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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l 22. 2024

우리 집 패셔니스타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84

오늘도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쓰다듬으며 등교 준비를 마친다. 엊그제 산 크롭티가 마음에 든다며 자기 스타일이라고 얼굴 가득 뿌듯한 표정이 아침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검은색 반스타킹에 검은색 반바지까지 입으니 치어리더처럼 보였다.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며 아이돌 표정까지 짓는다.


"오늘 꽤 괜찮은데."


집을 나선다. 우리 딸이.


핑크색, 연보라색 공주였던 아이는 어느새 커서 검은색과 흰색으로 코디하는 초등고학년이 되었다. 영원한 건 없다더니. 맞는 말이다. 취향도 변했다. 저학년을 지나면 어른스러워 보이는 무책색을 선호한다는 선배맘들의 말이 맞았다. 언니가 있는 친구들은 이미 1년 전부터 무채색으로 갈아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좋아하는 연보라색을 한동안 꿋꿋하게 지켰는데 4학년이 되자마자 밝은 색 옷은 유치하다며 거절하기 시작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어린이취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그들만의 룰이 있는 것처럼 주변 학생들은 어두침침하게 변해간다. 마치 학업의 부담을 옷색깔로 드러내는 듯해서 안쓰러울 때도 있다. 


스스로 옷을 고르고 코디하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기도 하다.

엄마가 사주는 대로 입었던 나와 자기 스타일대로 멋스럽게 입고 다녔던 동생이 떠오른다. 대학입학 후에도 한동안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어떤 옷을 사면 되는지 몰랐던 나는 졸업반이 돼서야 자신 있게 스스로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 찐 살이 다 빠져 어떤 옷도 입을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생기고 나서야 옷을 사서 입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무채색을 벗어나 파스텔톤의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고 무다리라고 부끄러워 못 입던 치마도 길이별로 다 입어봤다. 뒤늦게 스타일을 찾아가는 모습 속에서 내 삶의 주인이 된 느낌마저 들었다. 별거 아닌 옷인데. 그저 몸에 걸치는 천조각일 뿐인데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직장 생활하는 동안에는 사회적 꾸밈비를 지불하며 옷을 샀다. 과소비는 못해도 한 철에 한 벌씩은 살 정도였고 흔적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제는 나갈 곳이 없으니 소비가 거의 없다. 가끔 있는 외출 때마다 옷장을 보며 한숨짓기도 하지만 그때뿐,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주부룩으로 돌아온다. 옷 소비도 총량의 법칙이 있는 걸까? 출근룩이 필요했다면 여전히 나를 위한 소비에 열을 올리겠지만 윈도쇼핑만 할 뿐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지갑을 선뜻 열지 못한다. 


가끔 딸과 같이 옷을 둘러볼 때면,


"이 옷봐, 엄마 스타일이야!, 잘 어울리겠어!"

"맞아. 예전에 좋아했던 스타일이야. 이제는 사도 입을 일이 없네."


딸도 내 스타일을 아는지 권해준다. 그저 생각 없이 지루하다고 따라다니던 딸이 슬슬 옷을 권해주는 나이로 커가고 있다. 딸과의 쇼핑을 즐기는 모녀관계로 발전할 수 있겠지? 나도 그랬다. 엄마와 함께 쇼핑 가서 엄마옷을 골라주면 참 좋아하셨다. 아들과 공유할 수 없는 쇼핑의 기쁨을 딸과 누리는 것도 한때의 소중한 추억거리임에는 틀림없다.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다. 패셔니스타는 아니었어도 꾸밀 줄 알고 살았던 나는 이제 한 걸음 물러나 떠오르는 패셔니스타인 딸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자신감 있게 만족스럽게 입고 다니면 그게 바로 패셔니스타지, 별게 있겠냐 하면서 딸을 추켜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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