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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호 Jan 31. 2022

변명이 많은 사랑

운이 좋았던 날들을 그만두는 것

누군가는 다시 사랑한다면 너무 아플 테니 조금만 사랑하자고 말하지만, 그래도 .  다음은 저번보다  깊어서 찢어지게 아팠으면 좋겠다. 이번보다  많이 사랑하는 다음은 있을까- 하는 고민만을 하다가, 태산처럼  운명이 덜컥 다가왔으면 좋겠다. 당황마저 아름답겠지.


나는 당신과 아파트 단지에서 추운 손을 맞잡고, 줄 있는 이어폰을 나눠 끼고. 기약도 없이 그네 위에서 흔들거리기만을 반복할 테다. 집에는 언제 가? 우리 그런 건 생각하지 말자. 당신의 품에서 퇴행하기를 반복해 결국에는 어린아이가 되어서, 떨어지기 싫다고 떼를 쓸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들처럼. 너는 어떤 삶을 살아왔나, 좋아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혹은 일몰을 좋아하는가. 수도 없이 했던 질문들은 다시 해도 새로울 것이고, 나는 당신의 기억으로만 차고. 그러다 어느 때 나의 날이 온전히 당신으로만 차오르면, 늦지 않게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다가 상상하기도 싫은 마지막이 찾아오면, 누구보다도 격정적으로 울분을 토할 것이다. 고상함 따위는 집어치우고, 밤새 당신 욕을 할 것이다. 동이 틀 때 즈음이 되면 미안함에 울부짖다 지쳐 잠들기를 몇 날 며칠이고 반복한 뒤에 당신의 전화번호를 눌러 다시 욕을 해댈 것이다. 야, 내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아냐고.


사랑이 어땠다고 더듬어가며 미화하기보다는 순수하게 증오하고 저주하고, 나 없이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당장의 기분에 충실할 것이다. 당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을 수십 가지로 돌려 말하고 난 뒤에는, 한숨을 푹 쉬고 나 홀로 긴긴밤을 달래러 갈 테다. 전화번호를 아주 많이 눌렀다 아주 많이 지울 것이다.


그만큼 사랑해야만 할 수 있는 말과 행동들을 지금껏 하지 못한 일들은 아쉬운 일인가- 아니면 감사한 일인가. 담배 한 대에 보내버릴 인연들만 가득 찼음은 운이 좋았음에 틀림없다. 그다지도 덤덤한 것은 사랑일 리 없고, 나는 그렇다면 단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으므로.


변명이 많은 사랑이 다가오는 날을 바란다. 담장보다 높은 너의 벽을 내가 넘기를, 나의 벽을 네가 넘기를 바란다. 수 차례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을 거듭하고 난 뒤에도, 오늘처럼 또 사랑을 바라기를 바란다. 바람으로 가득 찬 날에 바람이 사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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