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포공업고등학교
너네 따라 나와. 오늘 뒤졌어. 너네 경흥 중이지? 씨발놈들 오늘 집에 못 갈 줄 알아라.
갑작스럽게 뒤통수를 맞은 정현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할 틈도 없이, 그는 정후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고등학생 무리 사이에 끼여 좁은 피시방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앞에 둘, 뒤에 셋.
다섯 명이 앞뒤로 에워싸고 있어 도망칠 틈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앞의 두 명은 정현과 정후보다 작았지만, 뒤쪽 셋 가운데 하나는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일 만큼 덩치가 좋았다. 나머지 한 명은 눈썹의 색이 몹시 옅은 건지, 아니면 면도한 건지 몰라도 눈썹이 거의 없어 보여 더욱 인상이 사나웠다.
정현은 최대한 빨리 상황을 읽으려 했다.
1층에 도착하자마자 앞의 셋을 밀치고 튄다. 골목만 빠져나가면 길은 익숙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돌아다니던 동네였다. 문제는 정후에게 그 신호를 어떻게 주느냐였다.
그때였다.
덩치 큰 놈의 교복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김영광.
정현은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아주 짧게 멈칫했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이름 같았다. 낯익었다.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 누군가 떠들어댔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 입에서였는지, 왜 기억에 남았는지는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걸 더듬어 볼 틈도 없이 정후가 먼저 움직였다.
계단 끝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정후는 앞쪽 세 명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더니 아무 신호도 없이 몸을 날렸다. 짧게 숨을 들이쉰 다음, 맨 앞의 녀석 허리를 발로 걷어찼다. 그 발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반대 발이 옆에 있던 다른 놈 가슴팍을 후려쳤다.
두 놈이 순식간에 계단 아래로 굴렀다.
남은 한 놈도 피할 틈을 놓쳐 발을 헛디뎠고, 셋이 한꺼번에 뒤엉켜 굴러 떨어졌다.
“이 새끼가!”
뒤에 있던 김영광이 손을 뻗어 둘을 붙잡으려 했다. 정현은 본능적으로 몸을 앞으로 던졌다. 입안까지 심장이 튀어 오를 것 같았다. 그는 정후와 함께 계단을 박차고 뛰어내렸다.
골목으로 접어들자 살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튀는 것.
두 사람은 숨도 못 고르고 달렸다. 하지만 몇 걸음 못 가 정후의 뒷덜미를 김영광의 손이 먼저 덮쳤다.
정현의 머릿속에 욕이 번쩍 스쳤다.
자라새끼, 달리기 느려서는.
정후는 잡힌 채로도 허둥대지 않았다. 몸을 반쯤 틀어 김영광을 돌아보더니 오른팔을 크게 위로 휘둘러 상대 팔을 아래로 찍어내렸다. 그리고 그대로 자신의 오른손으로 김영광의 팔을 등 뒤로 꺾어버렸다.
“아, 아아… 좀 놔봐. 야, 놓으라고…”
김영광이 몸을 털어내다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정후는 그대로 앞으로 김영광을 힘껏 밀어버렸다. 한 팔이 꺾인 채 떠밀린 김영광의 얼굴이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어디 가려고, 이 새끼들이!”
그제야 도착한 김영광의 일행들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녀석들은 오히려 둘 쪽으로 골목을 좁히듯 들어왔다. 머리를 짧게 밀어 더 사납게 보이는 한 놈이 먼저 정후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정후는 그 움직임을 재빨리 보고 몸을 틀어 팔을 비틀어낸 뒤, 상대 옆구리에 무릎을 꽂았다. 녀석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곧이어 그 옆에 있던 눈썹 없는 놈이 정현 쪽으로 돌진해 왔다.
그는 정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정현은 급히 두 손을 내밀어 막아 보려 했지만, 거의 동시에 반대 손 주먹이 복부를 강하게 때렸다. 숨이 턱 막히며 몸이 순식간에 새우처럼 접혔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상대의 발끝이 턱을 향해 날아왔다.
정현의 머릿속이 하얗게 흔들렸다.
“정현아!”
정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정후는 다른 두 놈과 엉겨 붙은 채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바닥에 넘어졌던 김영광도 이를 악물고 다시 몸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여기서 무너지면 끝이었다.
정현은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오히려 머리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눈썹 없는 놈이 다시 달려들었다. 정현은 중심을 낮추고 몸의 힘을 뺐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한 유도. 선수 생활을 했던 시절, 코치는 늘 비슷한 말을 했다. 상대가 무겁다고 겁먹지 마라. 중심만 무너지면 몸은 날아간다.
상대의 오른손이 다시 뻗어왔다.
정현은 그냥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의 오른팔 소매와 가슴께 옷깃을 동시에 움켜쥔 채 그대로 자신의 몸 후면을 상대의 전면에 완전히 밀착시켰다. 허리를 낮추고 등을 들이밀며 중심을 실었다. 순간 상대의 체중이 발끝에서 뜨는 느낌이 왔다.
지금이었다.
정현은 몸을 비틀며 끝까지 끌어당겼다.
“쾅!”
몸이 공중으로 들렸다가 그대로 아스팔트에 처박혔다.
습관처럼 마지막에 손을 끌어당겨 충격을 조금 줄여 주긴 했지만, 녀석은 윽 소리조차도 못 낸 채 몸을 기역자로 접고 꿈틀거렸다.
그 큰 소리에 모두가 잠깐 얼어붙었다.
정현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정후야, 튀어!”
정후는 김영광 일행을 힘껏 밀쳐내고 재빠르게 돌아서며 골목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반사적으로 뒤따라오려 하는 듯했지만, 정후와 정현은 이미 빠르게 골목 끝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얼마나 내달렸을까.
