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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슬호 Oct 30. 2022

얼룩지지 않는 기억

파리



"가장 가고 싶은 나라가 어디야?"

여행을 계획할 무렵, 유럽지도를 펼쳐 든 언니가 했던 질문이다.

나는 프랑스를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

꼿꼿한 손끝으로 강한 의지를 내비던 순간. 가만히 있어지구 반대편 소식을 알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파리는 도시 특유의 분위기로 세계인 마음을 사로잡았고 여러 매체에서 꾸준히 흘러나오는 파리 소식은 '이래도 오지 않을래?' 라며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듯했다. 간지러움을 참지 못한 사람은 모두 파리로 발을 들였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낭만으로 포장된 에펠탑일지라도, 실제로는 별거 없더라도 직접 보고 싶었다.


10월의 어느 날, 그날은 7개국 중 마지막 행선지인 파리 도착한 날이었다. 그토록 바랐던 곳이어서인지 공항에서부터 '드디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후 5시, 숙소 배낭만 내려두고 곧장 밖으로 나다. 마침 해가 질 무렵이었고 에펠탑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도 했. 사진으로 주구장창 봐왔기에 오랜만에 보는 친구를 만나러 가듯 발걸음을 서둘렀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유재석 님이 내겐 너무 익숙한 것처럼 한 번도 본 적 없는 에펠탑에게서 익숙한 설렘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 본 에펠탑은 까만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화려한 조명 빛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케 했고 어둠 속 가려진 에펠탑은 오직 빛으로만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한 가지 놀랐던 점은 내 생각보다 아주 컸다는 것이다. 에펠탑 아래 서면 커다란 철제 다리 4개가 많은 인파를 품고도 남았다. 유재석 님을 실제로 만나면 화면보다 얼굴이 작고 키가 큰 것과 똑같은 걸까.


"내가 알던 에펠탑과 다르지만... 멋져"

나는 조금 아이러니하게도 거대한 에펠탑 앞에서 순간 주눅 들고 말았다. 소개팅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나갔는데 실제로는 더 좋았을 때. 낯설기만 한 에펠탑에게 오래전 만난 친구 같은 느낌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 말을 들은 언니는 한 번도 소개팅해본 적 없지 않냐며 혀를 끌끌 찼다. 언니도 해본 적 없잖아! 내 말에 언니는 껄껄 웃었다.


리는 한참을 서서 에펠탑을 올려다보았다.





비 내리는 파리

파리에는 보슬보슬 비가 내렸다. 들떠있던 모든 이 차분해지는 시간. 물걸레질하듯 골목 구석까지 청소되는 시간.


비가 오면 우산과 우비 놓고 고민했다. 매번 3단 접이식 우산을 사용한 탓에 뜯지 않은 우비 2개가 배낭을 차지해 왔다. 우산은 쓰고 난 뒤 털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우비는 입고 벗고 말려야 해서 조금 번거로웠지만 가져왔으니 써보기로 했다.


언니와 나는 우비를 하나씩 입고 길거리를 나섰다.

모자 달린 우비었을 뿐인데 비가 두렵지 않다. 옷이 젖을까 하는 비 오는 날 단골 걱정 사라졌다. 두 손도 자유로웠다.


빗방울이 우비로 떨어지면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났다. 속도 붙은 액체가 닿는 느낌. 비 오는 날 우비를 쓰는 건 청각, 후각, 촉각이 활발해지는 경험임을 깨달았다. 우산 썼을 땐 몰랐던 해방감이 우비에 있었다. 걷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빗물이 머리카락과 종아리에 닿게 되지만 기온이 떨어져도 우비 때문에 따뜻했다. 나는 이 감각이 꽤 좋았다. 훨씬 자유로워진 채로 파리의 한적한 거리를 걸었다. 촉촉이 젖은 낙엽 냄새를 맡으면서.





한인민박

줄곧 호스텔에서 지내왔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파리에서는 처음으로 한인민박을 선택했다. 여행 마침표를 찍는 도시이자 새롭게 산티아고를 시작하는 곳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가진 짐 일부는 한국으로 보내고 순례길을 준비하기에 한인민박이 편할 것 같았다.


