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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 호 Oct 30. 2022

마음이 녹는 시간

베네치아


사진으로 베네치아를 본 사람은 입을 모아 말한다. "여긴 꼭 가야 해" 나 역시도 그 부류에 속했다. 수중도시에는 머물고 싶어 하는 이들로 넘쳤다. 다른 도시하루치 숙박비를 한 번 더 얹어야만 묵을 수 있지만 그마저도 빈자리가 없었다.


베네치아에서 숙소 찾기란 이탈리아에서 가장 비싼 도시 물가를 실감하는 일이었다. '여긴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속삭이는 것 같았다. 다른 도시보다 무거운 하루를 견뎌낼 자신이 없어서 베네치아에서 가장 가벼운 금액을 쥐고도 머물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최저가 순으로 검색할수록 본섬에서 점점 멀어졌지만 언니와 나는 그곳이 어울다고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외곽으로 달려 작은 정류장에 내렸다. 좁은 굴다리를 지나자 예약해 둔 숙소 보다. 입구에 들어서니 하늘색 물이 담긴 야외 수영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에 수영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몇몇 외국인은 수영복을 입은 채로 헤엄치고 있었다. 그들은 방갈로에 묵는 듯했다.


1인당 하루 9.5유로, 다른 어느 도시보다 가벼웠다. 대신 호스텔이나 방갈로가 아닌 처음 묵어보는 공용 텐트였다.


처음은 늘 결과와 상관없이 설렘을 툭 하고 던져준다. 겪어보지 않아서 생기는 떨림이 그 안에 있다.




가진 것이 적을수록 주요 관광지로부터 떨어진 곳에 둥지를 틀지만, 멀어진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북적거림과 대조되는 고요함이 그곳엔 있어서일까.


자전거로 출근하거나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은 터를 잡고 사는 사람이 모인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굳이 현지인 맛집을 찾지 않아도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는 식당과 카페에 갈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나는 오히려 여행 범위가 넓어진 기분이 든다. 본섬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 달려온 곳에 베네치아 사람들의 일상이 스며있었다.


언니와 나는 동네 작은 젤라또 가게에 들어가 피스타치오와 티라미수 맛을 골랐다. 눈에 보이는 벤치에 앉아 본격적으로 젤라또 맛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빨간색 스웨터를 입은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집 창문에 서서 햇살을 쬐는 듯했다. 한 방향을 응시하던 그녀는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아침을 보냈다.


나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 사진으로 담다가 얼굴 근육이 씰룩하고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저절로 지어지는 미소는 무의식 중에 이루어다. 지어지고 나서야 깨닫는 그런 .


표정은 마음속 감정을 잡아다가 얼굴 위로 끌어올. 살면서 자주 짓는 표정이 얼굴에 새겨지고 인상은 마음을 대변한다고 믿지만, 이런 나도 매번 웃고 있기가 쉽지 않았다. 기쁜 날보다 평범한 날이 많았고 웃는 날보다 무표정을 지을 때가 많았다.


그랬던 내가 처음 떠난 여행에서는 작은 일에도 곧잘 웃다. 같은 것을 보아도 마음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미끄러졌다. 단순한 것을 단순하지 않게 보는 눈을 여행에서 지니게 되는 듯했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얼어있던 마음을 녹여주는 시간이었다. 떠도는 날이 길어질수록 차가웠던 인상이 따뜻하게 풀어진 이유기도 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아주 긴 시간이 흘렀어도 나는 종종 그때를 떠올리곤 한다. 안광이 반짝이던 그때의 마음을. 사실 내가 어디에 있 무엇을 하든, 어떻게 생각하고 음 먹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품고 있는 그때의 마음 깍여 나가는 날에도 오히려 미소를 짓게 된다. 살다 보면 쉽지 않을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스치듯 봤던 마켓 하나가 있다. 규모가 커서 저긴 꼭 가봐야지 싶었던 곳. 우리는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새로운 도시의 대형 마켓 앞에 서면 왠지 모를 설렘이 뒤따다. 그 나라의 언어가 쓰인 포장 용기 속에는 익숙한 것담겨있지만, 맛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고르는 재미가 생긴다.


우리는 아침으로 먹을 바게트와 곡물식빵, 쌀 요플레와 양상추, 시리얼과 햄, 참치 등을 샀다. 언니는 늘 아침에 샌드위치를 해주었기 때문에 베네치아에서도 샌드위치가 우리의 아침이 될 터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엔 동네 피체리아에 들러 프로슈토 피자 한 판을 포장했다. 화덕에 구운 도우는 쫄깃했고 이탈리아가 왜 피자의 본고장인지 알 수 있는 맛이었다. 막 나온 화덕피자에 감동한 나머지 숙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걸으면서 한 판을 해치웠다.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했다. 길을 걸으면서 피카츄돈까스나 문방구에서 파는 밭두렁, 꾀돌이를 자주 먹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성인이 된 후로 길에서 무언가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아이스크림처럼 가벼운 간식 말고 피자 같은 식사류는 더더욱 시도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여행에서는 벤치에 앉거나 길을 걸으며 식사를 해결하기도 했다.


