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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신효인 Oct 09. 2023

번아웃, 그리고 코로나 19 첫 감염

오늘의 일상은 덤


일기장아 안녕!

너의 품에서 나뒹굴고픈 바람 가득한 나날들을 보내다 오늘에서야 펼쳐본다. 


지난 8월, 벅찬 시안 스케줄을 소화해 내다 번아웃이 세게 왔다. 하루에 마감해야 하는 시안이 7개가 넘어가면서 메일이 왔다는 알람음이 무서워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메일이 오면 눈물이 났다. 손을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눈물이 나면 나오는 대로 흐르게 두고 할 일을 하나씩 해나갔다. 번아웃을 맞고도, 그렇게 한 달을 더 버텼다. 그랬더니 9월에 멘탈도, 몸 컨디션도 다 무너졌다. 살면서 내가 먹을 영양제를 내 돈 주고 사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영양제를 사 먹어봤다. 조금이나마 내게 힘이 되어주진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고. 효과는.. 모르겠다. 1주일 먹고서 더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코. 로. 나. 


내 면역력이 바닥을 친 틈을 타 녀석에게 당해버렸다. 지난 약 5년 간 녀석을 잘 피해왔거늘.. 5년 버틴 기록이 깨진 게 조금 아쉽기도 했는데(그런 기록 아무 데도 쓸데없다~~), 드디어(?) 걸려서 맘이 편하기도 하다. (항체야 환영해)


나는 열흘을 넘게 앓았다. '계속 몸이 안 좋네..' 하는 와중에 10월 1일 새벽, 시안을 쓰는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곧 이어서 온몸의 근육들이 날카롭게 쩍쩍 갈라지는 듯한 근육통이 밀려왔다. '컨디션이 안 좋다'는 차원을 넘어선 정도의 통증들이었다. '몸이 왜 이러지..'를 중얼거리며 시안을 마무리하고 늦은 새벽에 눈을 겨우 붙였는데, 두통 때문에 한두 시간마다 깼다. 잠도 내 뜻대로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두통과 근육통으로 이틀을 앓은 뒤, 본격적으로 고열이 나고 목이 미친 듯이 붓기 시작했다. 침도 삼키기가 어려웠고, 목소리는 나오질 않았다. 이때부터는 코로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가진단 키트로 테스트를 해보니 두 줄이 나왔다. 이상한 고집일 수도 있는데, 나는 원래 약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지간한 증상의 바이러스 질병(감기 등)은 '몸아, 잘 이겨내 보거라~ 항체 만들어 보거라~'하고 배짱으로 버티는 편이다. 그런데 코로나는 약 없이는 버틸 수 없는 통증들의 연속이었다. (연휴 중이어서 병원에 가진 못했고, 집에 있는 해열제와 코푸 시럽으로 버텼는데 다행히 약이 잘 들었다.)


그리고 나는 장염 증세랑 피부 질환이 같이 왔다. 아무래도 면역 체계가 폭삭 무너져서 그랬던 것 같다. 장이 제 기능을 해내지 못했고, 두피가 전부 시뻘겋게 뒤집어졌었다. 열도 8일 까지 계속 났고, 고열이 났던 3~4일 차에는 귀가 보랏빛으로 땡땡하게 부었다. 진짜.. 별의별 증상들을 다 겪었다. 온몸이 돌아가면서 아파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두통, 고열, 인후통의 연속으로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너무 안 먹으니까, 엄마가 제발 뭣 좀 먹으라고 애원을 하다가 '이거 먹을래? 저거 먹을래?'하고 계속 날 꼬셨다. 배도 한 바가지 가득 깎아주시고, 밤도 한 통 가득 까주시고.. 입맛이 정-말 없었지만, 엄마 사랑을 안 먹을 수는 없었다. 냠냠.


이때 너무 아파서 헤롱거렸을 때라 대화 내용이 기억이 잘 안 났는데, 오늘 다시 읽어보다가 내 다람쥐 드립에 피식 웃었당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본격적으로 아픈 지 나흘 째 되던 날, 식욕은 조금 돌아왔으나 후각과 미각을 잃은 걸 알아차렸다. 이후 먹은 음식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맛이 없는 짬뽕, 햄버거, 떡볶이, 아이스크림, 만두, 참치 김밥, 과자였다. 짬뽕 국물은 그저 짠 바닷물이었고, 햄버거는 간이 안 된 빵과 고기를 뭉쳐놓은 것에 불과했고, 떡볶이 떡은 뜨거운 물에 잘 못 담가서 뭉쳐진 라이스페이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이스크림은 지독하게 달기만 했고, 만두와 참치 김밥은 무맛에 느끼하기만 했고, 과자는 바싹 말린 솔방울을 씹는 것 같았다. 모든 음식들이 너-무 맛이 없어졌다. 코로나 때문에 삶의 재미를 잃어버렸다..ㅠㅠ


지금도 글레이즈드 도넛이랑 크림치즈 잔뜩 바른 베이글이 너무 먹고 싶은데, 얼마나 상상 이상으로 맛이 없을까 싶어 겁이 나서 안 먹고 있다. 기대했던 맛을 못 느꼈을 때의 그 서운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 서운함을 마주하느니 안 먹고 만다. 흥. 소중한 후각과 미각이 언제 돌아오려나.. 차가운 배랑 귤, 동생이 끓여준 계란국 빼고는 다 맛이 없다. 잉잉.


