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슬호 Oct 23. 2022

우리는 슬픔을 자주 희석시켰다

할슈타트



똑똑-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덜컹덜컹-

손잡이는 잠겨 있었다.

"뭐지?? 체크인 시간에 맞춰 왔는데."

숙소 담당인 나는 어리둥절했다.


호스텔 주변을 한 바퀴 빙-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묵직한 배낭을 내려두고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바닥에 앉는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버스나 기차를 놓쳤을 때, 호스텔을 찾지 못하는 그런 무능한 순간들을 마주할 때면 우리는 바닥에 힘 없이 무너져 내렸다. 주변에는 약속이나 한 듯 의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이미 주인이 있었다. 그럴 때면 우리에게 품을 내주는 것은 바닥과 계단뿐이었다. 평평한 지점에 털썩 주저앉아 다시 걸을 수 있도록 잠시 시간을 주었다.


바닥의 서늘한 한기가 바지를 뚫고 궁둥이에 닿을 때면 등산용 뽁뽁이가 자주 생각났다. 혹시 모르니 가져가라고 마지막까지 쥐어주던 엄마의 물건이었다. 의자가 있는데 바닥에 앉을 일이 얼마나 있겠냐며 괜히 짐만 되니까 가져가지 않겠다고 했던 물건이기도 했다.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엄마지만, 우리보다 인생여행을 두 배 더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땐 미처 몰랐다. 등산용 뽁뽁이를 안 썼을지라도 지금의 나는 무조건 챙겼을 것이다. 엄마의 말이니까. 그 속에는 자식들이 길바닥에 앉아 궁뎅이가 차가워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엄마의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니까.  


우리는 두꺼운 엉덩이를 믿었지만 바닥의 냉기는 매번 엉덩이를 이겼다. 그렇게 바닥이 우리를 밀어낼 때면 황급히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숙소를 찾지 못해 헤맬 때에도, 버스를 놓쳤을 때에도, 슬픈 엉덩이는 바닥과 늘 함께였다.


닥쳐버린 곤란한 일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마음을 재정비한 후 차가워진 엉덩이를 다시 뜨겁게 움직여야만 했다. 그 시절 우리는 여행은 변수라는 말로 슬픔을 자주 희석시켰다.



멋진 뷰는 없지만


부스럭 부스럭.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장화를 신은 중년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를 발견한 그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너희 내일 오는 줄 알았어. 지금 비가 많이 와서 여기저기 물난리가 났거든. 바로 체크인해줄게!"
신속하게 체크인을 마친 우리는 4인실 방을 배정받았다. "여기야" 그는 열쇠를 주고 다시 바쁘게 사라졌다. 비가 와서 그런지 방안은 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와 습기 엄청나다"
언니가 놀라며 말했다.
"그러게. 전부 목재라 그런지 더 습하다."
젖은 배낭을 내리며 내가 대답했다.

언니는 창문 앞에 있는 침대 1층을 선택했다. 매번 2층에서 자던 나는 반대쪽 침대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이 없는 덕분에 1층에서 자는 경험을 해보게 된 것이다.

조금 습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곳을 찾아서 다행이라고 언니에게 말했다. 할슈타트에서 우리에게 맞는 숙소를 찾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숙소 가격과 경치는 비례했다. 특히 호수 도시로 알려진 할슈타트에서는 더 그랬다. 대부분 산 중턱에 자리한 집창문만 열면 바로 앞에 넓고 깊은 호수를 마주했다. 반면, 골목 안쪽에 위치한 우리 숙소는 창문을 열면 옆 건물의 벽이 보였다. 멋진 호수 뷰가 없는 대신 할슈타트에서 제일 저렴했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머문 숙소 중 가장 비싼 곳에 속했다.


이전 13화 절망을 다 쏟아내고 나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