 오고는 하셨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을 아들의 담임 선생님 교무실 책상에 올리라며 싸주고는 하셨다.


나는 그것이 참 싫었다. 후우... 상상해 보라 남자 중학교 2학년이 꽃을 들고 학생들이 가득한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는 모습을… 나는 꽃이 안 보이게 큰 가방에 숨겨서 자전거로 학교에서 가장 일찍 등교하고는 했다. 아들을 잘 봐달라고 촌지를 찔러주시기에는 지나치게 정직하셨던 부모님, 스승의 날이 되면 늘 일종의 충성 경쟁이 있었지만 부모님 두 분은 늘 내게 정성스러운 편지를 쓰게 하시고, 예쁜 카네이션을 가져가게 하셨다.


담임 선생님은 간혹 내가 자신의 책상에 놓아둔 꽃이 얼마나 자신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지 내게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하고는 하셨다. 나는 쑥스러웠지만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허허허 정현아 네가 꽂아둔 후리지아 꽃 향기가 너무 좋아서 여선생님들도 다 한 번씩 내 자리에 들러서 향을 맡고 가시더라. 어머니께 항상 고맙다고 전해주렴.”


"네, 선생님. 엄마가 선생님 좋아하는 꽃 있으시면 말씀하시래요."


"허허허허허. 그래, 정말 감사하구나. 허허허 허허허 허."




아이들의 농담이나 짖꿎은 장난에도 늘 허허거리기만 하던 담임 선생님의 얼굴이 꼭 가부키 공연에서 쓰는 오니탈처럼 변했다. 붉으락 푸르락 하는 선생님의 얼굴을 보니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담임은 힘줄이 잔뜩 올라온 커다란 팔로 김재덕 선생의 멱살을 쥐었다. 단추 몇 개가 후드득 떨어졌는데, 다시 고쳐 잡자 김재덕 선생의 셔츠가 가슴께까지 올라가고 하얀 배가 드러났다. 옆에서 보는 내가 살이 떨리도록 무서운 감정이 들었는데, 저 손에 잡힌 김재덕 선생은 어땠겠는가… 이것 좀 놓고 이야기하자는 김재덕 선생님의 말을 철저히 무시한 채로 그렇게 담임은 김재덕 선생을 그야말로 질질 끌로 양호실 문 밖으로 나갔다.


"정현아, 너는 거기 그냥 진방이랑 함께 있어."


따라나서려는 내게 따라오지 말라는 손짓을 했고, 결국 양호실에는 양호 선생님, 나, 진방이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 양호 선생님은 진방이에게 일단 지혈만 해뒀으니 병원에 가서 상처 부위를 꿰매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아마 열 바늘 이상은 꿰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양호 선생님이 교무실에 연락을 해서 오후에 빈 시간이 있는 기술 선생님이 진방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담임과 김재덕 선생님의 이후를 목격한 몇몇 아이들의 말에 의하면 담임이 교직원용 화장실로 김재덕 선생님을 데리고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고 했다. 안에서 고성과 함께 굉장한 소리가 났었다고 했다. 몇몇 아이들은 담임의 숨겨진 박력에 매력을 느꼈다고 했고, 몇몇 아이는 교사가 학교에서 폭력을 쓰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잘못한 것이라는 알지도 못하는 소리를 했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일일이 김영락 선생님은 잘못이 없고, 먼저 부적절한 폭력을 쓴 것은 김재덕 선생님이라고 단단히 일러뒀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어~ 그래. 정현아...?"


오늘은 엄마 가게일을 돕기로 해서, 방과 후 곧장 꽃집으로 향했는데, 엄마가 내 얼굴을 보고 그 자리에 그만 주저앉았다. 마침 엄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던 고모도 노발대발했다. 저녁엔 아빠가 오셔서 전후 사정을 듣고 교육청에 진정을 넣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이 일이 크게 번지는 것이 왠지 걱정스러워서 일단 그러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저녁에 자려고 누웠는데 엄마가 내 퉁퉁 부은 얼굴에 연고를 발라 주시다가 눈물이 터져 나와서 한참을 내 옆에서 울다가 가셨다.


