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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Apr 19. 2024

다 돼 다 돼 그렇게 돼 있어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낸 지인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머릿속에 맴도는 짧은 시가 있다. 문인수 시인의 ‘하관’이다. 시인은 어머니 시신을 모신 관이 흙에 닿는 순간을 바라보며 ‘묻는다’는 동사를 쓰지 않고 ‘심는다’고 표현한다. 어머니를 심는다고.

“이제,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     

_이기주, <언어의 온도> 본문에서     


나는 매일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 보고 싶다는 생각이 차고 넘치면 “아… 엄마 보고 싶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자려고 누워서 “엄마, 엄마” 불러보기도 한다. 어느 날은 산책하다가 엄마가 떠올랐다. 날이 좋았다. ‘나는 이 좋은 날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걷고 있는데 엄마는 장사하느라 바쁘겠지’ 하는 마음에 순간 가슴이 뻐근했다. 엄마 생각을 계속하다가 떠오른 생각을 메모장에 정리했다. 걷다가 떠오른 글을 적어둔 거라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 엄마가 없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 크기만큼 가슴에 구멍이 생겨 숨을 쉴 때마다 찬바람이 스치고 가는 것이다.”      


내 인생 드라마 중 한 편인 <고백 부부>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진주야.

-응?

-예쁜 내 딸.

-응… 예쁜 엄마 딸…

-이제 그만… 네 새끼한테 가…

-엄마…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어. 이게 무슨 일인가, 싶고. 근데, 그건 알어. 부모 없이는 살아져도, 자식 없이는 못 살어. 울 거 없어. 어떤 슬픔도, 무뎌져. 단단해져. 그렇게 돼 있어.

-안 단단해져… 안 무뎌져…

-계속 슬퍼… 계속 보고 싶어… 그게 어떻게 돼… 엄마…

-자식 키우다 보면, 다 돼. 다 돼...

     

정말 그럴까. 자식도 부모 없이는 못 살 것 같은데. 나는 여태 자식이기만 해서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이 어떨지 가늠이 안 된다. 내가 아무리 가늠해 보려 해도 근처에도 가닿지 못할 것이다. 부모 잃은 자식 마음 역시 그렇다. 아주 잠깐 그 빈자리를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두렵고 무서워서 얼른 생각을 흐트러뜨린다.


감히 상상조차 못 할 고통을 당한 사람들도 오늘을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도,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도 살아간다. 안 단단해지고 안 무뎌지고 계속 슬프고 계속 보고 싶더라도 살아간다.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생명은 오롯이 내 것이 아니다. 내 기쁨도 내 고통도. 내 삶에 온전히 내 것인 건 없다. 고통을 떠넘길 수 없어서, 서로의 고통을 나눠지기 위해 서로의 기쁨에 동참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의 삶에 지분을 갖고 살아간다.


언젠가 나도 두렵고 고통스러운 순간 속에 서 있을 것이다.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순간이지만 무너질 것 같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 같지만 아마 그래도 견디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가 꼭 있어야 하는 존재들이 내 옆에 있을 것이고 시간이 나를 무뎌지고 단단해지게 만들어 줄 것이다. 안 단단해지고 안 무뎌지고 계속 슬프고 보고 싶더라도 살아갈 것이다.


시인은 "이제,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말라"라고 했지만, 나는 그 무엇으로도 다시 피어나 달라고 말하고 싶다. 피고 지고 피고 지는 모든 순간을 기다리고 보고 싶고, 다시 기다리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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