열은 드디어! 오늘! 떨어졌다. 아직 콧물-가래가 끼고 목소리가 시원찮긴 하지만 그래도 한결 낫다.


오늘의 이야기도 조금 적어봐야지. 밤에 제출할 시안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동생이 갑자기 나가자고 해서, 오후에 잠깐 집 근처 서점에 다녀왔다. 무척 오랜만에 집 밖에 나갔다. 원래 사람 많은 곳을 안 좋아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 관심이 없는 타입인데, 오늘은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이 반가웠고 (아는 사람도 아닌데..ㅋㅋㅋㅋㅋ) 잠깐씩 눈에 담기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엄마의 손을 잡고 보행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딸, 따뜻하게 눈 맞추고 이야기 나누는 연인들, 호수를 보며 돗자리 위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다 너무 좋아 보였다. 방 안에 너무 오래 혼자 있었나 보다ㅎ


서점에서 이런저런 책을 구경하면서 오랜만에 평화로움을 느꼈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각자 서거나 앉은 자신의 자리에서 책을 탐미하는 덕에 크게 북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여유 있게 여러 책을 훑어보며 작가님들만의 고유한 세계들을 엿보는데, 너무나 즐거웠다. 특유의 분위기, 고유한 어투, 소중한 이야기, 그 안의 메세지까지. 책을 통해 여러 작가님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님 세계에 놀러 가 말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듯한 그 느낌! 너무 좋음. 내 세계가 확장되는 모먼트.


서점 한편에 방문자들이 포스트잇으로 자유롭게 메세지를 남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의 주제는 '자신의 X(전 연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여러 장씩 겹쳐있는 포스트잇을 일일이 다 넘겨보며, 그들의 짧은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읽었다.


- 언젠가 나에게 미안해하고, 고맙다고 느끼는 날이 오면 좋겠어.
- 난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고, 애 낳고 잘 산다.
- 보고 싶다. 너도 내가 보고 싶을까?
- 덕분에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 잘 지내.
- 전역하고 여기 다시 와봤어. 네 생각이 많이 난다. 행복하면 좋겠다.


한 두 문장 정도의 메세지에서 그 너머의 서사를 느낄 수 있었다. 하나하나 얼마나 찬란한 사랑이었을까. 포스트잇에서 묻어나는 다양한 감정들은, 닮은 감정을 품은 나의 추억들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 공간에서 나도 나의 지난 이야기들을 머릿속으로 짧게 훑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삶과 이야기가 있고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감상이 들었고, 이는 내게 위로가 되었다. 사실, '내가 브런치를 잘 운영하고 있는 건가?  있는 을 발행하고 있는 거 맞나? 혹시 을 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을 종종 하곤 했거든. 서점 안에 존재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내 이야기도 이처럼 그 자체로 가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힘이 되었다.


소장하고 싶은 책이 많았는데, 저번에 사놓고 아직 못 다 읽은 책이 있어서 그 책을 완독하고 다시 오겠다는 기약을 남기고 서점을 나왔다. 원래 서점 가는 걸 참 좋아했었는데, 올 해는 너무 바빠서 이 재미를 잊고 살았다. 꼭 재방문해야지.


서점에서 나와 엄마를 만나서 세탁기를 보러 다녀오고 싶었는데(아무래도 세탁기를 새로 사야 될 것 같다. 세탁을 자꾸 포기하심. 오래 쓰긴 했다.) 생리통이 몰려와서 바로 집으로 왔다. 아랫배랑 허리가 뜯기고 끊어지고 있다. 코로나 가시려니 생리가 오셨다. 내일 오전에 이불 빨래하러 세탁방 가려고 했는데, 일찍 일어날 수 있을 모르겠다.


연휴에 코로나에 걸렸던 탓에, 내일 2주 만에 출근을 한다. 설렌당. 얼른 출근하고 싶다. 다들 보고 싶음. 가서 나의 쓸모를 다시 열심히 발휘해야지 후후후.


참, 작사 번아웃 온 것은.. 아직 해결못했다. 일단은 계속 일을 해내고 있다. 날 무너뜨린 것도 시안이지만, 다시 일으키는 것도 시안(정확히는 데모)이다. 벅차서, 숨이 꼴깍꼴깍 넘어서 '나 진짜 더는 못하겠는데ㅠㅠ' 하다가도 내 맘을 뺏는 데모를 들으면 또 어느새 책상에 앉아있다.


내가 있어야 시안도 있는 거라는 걸 깨닫긴 했는데, 기회를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생각에.. 내 삶에 시안만 있고 나는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스트레스/스케줄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밸런스를 잃은 채로 계속 갈 수도 없는 것 같고.. 롭고 괴롭지만, 일단 포기하지 않고 이 시간을 고 나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번아웃 이야기는 나중에 작사글에서 아주 자세히 할 예정이다.


오늘의 수다는 그럼.. 이만 여기서 끄읏 :)


이번 한 주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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