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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ngwon LEE Aug 26. 2022

신혼여행

기회(機會)와 포기(抛棄)

신혼여행 ; 이탈리아

일을 하다 문득 신혼여행을 갔을 때가 생각이 났다.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하나씩 찾아보았다. 몇 개의 사진이 그때를 떠올리게 해 주었다. (모든 사진은 외장하드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결혼 준비를 하던 때에 신혼 여행지로 어디를 갈지 고민을 하다 이탈리아로 정했었다. 8일간의 일정이었는데, 여러 나라를 가기보다 한 곳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여행을 하고 싶어 이탈리아 한 나라만 선택했다. 대신 몇 개의 도시를 여행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이탈리아는 도시마다 특색이 강한 나라였다. 그래서 매 도시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여행을 갔을 때는 2월 말이었다. 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빛이 어우러져 걸어 다니기가 참 좋았다.


로마 ; 에스프레소 & 젤라또

우리는 로마 -> 포지타노 -> 피렌체 -> 베네치아 순으로 도시를 여행하였다. 로마는 내게 에스프레소로 기억이 남아 있다. 로마에서 처음 간 곳은 바티칸이었다. 시원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안으로 들어서니 에스프레소를 파는 곳이 보였다. 특별할 것 없는 한잔이었지만 그 시간과 장소는 향과 맛과 함께 기억의 한편으로 보관이 되었다. 살짝 잠이 덜 깬 나를 기분 좋게 깨워준 에스프레소는 바티칸을 다니는 동안 그 웅장함과 인간의 경건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힘을 주었다. 바티칸을 방문하는 여행객이라면 꼭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길 추천드린다 :)


또 로마는 내게 젤라또로도 기억이 남아 있다. 로마의 휴일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로마는 많은 유적지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호텔에서 잠깐만 걸어 나와도 중세와 현대가 어우러진 신비한 느낌을 받게 된다. 주위를 다니던 중 길목 어딘가에서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상쾌함과 함께 싱그러운 맛이 입안에 퍼져 기분이 참 좋았다. (아내와 함께여서 그 순간이 더욱 아름답게 남아 있는 것 같다.) 따뜻한 햇살 아래 로마의 중세 모습을 함께 바라보며 먹는 젤라또는 어느 비싼 음식이 부럽지 않게 만들었다.


포지타노 ; 레몬

로마가 에스프레소와 젤라또로 기억이 남아 있다면, 다음으로 여행 간 도시인 포지타노는 레몬으로 기억이 남아 있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포지타노는 레몬 생산지로 유명하다. 높은 산의 터널을 뚫고 나오자 환하게 펼쳐진 바다와 마을의 모습은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버스를 타고 단체로 갔었는데, 모두 동일한 순간에 탄성을 질렀다.)

가게 곳곳에서는 레몬을 특산품으로 하여 판매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관광객들을 잡기 위해 호객 행위를 하는 가게 직원들을 보며 동질감을 느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것 같다.) 선물용으로 레몬 술과 사탕을 샀다. 물론 아내와 함께 먹을 것도 샀다. 레몬 술은 그렇게 달지는 않았던 것 같다. 레몬과 함께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마을의 모습은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게 되었다. 조금 더 지중해 마을을 여행해보고 싶었지만 다음 도시로 가는 기차표가 예매되어 있어 아쉬움을 남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피렌체 ; 구찌 & 티본스테이크

다음으로 향한 장소는 피렌체이었다. 이곳은 구찌와 티본스테이크로 기억이 남아 있다. 두오모 성당 꼭대기에서 바라본 피렌체 도시는 참 예뻤다. 노을이 지는 모습과 더불어 모든 건물이 황갈색으로 이루어져 있어 참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움보다 구찌가 더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난생처음으로 명품을 사보았기 때문이다.

피렌체에는 명품 아웃렛이 있다. 버스를 타고 아침 일찍 갔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오픈과 동시에 각자 어딘가로 향했다. 우리는 구찌 매장으로 갔다. 아내가 미리 생각해 놓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왜 사람들이 이렇게 뛰어다닐까 싶었는데 조금 지나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잔뜩 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았다. 늦게 가면 물건이 동이 나서 살 수 없기 때문에 뛰어다닌 것이었다. 우리는 가방 3개를 샀다.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금액을 결제했다. 내 신용 카드 한도로 결제가 가능하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다른 매장에서 몇 개 선물을 더 산 다음 오후 늦게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가는 길에 혹시나 도둑을 만날까 조심했다. (아내는 그렇게까지 조심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또 하나 피렌체 하면 떠오르는 것이 티본스테이크인데, 지금까지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먹어본 스테이크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아내의 지인을 통해 가게를 미리 알아 놓고 갔었는데, 같은 이탈리아 내에서도 다른 음식점에서는 이런 맛을 맛볼 수 없었다. 사실 스테이크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었는데 이 날 이후 스테이크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한 번 여행을 가보았기 때문에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은 적은데, 이곳에서 스테이크는 다시 먹어보고 싶다.