그리고 다음날 진방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대신 진방이 아버지가 오셔서 교무실에서 난리를 피웠다는 이야기만 들려왔다. 이틀 후 진방이가 학교에 들어왔을 때는 모자를 쓰고 왔다. 상처 부위를 꼬매기 위해서 그 부분의 머리를 밀었다고 했다. 나와 사건에 연루된 아이들 그러니까 진방이, 정후, 그리고 기영이 네 사람은 교장실에 한 사람씩 각각 불려 갔다. 내 차례가 되어 교감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교장실로 향했다. 교장실 문을 똑똑하고 두드리니 안에서 중후한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안녕하세요.”


교장실 특유의 원목 냄새와 은은한 녹차 향 같은 것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교장실 한편의 커다란 괘종시계의 초침 가는 소리가 무겁게 똑딱거릴 때마다 손에서 땀이 날 것만 같았다. 교장 선생님은 나를 소파에 앉도록 하시고 차를 마시겠냐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래, 정현아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를 좀 해줄래?”


“네,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나는 진방이가 기영이 엄마를 창녀라고 불러서 싸움이 났던 것부터 해서 자세히 이야기를 해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은 담임인 김영락 선생님과 영어과목인 김재덕 선생님 간의 싸움에 대해서만 궁금해했다. 나는 그 싸움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에 일어난 일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고 주장했지만, 교장 선생님은 그냥 내가 목격한 선생님들의 싸움에 대한 것을 설명해 달라고 했다. 특별히 누가 먼저 폭력을 가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나는 담임이 먼저 김재덕 선생님의 멱살을 잡았지만 그것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고 교장 선생님은 그런 내 말을 중간에 잘랐다.


“그래, 알겠다. 수업에 들어가렴.”


“아니, 교장 선생님 그런데 진짜 김영락 선생님은 잘못이…”


“알았다. 네 말 잘 알았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어른들의  일은 어른들에게 맡기고, 너희가 신경 써야 할 일은 학업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네…”


교장실을 나서려고 문을 여는데 문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문 앞에서 다시 휙 돌아서서 이야기했다.


"김재덕 선생님이 먼저 무자비하게 저와 아이들을 때렸어요. 김영락 선생님은 저희가 다친 것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런 거예요. 아무 잘못이 없어요."


이 말을 하는데 왠지 모르게 우와악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교장 선생님께 김영락 선생님이 이 일로 처벌받아서는 절대 안 된다고 단단히 이야기하고 교장실을 도망치듯 나왔다. 나와서 교실로 향하는데 문을 제대로 닫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기로 했다. 나는 돌아가는 길에 그 사건이 있었던 교직원 화장실에 들렀다. 내부를 살펴보니 소변기 한 개가 새것으로 교체되었는지 기존의 것보다 눈에 띄게 깨끗해 보이는 것 외에 다른 점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한숨이 나왔다.




방과 후 교문을 나서자마자 교문 좌측에 있는 분식집에서 나는 정후와 함께 허겁지겁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이 "정감"이라는 이름의 분식집은 하교 시간에 맞춰서 산더미처럼 튀김을 쌓아놓고, 컵 떡볶이, 컵 탕수육, 어묵 등과 함께 음식을 파는 곳이다. 튀김과 어묵 메뉴의 경우 따로 주문하는 것은 없고, 그냥 그 앞에 서서 실컷 집어먹고 계산할 때 '~개 먹었어요.' 하면 아주머니가 그만큼만 돈을 받는다. 전에 한 번은 한 3학년 선배가 내 눈에 최소한 다섯 개는 먹었는데, "두 개요." 하고 그만큼만 돈을 내고 가려고 해서 "형, 더 먹은 거 같은데요?"라고 했다가 그 선배는 머쓱해하며 세 개어치 돈을 계산하고 간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그 선배가 마주칠 때마다 나를 째려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아서 명찰의 이름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 박.주.성.


