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흠을 맞잡는 사람들
나는 부정적인 부분을 공유한 사람들과 유독 깊고 친하게 지낸다. 우울, 가정사, 경제적 어려움 등을 서로 알고 있는 상태에서 우린 이만큼이나 닮았구나, 하는 마음이 친밀감으로 이어지고 곧 유대가 된다. 상대방의 기쁜 소식에 공감하기보다 힘들었던 경험에 공감하는 일이 더 쉽기도 하다. 좋은 일은 시기 질투하고 보는 못된 마음이 한몫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연인들의 관계에서도 그런 듯하다. 의지할 대상을 찾아 연애를 하는 경우는 많지만, 자랑할 대상을 찾으려 연애를 하는 경우는 적어도 내가 보기엔 없었다. 내 아픔을 보듬아줄 수 있는 특별한 사람. 너에게만 말할 수 있는 것들을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이유를 아는 사람. 그런 것들을 헤아리다 보면 어느샌가 그들이 왜 그리도 각별한지 이해할 수 있듯이.
세상이 행복을 너무나도 강요해서, 우리들이 뭉쳐 다독여야만 하는 시대가 왔음을 느낀다. 감사하게도 내 친구들이 유독 힘든 하루 끝에 나를 찾아오면, 나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들을 다독여주려 한다. 그럼에도 요새는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들이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는 듯하다. 그들 발끝의 그림자가 많이 길어졌다.
나 하나 없어도 내 친구들은 잘 살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꽤 오래전에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나는 나 없이 안된다 말하는 친구들을 보며 살고 있다. 그들이 나 없어도 괜찮다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 친구들을 그만큼 도울 능력은 없지만, 한밤중의 비탈길에는 가로등보다는 같이 걸을 사람이 더 소중한 것과 비슷한 맥락 아닐까.
나는 습관처럼 친구들에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말한다. 해가 예쁘게 지는 동해에 가자. 갈대가 많은 순천만에 가자. 붐비는 서울에서 가장 조용한 곳을 찾아 가자. 혹은 겨울에 도쿄에 가자. 소복소복 눈이 내리면 검은 상처가 희게 아물 테니까. 이제 새로운 색을 덧대도 좋을 때가 올 테니까. 그러니 도쿄의 눈 내리는 밤에 함께 있자...
나와 당신이 서로의 부정적인 부분들을 모르는 사이가 되길 바란다. 모르고도 친한 사이가 되길 바란다. 우리 만날 때면 어제가 아닌 내일을 말하는 날이 왔으면 한다. 모여 앉은자리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길 바란다. 그렇다면 더 이상 나는 불행한 사람은 아니게 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