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의 시대

느슨한 관계가 좋다.

by 이소희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눈이라도 곧 내릴 것처럼 어둡고 무거운 잿빛 하늘, 아무것도 하기 싫은 오후 5시다.

불도 안 켜고 습관처럼 리모컨을 눌러 TV를 켠다.

12만 서울 청년이 은둔형 외톨이며 청년과 중년층 일인가구가 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퇴직하고 마음 정리를 못 해서 가끔 이러고 있다.

혼자 시간을 죽이고 있던 중년의 여자가 듣고 있으려니 씁쓸하다.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외톨이가 된 건가?

중년층 일인가구는 이혼과 사별이 원인이겠지.

아니다. 우리 사촌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중년이네. 그들의 숫자도 상당하겠네.'


혼잣말로 중얼거렸지만 금세 허공으로 사라진다.

혼잣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고립과 마주해야 한다.


직장 생활할 때 일보다 중요한 것이 인간관계라 배웠다.

한때, 학교, 고향, 부서, 교육 동기 이런저런 모임에 기웃거린 적도 있었다.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우리가 남인가?

노래방에서 흥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떼창으로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술기운에 끈끈한 연대를 느낀 적도 있다.


나는 연대를 외치면서도 번잡함이 싫어 의도적으로 고립을 택하는 순간도 많았다.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

자발적 퇴직을 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가끔은 당혹스럽다.


퇴직으로 인한 무기력,

배우자와의 이별로 인한 상실감,

장성한 자식의 출가

우리는 누구나 언제가 고립의 시간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타인과 연결될 때 인정받는다고 느끼며 살아와서 그런지

관계가 단절되면서 고립감과 알 수 없는 감정이 외로움으로 전이되는 순간이 있다.

준비도 없이 외로움이란 감정이 엄습해 온다.



외로움도 대비가 필요하다.


어둠이 창밖으로 짙게 내리고 삐삐삐 삑 비번 누르는 소리가 나면 나의 외로움이 비로소 끝이 난다.

딸아이는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을 저녁을 먹는 내내 종알종알 이야기해 준다.

올해부터 홀로 사는 어르신들에게 우유 배달을 위한 기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우유 배달로 안부를 묻는 사업이다.

어찌 그리 이쁜 생각을 했냐고 말을 건네었더니 그냥 머쓱해하면서 웃기만 한다.


홀로 공원이나 아파트에서 반려견들과 같이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SNS로 촘촘히 연결된 세상에서 일인가족이라니 아이러니하다.


고립의 문제를 과거처럼 가족이나 마을에서 풀기에는 힘들어졌다.

복잡한 사회에서 상대방과 나 사이의 존중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는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느슨한 인간관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도 외로움이 나를 점령하지 않도록 동아리나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일상을 공유하려는 노력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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