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탱이 퇴직하다.
‘철로 만든 밥통’ 공무원을 빗댄 말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나는 철밥통이었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던 어김없이 철밥통을 손본다고 으름장 놓은 소리에 기겁도 했고 툭하면 삶의 분노를 철밥통으로 푸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여기저기서 날아온 돌에 제아무리 철로 만든 밥통이라도 성한 구석이 없다.
그렇게 오랫동안 맞아 맷집이 생길 법도 한데 늘 맞을 때마다 아프다. 그리고 그 일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날, 사표를 냈다.
20대 초반에 공부하고 면접과 신원조회까지 마치고 어렵게 공무원을 시작했지만 퇴직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퇴직 사유 한 줄 적고, 서명하니 끝이란다. 사표를 내고 나오는데 허탈한 생각이 들었다.
술자리에서 호기롭게 ‘때려친다 때려쳐!’ 했어도 어김없이 다음 날이면 쓰린 속, 해장국으로 위로하며 주말도 없이 묵묵히 일한 곰탱이 같던 내가 미워졌다.
MZ세대, 젊은 공무원들의 퇴사가 늘고 있다고 한다.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던 공무원의 인기도 하락하고 있다. 낮은 보수와 폐쇄적인 조직문화가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직장 생활에는 즐거움과 고통이 늘 함께 존재하지만 고통의 9할이 인간관계다. 그 어느 조직에도 존재한다는 똘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 그 법칙에 의거 똘아이들은 어김없이 어느 조직에나 존재한다.
결정 장애와 자신이 내린 결정도 기억을 못 하고 밥 먹듯 번복해 직원들을 힘들게 하던 똘아이 그분, 겉모습은 깔끔하고 점잖은 외모로 이권 요구를 스스럼없이 하는 막장드라마에 나올법한 분, 이 두 분을 만난 악연으로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사표를 내고 집으로 가는데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서 환한 햇빛이 쏟아졌다. 다행이다. 날씨라도 흐리면 기분이 꿀꿀했을 텐데 좋은 날 사표를 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정년퇴임식에서 대과(大過) 없이 마칠 수 있어서 기쁘다는 소리가 식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사표를 내고 보니 정년까지 가는 일이 대단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늘 마음속으로 퇴사를 꿈꾸어 왔고, 사표를 던지면 속이 시원할 줄만 알았는데 허전함이 뭔지 모르겠다. 찌그러진 못난 철밥통 이제, 안녕이다. 못난이처럼 꾹꾹 참았던 눈물이 볼을 타고 주책맞게 흐른다.
“태산을 넘으면 평지를 본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오늘 내 인생의 큰 태산을 넘었다. 평지가 나올 거라는 작은 위로의 말을 나에게 건네어본다.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하나 쓰면서 위로의 씨앗 하나를 심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