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마음 Nov 19. 2023

연인 | 하찮고 시시하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우리 시대의 장혁과 길채를 응원합니다 




애청했던 드라마 ‘연인’이 끝났다. 순간 최고 시청률은 무려 14.5% 기록을 남겼다. 매회, 마지막 장면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좀처럼 가시지 않은 여운의 정체를 더듬으며 글로 남겨 본다.    

 

드라마는 남녀 간의 애절한 사랑에 머물지 않았다.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의 소용돌이, 백성과 자식보다 자신의 안위가 우선인 왕 인조, 그 속에서 고통당하는 백성들의 애환, 자식의 죽음을 방치하는 비굴한 아버지 인조 왕과 장철(주인공 장혁의 아버지)은 매회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위태롭게 한다. 대본과 연출, 연기까지 호평받고 있는 드라마 ‘연인’은 매회 절망과 희망을 오가며 시청자들을 긴장케 하고 다음 회를 고대하게 한다.     




안아줘야지 괴로웠을 테니     



주인공 장현의 역할을 한 남궁민의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자신의 상처를 고백한 길채를 위로하며 건넸던 "안아줘야지 괴로웠을 테니"였다. 그는 "연기자로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었는데 힘들고 지쳐있는 분들께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고 장현의 진심이 잘 느껴졌던 대사 같아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라며 그 감상을 전했다.     


많은 시청자가 그 장면을 보며 마음이 먹먹했을 것이다. 억울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고백했을 때 판단과 비판, 오해와 편견이 난무했던 경험 한 가지씩은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보다 조건과 소유가 우선인 세상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안아주며 그 괴로움을 먼저 헤아려주는 장현 앞에서 길채의 모든 벽은 허물어진다.     






하찮고 시시하게   


  

여성이 먼저 청혼한 첫 사극의 기사 타이틀이 보인다. 유길채는 뻔한 것은 싫다며 “저와 혼인해 주셔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내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라며 장현에게 청혼한다. 이는 보통 남자들이 하는 대사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전복시켜 길채 여주인공의 대사로 바꾼다.


이에 대한 장현의 답변이 더 인상적이다.     


“능군리로 갑시다. 이제 우리 거기서 돌덩어리, 풀떼기처럼 삽시다. 하찮게, 시시하게, 우리 둘이”    

 

병자호란이라는 배경은 사랑조차 쉽게 할 수 없게 만든다. 시시하게 하찮고 살고 싶어도 살지 못했던 백성들, 시시하고 하찮게 보이는 일상은 그들에게 기적이었다. 어딘가에 널려 있는 돌덩이, 흔하디흔한 풀떼기처럼 살기도 쉽지 않았던 시대였다.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는 대사였다. 하찮고 시시하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올까.     





고향으로 보내줘    



장현은 고향이 없다고 늘 말한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 고향이 생겼다. 조선에 남으면 죽는다면 자신과 함께 청나라에 가자는 각화에게 죽더라도 자신은 이제 고향으로 가야겠다면서 “그 여인이 제게는 고향이다.”라고 말한다.     


마지막 회에서도 온몸의 피와 땀을 쏟으며 싸움을 걸어오는 이들을 향하여 “당신들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겠지. 나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나를 고향으로 보내줘”라고 말한다. 죽음은 면했지만, 기억을 잃은 장혁은 심연 어딘가에 남아 있는 고향을 향한 애절한 감정의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다.     


찾아온 길채를 통해 마침내 마주한 기억 앞에서 장혁은 그동안의 온갖 설움과 고통이 위안 받는 듯 울음을 터트리며 “기다렸지. 그대를 여기서 아주 오래”라며 길채를 끌어안는다.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단순히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이 이루어져서일까? 극 중 장혁은 시대의 불운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다. 집안과 아버지의 비굴함과 배신으로 인한 상처, 백성을 외면하는 지도자의 비겁함에 그 또한 자녀로 백성으로서 고통당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들의 곁을 지키며 온 시대의 풍파를 맞는다. 그 몸과 마음은 찢길 때로 찢겨 고통의 크기만큼 결국 기억까지 소멸한다.     


장현의 눈물에는 그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고향을 스스로 버린 채 방랑자의 삶을 살던 장혁은 이제 한 여인에게서 진정한 고향을 다시 찾는다. 이를 단순히 ‘사랑’의 의미로만 볼 수 없다.     


그 시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백성들의 삶은 고달프다. 부와 안전을 쫓는 수많은 자기 계발 서적이 난무할수록 삶은 그만큼 불확실하고, 피폐하고 어렵다는 뜻이다. 부의 양극화, 실업, 집값 상승, 기후 위기, 쉽사리 해소되지 않은 정치적 난제 등의 문제는 고스란히 가장 어렵고 힘겨운 이들에게 전가된다.    

 

장현은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원형으로 등장하며, 길채는 찢긴 채로 그 모든 풍파에 맞서 싸운 이가 가야 할 고향으로 그려진다. 우리 모두에게 고향이 있다. 종교가 있는 이에게는 천국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지라도 자기만의 신념이든 유토피아이든 이상적인 나라가 있을 것이다. 지금의 현실을 견디게 하며 순간의 빛에라도 잠시 기대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건 누구에게나 그 고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고향의 품 안에서 우리는 이 생에서 상처와 아픔을 위로받으며 그나마 견딜 수 있게 된다.     


누군가 말했듯이 인생은 원래 부조리하며 완전한 세상은 없다. 그럼에도 그 부조리에 체념하지 않고 자신이 해내야 할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일상 속 작은 순간이 건네는 찬란함에 위로와 행복을 만끽한다면 그래도 살만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디선가 피와 땀을 쏟고 있을 이 시대의 모든 장현을 응원하며, 우리 모두에게도 고향이 있음을 전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진관 마케팅의 빛과 어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