베네치아 ; 물 & 립스틱

마지막으로 향한 베네치아는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예전에 극장판 포켓몬스터를 보는데 배경이 베네치아였다.) 물의 도시인 베네치아는 환상의 도시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 도시는 물과 립스틱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베네치아는 물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도시이다. 물 위에 만들어진 도시이기 때문이다. 트라게토 (Traghetto, 물 위를 지나다니는 운송 수단)를 이용하여 곳곳을 누빌 수 있다. 트라게토를 타고 구경하는 베네치아는 참 아름답다. 마침 우리가 간 때가 카니발 축제가 한창 열리는 중이었다. 해가 저물어 갈 무렵이 되자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다니기 시작했고, 거리 곳곳에서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스타워즈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끼리 광선검을 들고 싸우기도 하고, 뱀파이어로 분장한 어린아이가 기묘한 동작을 취하고 있기도 했다. 밤이 되자 날이 점점 쌀쌀해져서 좀 추웠지만 축제를 맘껏 즐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해가 밝아서는 무라노섬과 부라노섬을 가보았다. 무라노섬은 유리공예로 유명한 곳이다. 상점마다 예쁜 유리 공예품들이 즐비해 있었다. 베네치아와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점심으로 와인을 곁들인 파스타를 먹었다. 얼굴이 빨개지는 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무라노섬에서 배를 타고 조금 더 들어가면 부라노섬이 나온다. 이곳은 아이유의 하루 끝이라는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곳이다. 뮤직비디오를 보며 너무 예쁜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곳이 베네치아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아름다운 거리를 맘껏 누비고 베네치아로 돌아와서 립스틱 가게로 향했다. 계획된 것은 아니었는데 아내가 보고는 저기를 가보자고 했다. 고가의 립스틱 브랜드는 아니지만 색감이 너무 예쁘고 색이 잘 먹는다고 하였다. 본인 것과 더불어 선물로 줄 것들을 샀다.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하면 립스틱이 너무 좋았다고 아내는 말한다. 선물을 받은 지인들도 모두 좋았다고 한다. 대형 브랜드가 아니어서 한국에서는 구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혹시 다시 가게 된다면 조금 더 넉넉히 사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 생활 ; 기회(機會) & 포기(抛棄)

각각의 장소마다 특별한 의미로 기억되어 있다. 이처럼 회사 생활도 몇 단어로 표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기회 (機會)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회사를 다니며 담당하고 있는 분야의 전문 지식과 더불어 비즈니스 예절을 배웠다. 그리고 업무를 도와주는 유용한 도구인 엑셀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것들은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도 필요하지만 앞으로 다양한 길을 찾아 가는데도 도움을 주는 것들이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며 전문 경영학 석사과정 (MBA)을 수료할 수 있었고, 영어와 스페인어를 공부할 수 있었다. (이제 영어는 전화로도 의사소통이 원활할 만큼 꽤 능숙해졌다.) 이 뿐만 아니라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밑바탕이 되어 주었다. 많은 기회를 붙잡을 수 있게 해 주었고, 또 앞으로 다가올 많은 기회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포기 (抛棄)라는 단어로도 회사 생활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며 포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어떤 무언가에 대한 포기라기보다 나 자신에 대한 포기이다. 너무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나에 대하여 포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일들에 도전하고 이루어낼 수 있었다. 나에 대해 포기가 되니까 내게 올라오는 많은 부정적인 생각들을 버리는 것이 쉬웠고,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분들의 조언을 따라갈 수 있었다. (이는 또 다른 기회의 문을 열게 해 주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의 하나인 기회와 포기를 회사에서 배웠다.



어떤 일을 겪을 때 특별한 의미로 기억될 때가 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부정적인 의미로 제 머리에 새겨져 있었는데, 지금은 힘들고 어려운 일도 소망으로 기억되어 있는 것을 보면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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