에펠탑 야경을 보고 돌아온 민박집에서 언니는 눈이 돌아버리고 말았다. 부엌에서 진한 카레 냄새가 풍겼기 때문이다. 모두 식사를 마친 뒤였고 카레가 담긴 냄비는 바닥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남아 있는 게 어디냐며 카레를 싹싹 긁어 밥과 함께 비볐다. 옆에는 사장님이 직접 담근 김치가 놓였다. 무려 김치였다.


니는 카레를 한 입 뜨자마자 속 깊은 곳에서 끓여진 곰 같은 소리를 냈다. 중년 아저씨가 얼큰한 국물로 해장할 때 내는 소리 같기도 했다. 40일간 피자와 파스타로 위장에 기름때가 잔뜩 꼈던 터라, 김치로 씻겨 내듯했다. 나는 그 모습에 웃음이 나서 "그렇게 맛있어?" 하고 묻자 언니는 고향의 맛이라며 엄지를 올렸다.


파리 한인민박에서는 손맛 좋은 사장님이 매일 한식으로 저녁밥을 차려주셨다. 어떤 날은 닭볶음탕, 어떤 날은 김치찌개, 어떤 날은 짜장밥. 아낌없이 내 어머 덕분에 관광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위치임에도 우리를 포함한 투숙객들은 저녁시간만 되면 약속이나 한 듯 식탁에 옹기종기 모였다. 파리에 많고 많은 맛집을 뒤로한 채 달려올 만큼 맛있는 한식은 귀했다.


심지어 사장님은 삼겹살 파티를 일주일두 번이나 열어주셨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물게 된 인연으로 우리는 파리에서 한 식탁에 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는 사이가 되었다. 홀로 떠나온 이들과 커플과 친구와 자매가 그곳에 모였다. 살아온 환경도 모습도 제각기 다르지만 파리에서 만큼은 여러 번의 끼니를 같이한 식구였다. 자기만의 테두리를 그려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흡수했다. 그런 시간은 좁았던 내 세계 조금씩 넓히는 경험이었다. 그날 밤 삼겹살과 함께 다양한 가치관이 익어갔다.


느지막한 오후, 루브르 박물관에 가는 일정이 맞았던 두 사람과 길을 나섰다. 나와 동갑 애는 같은 지역에 산다고 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익숙하게 살아온 장소에 대해 떠들 수 있는 경험 조금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날 루브르 박물관 줄은 끝없이 이어졌다.  좋게도 무료 개장일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외국인 커플이 우리 앞으로 끼어들었다. 그들은 저 뒤에서부터 새치기를 해왔던 모양이다.

"새치기..?"

서로 눈빛을 교환한 리는 용히 커플 앞으로 섰다. 자신들을 처음 막아선 행동에 당황한 그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부끄러운 일을 하고도 당당한 사람 앞에서 나는 강한 힘이 생긴다. 아니, 참지 못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주먹을 꽉 쥔 채로 시선을 피하지 않고 했다. "Don't cut in line"

그들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다시 끼어들 틈을 노렸다.


우리는 은 몸으로 그들을 막아섰다. 새치기 커플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존재를 하나둘씩 알게 되었다. 뒤에 선 사람들 양심 불량한 새치기 커플을 몰아내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한 명씩 날카로운 눈빛을 쏘며 그들을 뒤로 보냈다. 공공의 적이 된 그들은 파도에 휩쓸리듯, 멀리 더 멀리 쫓겨났다. NO! 와 과한 제스처는 사라지고 침울 표정아주 멀어진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세상의 당연한 질서를 어긴 의 최후였다. 질서가 무너진다면 아마도 삶은 온전히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세상이 그나마 굴러가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는 작은 승리를 어깨에 맨 채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또 다른 세계를 둘러보는데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책 속에서 보던 작품이 눈앞에 있는 경험은 흔치 않아서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모나리자와 밀로의 비너스, 가나의 혼인잔치, 함무라비 법전 등 황홀한 시간 속을 걸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 해는 이미 진 상태였다. 황금빛으로 바뀐 유리 피라미드는 더욱 빛을 발했다. 우리는 저녁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지하철에 올랐다. 작은 주방은 늘 한식을 그리워하는 젊은이로 북적였고 그들에겐 시간을 잘 지키는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다시 파리에 간다면 그 민박집에 가보고 싶다. 그때와 같은 건 하나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함께 웃던 사람들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웃고 있을 것이다.




