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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 더 위험한 선택을 할까?

《사탄탱고》를 읽고

by 이소희

1. 무너져가는 시대와 한 소설가를 향한 호기심

작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올해는 또 어떤 이름이 불릴지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조금 속물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큰 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을 직접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독자라면 흔한 반응일 것이다. 그래서 올해의 수상자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발표되었을 때, 그제야 처음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음에도 “도대체 어떤 세계를 써온 작가일까?” 하는 호기심이 단번에 생겼다. 대중적 유행과는 상관없이 난해한 문체와 실험적인 서사만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아온 이 작가가 어떤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고, 그런 이유로 그의 대표작 《사탄탱고》를 자연스럽게 집어 들게 되었다.


이 소설의 배경은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져가던 1980년대 헝가리다. 경제가 침체하고 농촌이 급격히 쇠락하던 시기였고, 많은 마을이 사실상 버려진 공간처럼 변해갔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와 진흙탕뿐인 풍경은 주민들의 체념과 절망을 상징하며, 반복해서 등장하는 ‘앞으로 여섯 걸음, 뒤로 여섯 걸음’이라는 탱고 스텝은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의 순환을 형식적으로 드러낸다.


《사탄탱고》는 처음엔 낯설고 어렵다. 문장이 길고 스타일도 독특해서 읽다가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나 역시 몇 번이나 책을 덮었다가 다시 펼쳤다. 하지만 6장부터 흐름이 열리며, 오히려 빨려들 듯 마지막까지 읽게 된다. 비가 침잠한 마을을 감싸고, 인물들의 감정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분위기가 조금씩 독자를 끌어당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헝가리’라는 나라를 떠올리며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을 종종 찾아들었다. 겉으로는 흥겹지만 멜랑콜리가 배어 있는 그 선율은, 축제 속에서도 슬픔을 지우지 못하는 민족의 정서를 닮아 있다. 특히 마을 사람들이 술집에서 광란의 탱고를 추는 장면과 이 음악이 겹쳐지면서, 이 소설이 가진 희비극적 정서가 더 입체적으로 감지되었다.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음악의 리듬 속에서 더 선명해진 것이다.


2. 맹목적 희망이 만들어내는 집단 광기

이 작품이 가장 섬뜩한 이유는 극심한 절망 속에 놓인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인 희망을 선택하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주민들은 어떻게든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때 죽은 줄 알았던 이리미아시가 돌아온다는 소문이 마을을 뒤흔든다.


사람들은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왜 다시 나타났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그저 ‘구원받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모든 이성이 흐릿해진다. 서로를 속이며 살던 이들이 구원이라는 말 앞에서는 너무나 쉽게 하나의 무리가 되고, 이리미아시의 가짜 구원극 속으로 기꺼이 발을 들인다. 그들의 움직임은 계획이나 판단이 아니라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세계의 닫힌 구조는 소설 속 상징들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비는 정화가 아니라 정체와 부패를 상징하고, 중요한 순간마다 울리는 종소리는 희망이 아니라 파국을 예고하는 불길한 울림이다. 마을 곳곳에 보이지 않게 퍼진 거미줄은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적 덫이자 사람들이 스스로 걸려드는 자발적 예속의 은유로 읽힌다. 이 세계는 이미 절망이라는 시스템 안에 갇혀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린 소녀 에슈티케의 비극은 이 세계의 폭력이 어떻게 가장 약한 존재에게 향하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녀가 고양이를 죽이는 장면은 단순한 잔혹함이 아니라,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고통을 전이시키며 잠시라도 ‘힘’을 느끼려는 절박한 저항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은 이 세계가 가진 폭력의 구조가 완전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3. 파멸을 향해 춤추는 마을과, 탱고처럼 되감기는 서사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을 사람들이 술집에서 탱고를 추는 순간이다. 술과 광기로 뒤덮인 이 장면은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집단의 환희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광란의 춤과 에슈티케의 죽음이 겹쳐지면서, 소설의 제목 ‘사탄의 탱고’가 완성된다. 축제의 춤이 아니라, 파멸을 향해 발을 맞추는 탱고다.


《사탄탱고》는 12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조 자체가 탱고 스텝을 닮아 있다. 1장부터 6장까지는 인물들이 무언가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흐름을 보이고, 이후 번호가 거꾸로 매겨진 여섯 개의 장은 되감기듯 후퇴와 회귀의 감각을 만든다. 이야기는 직선적으로 전개되지 않고 여러 인물들의 시점을 오가며 과거와 현재를 반복하는데, 이는 마을이 빠져나갈 수 없는 절망의 리듬을 구조적으로 재현한다.


이 소설은 끝내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절망이 깊어질수록 인간은 왜 더 위험하고 비합리적인 선택을 따르는가? 그리고 익숙한 통제에 길들여진 사람은 어떻게 쉽게 속고 이용당하는가?


읽는 과정이 쉽지 않지만, 《사탄탱고》는 인간과 군중의 본성, 그리고 절망의 구조를 가장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다. 왜 우리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절망의 리듬에서 벗어나기가 왜 그토록 어려운지를 조용하지만 잔혹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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