떠나온 사람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걸까. 내 마음이 자유로워진 걸까. 뭐가 되었든 이 느긋한 오후가 좋았다. 피자와 대형마켓 덕분에 오늘은 완벽한 하루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텐트에 들어서기 전까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쿰쿰하고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텐트 특유의 향인 듯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둔해진 코 덕분에 냄새는 잊혔지만, 차가운 공기만큼은 피부에 달라붙어 열기를 빼앗아갔다. 텐트 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꽉 차있었다.


공간 대비 여러 인원이 묵을 수 있어 호스텔에서 자주 마주했던 2층 침대는 이곳에도 존재했다. 언니는 1층, 나는 2층. 좋아하는 자리가 겹치지 않아 밤이 되면 서로 자리를 찾아 흩어졌다. 이번에도 잠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계단을 올랐다.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에 빠지는 편이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한기가 피부 깊숙이 스몄고, 발이 얼음덩어리가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술한 텐트에는 틈이 많았고 그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파고들었다. 얇은 이불 하나 가지고는 어림없는 추위가 텐트 속에 잠식해 있었다. 밤이 되자 기온이 뚝 떨어진 베네치아의 또 다른 얼굴과 대면하게 된 것이다.

"언니, 여기 너무 추운데" 아래턱을 덜덜 떨며 말했다.

"여기도 마찬가지야" 언니 말이 끝나자 우리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 후, 하고 불자 하얀 입김이 피어났다.


새로운 위기 앞에 서면 비장함으로 무장할 수밖에 없게 된다. 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 전쟁에 나가는 장군이 갑옷을 걸치듯 얇은 티셔츠 위에 집업을 입었다. 가진 옷 중 가장 두꺼운 옷은 빨간색 집업뿐이었기 때문에 그걸 걸친 채로 바람을 막기 위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모든 담요와 수건을 동원해 아래층 침대를 돌돌 감쌌다. 신문지가 단열 효과에 좋다는 말이 떠올라서 종이 지도도 머리맡에 끼워 넣었다. 조금 우스운 모습이긴 했지만 냉기를 막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했다.


우리는 비록 좁은 1침대에서 같이 잠들어야 지만, 한편으로는 36.5도가 옆에 자리한 사실만으로 무척 든든했다. 언니와 나는 담요를 목 끝까지 덮은 채로 동시에 히말라야에 계신 한 사람을 떠올렸다. 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과의 이야기는 순조롭게 흐른다고 느꼈다.


우리가 대장님이라 불렀던 그분은 국토대장정에서 만났다. 언니는 7기, 나는 8기. 운이 좋게도 지방에 살던 우리가 처음으로 했던 대외활동이었다.


"박영석 대장님은 얼마나 추우셨을까"


그가 안나푸르나에 잠든 지도 3년이 된 해였다. 추위는 많은 것을 앗아다. 온기도 숨결도 움직임도. 극도로 섬뜩한 새벽 한기는 가본 적 없는 히말라야 추위를 떠올리게 했다. 마음까지 꽁꽁 얼게 만드는 시린 추위 속에서 대장님이 생각나서, 서로를 말없이 꼭 껴안았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칠수록 이미 죽고 없는 그가 더욱 그리워졌다.








담요둘러싸인 침대에서 맞이한 아침, 먼저 일어난 언니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딸기잼과 땅콩버터, 전 날 사둔 식빵이 눈앞에 놓였다. 일어난 직후라 뭔가 먹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준비해 둔 걸 보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 언니는 늘 먹는 것에 부지런했고 그게 나를 향한 배려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갈 때도 시험공부할 때도 언니는 직접 만든 도시락을 손에 쥐여주었다. 보온 도시락에 담긴 볶음밥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따뜻했다. 새벽부터 분주했을 언니의 사랑과 너그러움이 음식으로 바뀐 것을 보며 배를 채웠다. 덕분에 텅 빈 식탁에서 혼자 삼키는 시간들이 외롭지 않았다.


원래는 샌드위치를 하려다가 너무 추워서 빵으로 대신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비좁은 침대 위에서 쨈 맛에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드는 언니가 있어서 춥다는 불평 대신 웃음으로 하루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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