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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Mar 05. 2024

소리들이 쳐들어온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Pexels님의 이미지 입니다



귀가 예민해졌다. 귀가 밝은 정도가 아니라 귀가 예민해져서, 내가 귀가 예민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예민’이라는 단어와 귀가 결합하면서, 그야말로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멀리 앉아 있는 사람이 목에서 자동차 깜빡이를 켠 듯한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내 귀에 들리기 시작하면 마이크 앞에서 강의하는 사람 목소리보다 크게 들린다. 이어폰을 끼고 볼륨 높인 음악 소리 보다 주변의 통화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테지만 내 귀에 불협 음이 들어오면 그 순간 모든 소리가 그 불협에 집중된다.


조화롭지 못한 소리는 나를 힘들게 한다. 어느 출근길이었다. 어디선가 우왕좌왕하는 목소리가 이어폰을 뚫고 들어왔다. 무슨 큰 사고라도 난 줄 알고 돌아보니 고등학생 여학생 몇 명의 웃음소리였다. 뭐가 그리 신날까. 분명 대단한 일로 웃는 게 아니었을 텐데 대단한 일이 아님에도 저렇게 큰 소리로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싱그럽게 느껴졌다.  


시끄러운 것이 싫어 클럽도 나이트도 한 번 가지 않았다. 혼자 집에서 사부작거리고, 고요하게 있는 시간이 좋다. 과묵한 사람은 아니고 조잘조잘 말을 잘하는 사람이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여럿이 있는 시간보다 좋다. 그렇다고 만남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내게 해 준 말이 딱 맞다. 너를 누가 맞추니. 까탈스러워가지고.


최근 아주 불편한 소리가 생겼다. 사무실에서 들리는 여러 소리 공격에 자주 이어폰을 낀다. 누가 계속 나를 부르는 것 같은 기분에 불안해서 금세 빼버리거나 소리를 확 낮추어 듣긴 하지만. 나는 주로 입이나 목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나는 소리에 민감하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소리. 대체 목 어디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 건지 하찮고 작은 소리가 내 귀엔 너무 또렷이 때려와 박힌다. 


혀를 입천장으로 똑똑 쳐서 내는 소리. 쯔쯔쯔, 탁탁탁. 입술과 입술을 부딪쳐서 내는 소리. 빠빠빠, 파파파. 휘파람을 불거나 휘요휘요휘요 내는 소리 등등. 소리가 싫은 거지, 사람이 싫은 건 아니다. 어떤 날은 유독 견디기 힘들어서 정중하게 말해보려고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하고 글로 적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도 말하지 못했다. 조심스럽고 어째 좀 민망했다. 말해놓고 나면 상대방에게 너무 미안해질 것 같아서 참고 참았다. 


하지만 한 사람에서 시작된 이 소리는 어느 순간 전염이 되어 사무실 곳곳에서 한 번씩 툭툭치고 나온다. 어떡해야 이 소리들을 내 귀에서 떼어 낼 수 있을까. 이 소리들이 들릴 때마다 고요한 내 공간에 누군가 불쑥 쳐들어오는 것 같아 불쾌하다. 마음을 다스리려고 책상 서랍을 열어 단 것을 찾거나 얼른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재생시킨다. 


“음표, 조표, 쉼표, 템포 등을 지켜 조화롭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약속된 조화를 깨고 불협이 나는 것을 싫어한다.”


에세이 클래스 300초 라이팅에서 나는 무엇인가에 관해 쓴 글이다. 하지만 어느샌가 그 조화라는 것을 너무 내게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내가 힘들고 거슬리면 불협이었고 약속된 조화가 깨진 것이라 여겼다. 웬만한 일엔 이해와 용서가 쉬우면서도 되려 아주 별것 아닌 것에 예민해지는 내가 이 불협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고민이다. 언젠가는 머릿속에서 수없이 그려봤던 그 말들을 꺼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내 예민함이 나를 찌를 때면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정말 나 좀 둔했으면 좋겠다고. 그럴 수 없다면 내 귀에도 노이즈캔슬링 기능이 있다면 참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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