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희 Mar 02. 2024

진실과 허구 사이, 그 어디든

리움미술과 '보이스' 전을 보고 나서

지난주 필립 파레노의 국내 첫 미술관 개인전인 ‘보이스(Voices)’를 리움 미술관에서 관람했다. 파레노는 시간과 기억, 인식과 경험, 관객과 예술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 중 ‘세상 밖 어디든(2000)’이란 작품이 전시를 보고 난 후에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목소리'는 알고리즘으로서 생명체의 출현과 소멸, 진실과 허구를 말하는 주체라고 한다. 전시회를 다녀오면 평소와 다르게 다양한 감각들이 나를 흔들어 깨우는데 이번에는 목소리가 그랬다.      



나의 얼티에고(alter ego) '안리'  

   

1998년 아담이란 가상 인물이 가수로 데뷔했다. 그 당시만 해도 아담은 어색한 사이버 인간처럼 보였으나 새로운 시도라는 면에서 참신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20년쯤 로지라는 신인 모델이 광고계를 휩쓸기 시작했다. 꽤 재능 있고 예쁜 신인 모델이라 생각했는데 몇 달 후에 그녀가 가상 인간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사람들을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기업에서는 실제 모델은 음주나 폭행, 과거 문제로 기업의 이미지를 훼손시킬 위험부담이 있어 가상 모델을 선호한다고 한다. 가상 인물과 실제 사람 간 경계가 없어지고 가상모델의 활동에 사람들은 더 열광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늙지도 않고, 살도 찌지 않고, 스캔들도 없는 완벽한 가상모델과 경쟁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내 이름은 안리, 철자는 아무래도 좋아. 상관없어. 정말이야. 상관없어 나는 4만 6000엔에 팔렸어. 4만 6000엔 미화 400달러, 나는 결국 망가 같은 곡에 나오는 다른 이들처럼 되고 말았어.' 전시장 한켠에서 흘러나오는 안리의 대사에 발길을 멈추고 한참 멍하니 서있었다.     


만화 속 영웅이 되어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도 있지만 초반 덜컥 죽어 사라질지도 모르는 안리의 운명에 마음이 찡했다, 가상모델이 광고계를 휩쓸고 실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있는 시점에서 캐릭터나 인간의 운명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 들었다.      


틀에 박힌 직장에서 부품처럼 움직이며 누군가의 의지로 정책을 만들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변해 글을 쓰며 일하고 살았다. 안리에 감정이 내게 이입이 되어 마음이 파도처럼 울렁거리며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안리는 배두나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지만, 기계음 같이 웅얼거리고 있었다. 조명받지 못하고 4만 6000엔에 팔린 캐릭터, 안리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귀가를 맴돌고 있다. 어쩜 이 웅얼거림은 현대인들이 내는 소리 같다는 느낌, 화면 속에 연신 웅얼거리는 이 느낌이 낯설지만 낯설지 않았다.           



현실세계도 시뮬레이션     


기술이 이대로 발전한다면 미래는 현실과 가상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며 살아가게 될 것 같다. 딥러닝을 통해 가상의 세계는 더 발전하여 현실세계보다 우월한 유토피아 세상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가상 세계는 더 정교한 가상세계를 만들어 거대한 가상의 은하계가 구축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지구도 가상의 시뮬레이션 중에 하나일지도, 인류의 존재도 시뮬레이션 속 가상 인물 일지도 모른다. 일론 머스크는 이 세상이 가상현실이 아닐 확률이 10억 분의 1이라고 말했다.  

   

사실 지구에 있는 80억 넘는 인간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누군가의 정교한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생물체가 아닐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거대한 은하계 안에 작은 지구, 그 안에 더 작은 국가와 도시, 그저 원자 단위 같은 인간이 자신 뜻대로 살고 있다고 믿고 싶었을 뿐이지.


낯설고 무서운 느낌이다. 한 뼘쯤 열린 문틈 사이로 진실과 허구가 공존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누군가에게 길들여진 삶   

  

'그녀는 말을 하며 실수를 저질렀지, 그녀는 이미지였어. 마치 내가 그런 것처럼 그녀는 이미지였어. 마치 내가 그런 것처럼 내가 아무것도 팔 게 없을 때 그녀는 상품을 곧잘 팔곤 했지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왜냐하면 내가 상품이니까. 말이야.'   

  

배두나 목소리도 안리도 한낮 물건을 파는 이미지였다는 내레이션이 섬뜩했다. 직장 동료들은 세상 밖은 지옥인 것처럼 이 안에 있을 때가 그래도 편하고 좋았다고 했다. 퇴직할 때 모두가 말렸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죄인 브룩스는 가석방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가면서도 두려움에 떨었고 그 낯선 세상을 감당할 수 없어 자살로 생을 마감해 버렸다.

    

태어나 학교 가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나이 들어 죽는 이 시뮬레이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는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그 안이 교도소일지라도 낯선 세상으로 나가기 두려워하는 브룩스처럼 길들여진 사람들은 세상 밖 삶을 두려워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 사회가 만든 시뮬레이션대로 움직이며 그 안이 마치 천국인 것처럼 말이다.     


필립파레노의 작품 속 안리가 ’ 세상 밖 어디든‘ 나와 더 이상 슬픈 캐릭터가 아닌 자신의 이미지로 사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며          


 #살롱드까뮤 #미술에세이 #그림에세이 #공저 #스낵미술 

매거진의 이전글 도쿄도 미술관 '인상파' 전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