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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ED Nov 07. 2021

내 첫연애는 충치처럼

 어느 날 멋대로 내 시야에 들어와서 자꾸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내 시야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과 내가 시야에 누군가를 들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차이인데, 이 아이는 확실히 제멋대로 갑자기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내 시야에서 그 아이를 내보내지 않으려 애썼다. 친구의 친구로 소개받아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대충 전해 들은 내용으로는 동갑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자꾸 눈길이 갔다. 하얗고 멀건 애였는데 속쌍꺼풀이 눈을 감을 때마다 보이는 게 속에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조금씩 그어두었던 선이 옅어지다가 이내 사귀었다.

 처음 단 둘이 만난 날, 그러니까 사귀기 전 같이 산책을 하다 손 끝이 자꾸 스쳤다. 걔는 내 손을 덥석 잡더니 놓아줄 기미가 없었다. 나는 풀어내지 않았고 의연하게 하던 말을 이었다. 하나도 떨리지 않았거든. 친구랑 손을 잡는 게 더 떨릴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상했다. 이대로 사귀어도 되나? 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내가 물었다.

"__아, 나 좋아해?"

예상했던 답으로 "응"을 듣고 내가 왜 좋냐고 물었다.

"착해서."

"그게 다야?"

"음.. 그럼 너는 이상형이 뭔데?"

"나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

그 애의 표정에 잠시 그늘이 들렀다 간 듯했다. 아마도, 내가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인가? 하고 떠올려보곤 아닌 것 같다는 결론에 달해서 일 거라고 추측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 애는 나랑 너무도 비슷한 결로 살아온 또래라서 배울 점이 많지 않아 보인다는 거, 그래도 함께 시작할 상대 정도는 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손을 내치지 않았다. 한 번 정도는 이런 나를 좋아해 주는 연애 해보면 좋잖아. 그렇지만 '착해서'라는 이유는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다. 두리뭉실하고. 차라리 더 확실한 이유가 있더라면 좋을 텐데. 그 애는 내가 궂은일도 내색 않고 하는 게 너무 착해 보여서 좋았단다.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도와주었단다.

 


 행실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기에 마음에 아주 조금 들었을지라도 시작만 하면 감정이 커질 줄 알았고 날 좋아해 준다는 이유로 가족처럼 한 사람을 품고 사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곤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라는 생각으로 관계를 방치했다. 시간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건 내 마음. 나의 감정이 관심 수준에 있는 상태에서 나보다 훌쩍 몇 단계는 뛰어넘은 사람과 함께 하려니 쏟아지는 마음 공세를 받아내기엔 내 우체통은 너무 작았다. 그렇다고 당장 작은 걸 들어내고 더 큰 걸 마련할 만큼 선뜻 마음이 따라주지도 않아서 그냥 몇몇은 읽지 않음으로 두었다. 죄책감이 들었다. 사랑하면 이 정도는 받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며 매일 난 사랑 중인지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었다. 나의 감정 상태가 '사랑'이 아니면 곧장 헤어짐을 준비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언젠가부터 좋아함보다 미안함이 커졌다. 이를 인식하고도 헤어짐은 아직 아니라는 생각에 만남 때마다 미안함을 사랑으로 포장하려고 애썼다. 시간은 아껴 써도 돈은 더 써보기도 하면서 거짓된 내 속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했다. 슬슬 관계가 이상한 모양새로 어긋나 가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그 애는 자신보다 좋은 사람 많을 테니까 우리 헤어지는 게 맞겠다는 말을 했다. 결국 허술한 트로이목마가 들켰구나 라는 생각과 뒤이어 더 이상 눈치 보며 뒷걸음질 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해방감이 들었다. 대신 친구로 지내자고 했다. 어떻게 너랑 친구로 지낼 수 있겠나. 친구로 남기엔 서로 상처 투성이에 염탐하고 시기하애매한 사이로 오래 지속될 걸 알기에 그건 미련이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이미 몸도 마음도 너무 많이 지쳐있었다.



이때 이후로 깨달은 게 있다. 더 이상 어디가 어떻게 무엇이 내게 상처가 되는지 안되는지 모른 채로 덜 좋아해서 오히려 죄인이 된 기분으로 그 애에게 맞춰 나를 흠집 내고 깎아내지 않도록 조금은 더 확신을 가지고 시작해야겠다는 것. 좋은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은 별개라는 것.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건 참 감사하고 행복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를 모르는 상태에서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건 상대도 나도 상처뿐인 일이 되는 것 같다. 


 나는 내 감정뿐만 아니라 상태도 몰랐다. 나는 손이 차지 않은 사람이 좋은지, 옷을 날씨에 맞게 잘 챙겨 입는 사람이 좋은지, 무던하지만 섬세한 사람이 좋은지 같은 걸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무턱대고 시작했더니 부작용을 제대로 겪었다. 다들 자신의 이상형을 매번 새로 발견하고 잃어버리기도 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동시에 그걸 또렷이 떠올리며 구체화하고 알아두긴 쉽지 않다. 나도 그랬고. 그래서 꼭 한 가지 정도는 짚고 넘어갈 포인트를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대부분 나처럼 이전의 상처를 반복하기 싫어서 그에 방어기제로 정반대로 생기는 경우가 많긴 하다.


 새로 가 본 카페에서 먹어본 적 없는 메뉴를 시켜서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험부담을 안고도 시도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막상 먹어보았더니 입맛에 맞지 않았다면 실패의 쓴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지만 실패도 경험이므로 새로운 맛을 알게 되고, 어떤 맛이 나랑 더 맞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연애도 그런 것 같다.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이어도 이를 잘 닦지 않으면 충치를 만드는 원인에 불과해져 버리는 것처럼 처음엔 나에게 해롭지 않아도 내가 방치했기 때문에 결국 이를 뽑아내야 할 만큼 썩게 만드는 그런 충치 같은 사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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