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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Jul 19. 2023

수선화 머리핀

남편 첫 선물

17년 전 남편과 연애할 때.

멀쩡히 다니던 미국 대학원 수료하고 귀국하여

서른 넘어 신학 하겠다고 공부하는 남자,

뭐 볼 게 있다고.


집에서 받는 적은 용돈도

서른 넘은 나이에 눈치가 완치인지라

데이트 비용도 잘 내지 못하던 남자,

뭐 볼 게 있다고.


직장 든든한 남자들보다 밝았던 미소

돈 팍팍 쓰는 남자들보다 맑았던 눈빛

곁에서 바라보는 마음이면 충분했네.

그거면 볼 거 다 되었네.


함께 동대문에 왔다가

당시 수선화 패턴에 꽂혀있어

맘에 들어하는 나에게

없는 돈 탈탈 털어 사준 머리핀.


만 원대였어도 그에겐 큰돈인 걸 알아

친구들이 남친에게 받았단

명품백이나 반지도 부럽잖은

내겐 가장 귀한 머리핀.


머리핀 사용법이 퍽이나 어려워

어찌저찌 머리핀을 도저히 쓸 수가 없어

몇 번 하지도 못하고 간직했더니

누렇게 변색이 됐건만.


17년 지난 이제야

지금 머리 길이에 딱 맞게 잘 고정이 된다.

흰 수선화가 세월을 입어 누렇게 됐지만

내겐 가장 소중했던 우리 시절의 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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