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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l 24. 2024

일상을 점검하는 날을 감사하자.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85

정기검진 받는 날은 일상을 점검하는 날이기도 하다. 


"소중한 일상"이라고 하지만, 그 잔잔한 일상이 따분하다고 느껴질 때, 병원방문만큼 효과적인 마음 리셋 방법은 없다. 지난 5년간 암경험자로 살아보니 그랬다. 이것도 암 덕분이다. 


내분비대사내과에서 골다공증 추적관찰을 위한 검사를 했다. 혈액검사, X선 전체 척추검사, 골밀도 측정 검사. 어젯밤부터 금식을 했더니 장마 비가 내리면서 안 그래도 찌뿌둥, 뻣뻣한 몸이 더 처졌다. 채혈실을 무사히 통과하고, 영상의학과로 향했다. X선 검사실은 백색소음 가운데 뉴에이즈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옆으로 서서 고정된 자세로 벽에 찍힌 빨간 점을 응시했다. 얼음의 자세로 절대 집중의 순간, 갑자기 평가받으러 온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 물었다.


'잘 살고 있지?'


초집중, 강제로 1분 셀프 토크를 마치고 비장하게 소지품 가방을 들고 검사실 밖으로 나왔다. 골밀도 검사실 앞 대기의자에는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바싹 붙어 앉아서 차례를 기다렸다. 흰색 상의와 초록색 반바지를 맞춰 입고, 종이쪽지 하나씩 들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우리 모두가 한낱 약한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검사 전 키와 몸무게를 재라는 안내에 혼자 온 어르신은 어찌할 바를 모르셨지만 다행히 근처에 서 있다 도움이를 자처하는 분이 계셨다. 몇 분이 더 올 때마다 안내자역할을 톡톡히 하셨다. 딱히 할 일이라고는 호명되기를 귀 기울여 기다리는 것뿐이라서 인지 신체측정기에 사람이 올라갈 때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본인의 몸무게가 많이 나갈 거라며 안 재고 있었다던 젊은 할머니는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얼른 저울 위로 올라가셨다. 무릎 수술과 연골이야기로 할머니 한 두 분이 대화에 합류하면서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10여 명의 대기자들 중 슬쩍 보니 40대는 나뿐이었다. 눈으로 확인했다. 또래보다 먼저 골다공증을 알고 산다. 지난 1년 동안 약을 끊고 운동하며 살았는데, 어떤 성적표를 받을지 긴장된다. 신체적인 노화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빨리 왔어도 정신적 노화는 읽고 쓰고 활동하며 노력한 만큼 천천히 맞이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오늘도 검사를 마쳤다. 텅 빈 속을 채우기 위해 병원의 소울푸드인 우거지탕을 먹고 기운을 보충했다. 


얼마 전 건조기부품을 교체했다. 그동안 건조시간이 오래 걸렸던 이유가 밝혀졌다. 메인 부품이 마모되서였던 것을 경고 에러가 뜨고 나서야 알았다. 매일 쓰면서도 그저 산지 오래돼서 그려려니 하고 조심조심 최소한으로 사용했었다. 해체된 건조기 내부에는 지난 7년 동안 쌓인 먼지가 구름처럼 가득했다. 내 무관심의 흔적 같았다. 먼지가 날릴까 봐 선풍기도 틀지 못했다. 더운 날씨에 세탁실에서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부품교체를 마친 기사님은 냉수 한잔을 들이켜신 뒤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10년은 더 쓰세요. 한번 더 고장 날 때까지 잘 쓰세요!"


말끔히 작동되는 것을 확인한 후 진작 점검을 받았으면 효율적으로 썼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못 고친다는 말이 떨어지면 용량이 큰 건조기를 사고 싶은 욕심도 살짝 있었지만 바로 잊었다. 말끔히 성능을 회복한 건조기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사람처럼 물건도 중간 점검을 하면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부품을 갈고 바로 쌩쌩해진 기계가 부럽기도 했다. 나도 건조기처럼 암을 치료했으니 예전처럼 쌩쌩 돌고 싶은데, 나는 그처럼 안 되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었다. 기계처럼은 안 되더라도, 검진을 꾸준히 받고 예전의 70-80퍼센트만이라도 회복해서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감사하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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