작지만 귀여운 마카롱

샹젤리제 거리 유명한 마카롱 집이 많았다. 미식의 나라 파리에서 꼭 먹어야 할 디저트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마카롱 열풍이 불기 전이었기 때문에 동그란 모양의 디저트가 마냥 신기했다. 가게 세 곳을 들러 마카롱을 조금씩 사서 나왔다. 작고 비싸서 원하는 만큼 고를 순 없지만 가게마다 맛이 다를 것 같아 같은 맛을 비교해서 먹어보기로 했다.


에펠탑 앞에 앉아 구입한 마카롱을 펼쳤다. 더 달거나 덜 달거나, 미묘한 차이를 느끼며 열심히 분석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맛에 대한 기억보다 에펠탑 앞에 앉아 느긋하게 마카롱을 먹던 장면만이 렷했다.


여행하면서 기쁨의 절정을 찍게 해 음식은 머릿속에서 '맛있다' 단순해지지만, 어쩌면 그 단순함이 삶을 또 한 번 새로워지도록 만드장치 아닐까. 잊었더라도 다시 맛본다면 새롭게 맛있을 테니까. 맛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또다시 찾게 될 테니까. 밀하게 기억나지 않아도 '거기 진짜 맛있었지' 하나 충분했다.




얼룩지지 않는 기억

민박집주인 아주머니는 홈페이지에 올릴 사진을 찍고 싶은데 모델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민박집까지 오는 길이 복잡했기 때문에 뒷모습 담당해주면 된다고 했다. 떠날 준비로 바쁜 시간을 쪼개야 하는 일이었지만 주인아주머니를 향한 고마움이 두텁게 쌓여있던 터라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날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카메라를 든 사장님 아들과 사장님, 언니, 나 넷이서 길을 나섰다. 한 컷씩 촬영할 때마다 우리는 걷는 포즈를 취하며 멈춰 있었다. 손님들이 민박집을 잘 찾아오길 바라는 사장님의 마음이 사진에 담겼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방 문을 열고 슬쩍 들어오셨다. 그녀는 뒷짐을 진채 "갈 준비 해요?" 하고 물으셨다. 나는 웃으면서 이제 배낭 거의 다 챙겼다고 말씀드렸다.  "이거 주려고.." 수줍게 말하는 주인아주머니 주섬주섬 꺼낸 것은 바로 신라면이었다.  "순례길 걸으면 아마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아까 사진 찍어준 것도 고맙고" 그녀에게서 엄청난 후광이 비쳤다.


언니와 나는 눈물로 신라면 7개를 받았다. 무려 7개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 올랐다. 한국에서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라면이지만 타국에서는 다르게 느껴진 가격 때문에 쉽게 손대지 못했던 라면. 귀한 라면을 품에 끌어안고 우리 셋은 서로를 얼싸안았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기약 없는 마지막은 애틋하기만 하다. 나중에 또 와야지 생각해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세월의 공백을 남긴다. 아마도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만남. 대문 밖까지 마중 나와주신 사장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며 민박집에서 멀어졌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동안 푸근한 사장님은 손을 흔들어주셨고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그 모습은 그렇게 10년이 되어간다. 다시 꼭 오겠다던 약속은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나는 그때를 추억하며 글을 쓴다.


그 시절 7개의 신라면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아주 유용했다고, 하나씩 꺼내 먹을 때마다 아주머니가 생각나서 아직도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고. 10년이 지나도 따뜻했던 기억은 쉽게 얼룩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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