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억울하지 않기로 해요.
학군지의 한 초등학교에서 영어강사로 5년 일했습니다. 영어학원이나 과외수업에서 만나는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들에 많이 놀랐던 기억이 생생해요. 당시에는 막 결혼해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시기여서 에너지 넘치는 초등학생들의 학교생활이 참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일단, 아이들이 생각보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이 당황스러웠어요. 학군지이고 영어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이 분명한데도 의외로 서툴더라고요. 그전엔 학원이나 과외로 레벨이 비슷한 친구들을 가르쳤던 터라 학교에서 아이들의 영어실력에 큰 편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런데도 제법 많은 아이들이 본인의 영어실력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점이었어요. 중고등학생들을 10년 가까이 가르치며 스파르타식 영어교육과 입시 스트레스에 절어있던 제 눈에는 그저 그들이 귀엽기만 했습니다.
‘몇 년만 더 있어봐라, 요놈들아.’
초등학교 영어 수업 시간에는 재미있는 게임과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합니다. 팀으로 경쟁하는 게임도 자주 하지요. 같이 도와가며 한 목소리를 내어 그저 즐겁게 진행하면 되는 일인데, 아이들은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굉장한 불만을 표출했어요. “너 때문에 졌잖아!” 매일 반마다 한두 번은 들을 수 있는 짜증이었습니다. 과도한 경쟁심. 이 부분 또한 참 낯설게 느껴졌었지요.
정말 놀랐던 또 하나의 기억은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영어에 대한 뿌리 깊은 불안을 갖고 있는 점이었어요. 틀린 단어를 말할까 봐 걱정하고 잘못된 문장을 만들까 봐 노심초사했습니다. 계속 옆 친구 눈치를 보며 힐끔거리는 아이들에게 “왜 그래, 못 고르겠어?” 물으면, “뭘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앞에 나온 예시 중에 아무거나 골라 빈칸만 채우면 되는 간단한 활동인데도 아이들은 선뜻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망설였습니다. 다른 공부도 그렇지만 외국어를 배울 때는 ‘언어 감정’이라는 것이 참 중요한데 말이에요. 자신감 없이 점점 영어와 거리를 두는 아이들이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4학년 영어교실에서 만났던 한 친구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그 친구는 어머님께서 중학교 영어선생님이라고 했습니다. 영어연구대회에서 상을 타실만큼 영어교육에 진심인 어머님이라고 하더군요. 4학년인 그 친구의 영어실력도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약간의 부주의함이나 실수는 있었지만 학교교과를 아주 잘 따라가는 착한 친구였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매번 저에게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영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요.”
영어 가르치는 사람한테 한 번도 아니고 매일매일 영어가 제일 싫다고 하다니. 참 눈치도 없는 녀석일세. 어느 날은 한 번 작정하고 물어보았어요. “왜 영어가 제일 싫어? 잘하고 있는데, 왜?” “저는 진짜 나름 열심히 하거든요, 근데 엄마가 맨날 너 정도는 다 한다고 뭐라 해요.” “아, 정말? 엄마는 네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셔서 그런가 봐.” “아, 몰라요, 저는 진짜 열심히 하는 건데, 엄마는 맨날 더 잘하래요. 그래서 영어 진짜 짜증 나요.”
아이는 이미 영어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였습니다. 잘한다고 수업마다 칭찬하고, 도장을 찍어줄 때도 두 번 세 번 찍어주며 웃음을 주려고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일주일에 두 번, 40분씩. 그게 제가 아이에게 내줄 수 있는 응원의 시간 전부였으니까요. 충분히 잘할 수 있는 학생인데 안타까웠습니다. 다음 해에는 그 아이가 속한 학년을 담당하지 않았고 아이를 다시 만난 것은 2년 후, 아이가 6학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아이는 고작 초등학교 6학년, 한창 에너지 넘치고 아무 생각 없이 떠들고 놀아야 하는 나이였지요. 그런데 일주일에 세 번, 40분씩. 우리가 만나는 그 시간에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었어요. 의욕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꽤 괜찮던 영어실력은 아래로 아래로. 4학년 때의 실력보다도 못한 성취도를 보일 정도였어요. 답답한 마음에 걱정되어 담임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이가 수업시간에 활동에 참여하려고도 하지 않고 대답도 잘하지 않으려 해요. 혹시 교실에서도 그러나요?”
아니길 바랐지만 담임선생님의 답은 “네, 교실에서도 비슷해요. 작년 담임선생님께 여쭤보니 작년에는 조금 괜찮다가 점점 애가 무기력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그 친구는 졸업하는 순간까지도 영어교실에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4학년 때는 영어가 싫다는 표현을 밥 먹듯이 하는 어쨌든 적극성을 지닌 아이였는데, 6학년때는 아무 말도 없는 인형 같은 아이가 되어 중학교에 들어간 것이죠.
“저는 영어가 제~~~일 싫어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을 그 후에도 많이 만났습니다. 대개는 누군가에게 ‘넌 영어를 왜 그렇게 못하냐!’ ‘너 때문에 게임 졌잖아!’ ‘아! 왜 네가 우리 팀인데, 선생님! 팀 바꿔주세요! 얘 있으면 진단 말이에요!’ 이렇게 억울한 소리를 자주 듣는 아이들이에요. 빈번하게 타박받고 비난의 소리를 듣다 보면 ‘내가 진짜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구나’ 싶어지고 속상하고 우울한 기분이 들게 마련이지요. 기분은 곧 성격으로 굳어집니다.
아이들은 모두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합니다. 과정과 성취에 가장 민감한 사람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아니라 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들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 모래로 집도 지을 거예요. 못한다 못한다 하면 벽돌을 수 백 장 갖다 줘도 벽을 쌓지 않을 겁니다. 아이들을 억울하게 하지 말아요. 그런다고 잘하지 않습니다. 과정을 즐기고 성취를 가늠하는 아이로 키워야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영어가 싫어 입을 닫고 싶은 아이에게 다정히 말을 겁니다.
“정말? 쌤도 영어가 싫을 때가 있는데. 근데 쌤은 영어가 좋아지는 방법도 알거든. 근데 너의 노력이 필요해. 많이 말고, 아주 쪼~꼼만 말이야. 쌤이랑 쪼꼼만 같이 노력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