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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호 Apr 15. 2022

쉽게 사는 주인공 이야기

열정소년 클리셰


 히어로를 동경하며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듭하는 주인공, 등꽃나무 아래에서 수천 번 혹은 그 이상 칼을 휘두르는 캐릭터. 어릴 적의 가슴 아픈 트라우마는 기본이요 시행착오는 덤으로 얹어 결국 절체절명의 활약까지 하게 되는 스토리는 평범하지만 늘 새롭다. 뻔하디 뻔한 열정소년 클리셰일지라도 각각의 훌륭함이 있기 때문이다.



 너는 어떤 아픔이 있고 어떻게 일어났느냐. 작품은 작품으로만 봐야겠으나 캐릭터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을 보고 있자니 나는 무얼 하고 있나 싶다. 물론 나에게는 극복할 만한 치명적 무언가는 없다. 그럼에도 쉽게 작아지는 마음가짐 하며 이불속으로 파고드는 행동성 등의 문제들이 삶에 즐비하다. 그리하여 나는 가족도 잘 있고 사지도 멀쩡하나 종종 비극 속 주인공이 된다.



 그리하여 내 삶은 열정소년물의 초반부에 있다. 너무나도 쉽게 타인을 부러워하는 탓에 열정만은 최대치인 상태이다. 신체적 조건도 준수했으면 좋겠고, 심리적으로도 안정되었으면 하고, 돈도 모자라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욕심이 지나쳐서일까. 목표는 높고 마음은 동하나 몸은 좀처럼 움직이질 않게 되었다. 열정은 밤이 되면 금세 식어 우울이 되고는 해서, 나는 그저 우울소년의 삶을 살고만 있다.



 언젠가는 sns 파도타기로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보게 된 적이 있다. 그는 어릴 적 겪던 신체적 컴플렉스를 겪고 꾸준히 운동을 하며, 근사한 글을 쓰는 한편 주변에 진심으로 사랑하는 친구들을 둔 듯 보였다. 그날 내 몸에서는 열정이 아닌 슬픔이 끓어 넘쳤다. 내 세상은 그의 세상에 비해 터무니없이 얕고 작아 보였다. 그는 모두 극복했으나 나는 하나도 극복하지 못했다.



 오늘 같은 날이면 아무나 붙잡고서는, 나도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묻고만 싶다. 나는 그가 부럽다. 나보다 깊이 있는 삶으로 글을 쓰는 그가 부럽다. 내 열정의 종류는 왜 불순함이 섞인 시기와 질투일까. 이만하면 크나큰 트라우마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유일무이 히어로가 되겠다는 목표도 아닌데 시작부터 왜 이리도 험난한 거야...



 나는 누군가를 동경하기도 어려운 상태에 있다. 나는 같은 천장 아래 시기 질투만 가득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고, 깊은 마음의 바다도 말라 감수성마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역시 현실에서는 열정소년 한 번 하기가 이다지도 힘이 든다. 가지고 있는 나름의 장점은 그다지 쓸모가 있지는 않아 보인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내 장점은 누군가를 살리기에 충분했고,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고작 내가 되려고 이다지도 아픈 삶을 사나. 내가 나로 사는 일이 너무 많은 열정을 필요로 한다. 이 정도의 고난이 있어야 더 크게 빛이 나는 것인가 싶다가도, 아픈 만큼 빛이 난다면 나는 덜 아프고 조금만 빛나고 싶다. 적당히 동경하고 적당히 노력해서 약간만 나로 살고 싶다. 쉽게 사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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