더 이상 김영광 일행이 뒤를 쫓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둘은 국제서림 사거리 근처의 캔모아 건물 공중화장실에 들어갔다.
정현은 언제 찢어졌는지 턱 아래 피가 교복 상의를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정후는 아예 교복 상의 단추가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뜯겨 나가 있었다. 안에 티셔츠를 입고 있지 않았더라면 몸이 그대로 다 노출될 정도였다.
둘은 엉망이 된 얼굴로 세수를 했다. 입 안도 여기저기 터졌는지 물로 입안을 헹구는데 핏물이 나왔다. 조금 전 일이 진짜로 자신이 겪은 게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충격적이었지만, 상처와 통증이 그 사건을 증명하고 있었다.
정후가 세면대에 손을 짚은 채 물었다.
“야, 조정현이~ 너 아까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정현이 물을 뱉고 고개를 들었다.
“뭐가?”
“아니, 막 그 사람을 공중에 집어던져버리던데?”
“아, 그게 업어치기라는 거야.”
“와, 지리더라.”
정현은 피식 웃었다.
“자라, 너야말로 고등학생들하고 해도 힘이 전혀 안 밀리던데?”
“난 원래 지구최강이고.”
그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정후 녀석의 입이 귀에 걸렸다.
“지구는 모르겠는데, 중고등학생들 중에서는 너 이길 놈은 없을 것 같긴 하다.”
“ㅋㅋㅋㅋㅋㅋㅋ.”
정현도 웃었다. 그러다 문득 다시 표정이 가라앉았다.
“근데 괜찮을까?”
“뭐가?”
“아까 내가 매다 꽂은 놈…”
정후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괜찮지 않을까? 야, 너는 니 대가리를 발로 깐 놈을 걱정하는 거냐 지금?”
“태권도 배운 것 같던데? 발차기가 그냥 휘두르는 게 아니더라고. 다리가 쭉쭉 찢어지는 게…”
“나도 아까 니 대가리 날아가는 줄 알았어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둘은 한참을 웃었다. 웃음이 멎을 즈음, 정후가 조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정현아, 그래도 오늘 너 없었으면 나도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정현은 민망한 듯 손등으로 코 밑을 슥 문질렀다.
“뭐래 닭살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정후와 정현은 서로를 마주 보며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 집에 가는 버스를 함께 기다렸다.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정후는 계속해서 자기가 공중에서 두 명을 발로 찬 걸 봤냐며 벌써 무용담을 만들고 있었다. 정현은 그런 녀석을 보며, 뭔가 함께 전쟁에서 싸운 전우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
“자라야.”
“응?”
“담임… 학교 돌아오겠지?”
정후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도?”
“만약 안 돌아오면?”
“흠… 돌아오겠지…”
정현은 잠시 도로 쪽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 만약에 담임선생님 안 돌아오면 교장실이든 교육청이든 찾아가려고…”
“니가 간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냐?”
“뾰족한 수는 없지… 그렇다고 뭉툭하게 살 순 없잖아.”
정후가 짧게 웃었다.
“치… 그래, 그게 조정현이지.”
잠시 말이 끊겼다.
정현은 낮게 물었다.
“야, 영어 팔 부러진 거 우리 담임샘한테 맞은 거겠지?”
“아마도? 그런데 김영락 선생님도 이유가 있었잖아. 진방이도 그렇게 됐고… 우리도 많이 맞았고…”
정현은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왜 영어가 기영이한테는 손을 안 댔을 것 같냐?”
정후가 인상을 찌푸렸다.
“글쎄… 그것도 그렇네? 기영이 엄마가 학부모 대표라 그런 건가? 촌지? 뭐 그런 거?”
“자세한 건 모르지만 차별이 있었던 것은 맞지?”
“그렇지… 뭐 우리 반 애들도 다 기영이는 특별대우 한다고 그러고…”
정현은 마음속에 계속 품고 있던 의혹과 걱정들이 정후와 대화를 하면서 조금 더 구체화되는 것을 느꼈다. 막연했던 불쾌감이 점점 문장으로 바뀌는 느낌이었다.
왜 기영이만 예외였을까.
그 생각에 잠겨 있던 정현을 향해 정후가 몇 번이나 소리쳤다.
“조정현!!!”
“응?”
“아니, 몇 번을 불렀어ㅋㅋㅋ.”
“아 그래?ㅋㅋㅋ 내가 잠깐 생각에 빠졌네?”
“너도 소연이 누나 보러 갈 거냐고.”
정현이 눈을 깜빡였다.
“응? 그게 무슨…??”
“내 말 하나도 안 들었냐?”
“어… 미안.”
정후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청송학원 수학 단과반에 들어갔거든?”
“어? 거긴 고등학생들 반만 있다던데?”
“하… 이 새끼 뭘 모르네. 선행학습 모르냐? 선. 행. 학. 습.”
“중학교 수학도 나보다 못하면서 뭔 선행학습?”
“야,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 거기서 덕포여상 애들도 본다니까?”
정현은 괜히 목을 한 번 삼켰다.
정후가 그걸 놓칠 리 없었다.
“몸 달았네, 완전.”
“닥쳐.”
“소연이 누나도 가끔 온다던데?”
정현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정후는 다 안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자주 보다 보면 정들고, 정들다 보면 말도 트고, 말 트다 보면 같이 떡볶이도 먹고, 그러다 사귀고, 그러다 결혼하고…”
“야, 미친놈아. 어디까지 가냐?”
“왜, 나는 큰 그림 보는 남자다.”
“너나 많이 봐.”
“여하튼 내일 같이 가는 거?”
“내일?”
“응.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바로 그때였다.
호주머니 안의 삐삐가 진동을 울렸다.
웅— 우웅—
정현은 본능적으로 호주머니 쪽을 눌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