"야, 조정현이~~"


"어~"


"너 표정이 왜 그렇게 구리냐?"


"그럼 니 면상은 왜 그렇게 구리냐?"


"아~ 진짜. 야, 기분 풀고. 교장이 너한테도 김영락 선생님이 먼저 때린 거냐고 물어봤다며?"


"어, 기분 진짜 더럽더라. 제일 심하게 당한 건 우린데..."


"야... 그게 영어가 오늘 8반 수업 들어왔는데, 깁스하고 들어왔다는 것 같던데?"


"진짜야? 김재덕이 수업을 했어?"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정후에게 되물었으나 정후는 의외로 그게 대수냐는 듯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어, 근데 왜 담임은 안 나올까?"


"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나는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담임이 벌써 이틀째 학교에서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야, 피시방 갈래?"


"난 피시방 안 다니잖아."


"안 다니는 게 어딨어, 오늘부터 다니면 되지."


"야, 스타크래프트 2... 아니 브루드워 나온 거 알지?"


"내가 어떻게 알아. 해 본 적이 없는데."


"야, 모르면 닥치고 들어봐. 이게 외계인이랑 괴물이랑 인간이랑 세 종족이 싸우는 거야. 나는 저그라고 괴물종족으로 플레이하거든? 저그에 럴커라는 캐릭터가 새로 나왔는데, 시바 다른 종족들 지나갈 것 같은 자리에 이 럴커를 땅에 박아 놓찮아?"

정후는 아예 침을 튀겨가며 흥분해서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해댔다. 나는 순간 좀 지겹게 느껴졌다.


"아... 뭐.... 모르는 이야기 좀 그만해."


"이 럴커가 샥샥~ 이렇게 두 번 지나가면 마린 같은 애들은 그냥 다 몰살이야."


"어쩌라고~"


"함 하러 가자고~"


"응, 안 가. 근데 넌 중간고사 준비 안 하냐? 그렇게 놀면서 경찰대학 잘도 가겠다."


"난 천재라 너처럼 열심히 안 해도 되거든?"


"내가 너한테 시험으로 진 적이 있던가?"


"아, 새끼 공부 잘한다고 겁나 뻐기네."


"어, 공부 못하는 새끼랑 이야기하니까 바보 옮을라고 한다. 나 갈게~ 잘 가라~"


"야, 야야."

돌아서서 집으로 가려는 나를 정후가 다급히 잡아 세웠다.


"아 왜?"


"내가 깜빡했는데, 나 그 누나 봤다?"


"누구?"


"김소연, 덕포여상 1학년 짱."

학교 이름을 들었을 때 바로 연상되는 사람이 있었지만 나는 짐짓 모르는채 했다. 뭔가 쑥스러워서였다.


"응?"


"아 왜, 그 네 무릎에 앉아서 너랑 꽉 부둥켜안았던 그 누나."


"아... 그 이름이 김소연이었어?"


"응, 같이 다니는 누나가 이정희 누난데 둘이서 제일 잘 나가. 그 학년에선 건드릴 사람 없고, 덕포공고 성훈이 형 알지? 졸업하면 오거리파 스카우트 1순위잖아."


"그런 걸 네가 어떻게 다 알아?"


"아, 우리 자라도 출신 형 중에 덕포공고 다니는 형이 있어. 김병희라고 그 형이 다 말해줬지."


"근데 그... 소연이 누나를 어디서 봤다고?"


"왜? 보고 싶냐? 또 막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아예 이번엔 키스하게?"


"미친놈이... 아니 네가 봤다고 해서..."


"알고 싶냐? 알고 싶으면 사회 노트 정리한 거 보여줘."


"알았어, 어디서 봤다고?"


"사실 나 그 누나 앞으로 자주 볼 것 같아."


"진짜로?"


"어, 그 누나를 어디서 봤냐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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