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핸드폰 문자 메시지에 전송된 사진 한 장 때문에 한숨이 나왔다. 문 앞에 놓여 있어야 할 상자가 또 아래층에 있었다. 101호에 사는 나는 2.5층에 있고, 아래쪽 1.5층에는 01·02·03호가 있다. 숫자만 보면 101호가 1층 같아 보이니 기사님들이 헷갈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왜 이렇게 호수를 엇갈리게 만들어놓았는지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쿠팡이나 한진, CJ 같은 큰 택배 회사는 대체로 정확한 편이지만 판매업체에서 직접 보내는 택배들은 유난히 01호로 내려가곤 한다. 지금까지는 가벼운 상자였기에 그냥 내려가서 가져왔지만, 혼자 들기 힘든 무게였다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도 번번이 스친다. ‘언제까지 이렇게 불편해야 하지?’ 하는 짜증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세수하고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았다. 이번에도 없었다. 01호에서 들고 들어간 것이다. 예전에 교보문고에서 주문한 책 열 권도 01호에서 들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이미 박스를 전부 뜯어놓은 상태였다. 그땐 상한 음식이나 특별한 물건도 아니었고 책이었으니 웃으며 들고 나왔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 집과는 애초에 에어컨 실외기 문제로 마찰이 있었다. 우리 집 실외기가 자기 집 베란다 앞에 설치되면 소리가 시끄럽고 뜨거운 바람이 들어온다며 상당히 예민하게 반대했다. 어찌나 화를 내던지, 에어컨 기사님도 “진짜 너무하시네”라며 황당해했었다. 결국 불필요한 추가 비용을 내고 실외기를 엉뚱한 곳에 설치해야 했다(베란다 앞에 실외기 거치대가 있는데도). 그런데 정작 01호 실외기는 01호 집 베란다 앞에 버젓이 설치되어 있다. 그때 생긴 억울한 감정이 에어컨을 켤 때마다 불쑥 올라온다.
그 01호에! 내 택배가 또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아침부터 마음이 눌렸다. 급하게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바로 찾긴 힘들겠지’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일전에도 그랬었다. 벨을 눌러도 반응이 없고 문을 두드려도 조용했다. 안에서 기척이 들리는데도 문을 안 열어줬다. 나도 택배를 찾아야 하고 택배 기사님을 괜히 번거롭게 하는 것도 싫어서, 택배가 잘못 배송된 것 같으니 문 좀 열어달라고 계속 문을 두드렸다. 진짜 문이 열리기까지 옆집 윗집 눈치 보며 종종거리며 노크한 것 같다.
이번에도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설레며 기다리던 물건이 남의 집 안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오늘 하루 내내 신경이 쏠릴 것 같아 마음이 잔뜩 예민해졌다. 문도 안 열어주고. 여러 번 오배송된 걸 알고 있을 텐데 한 번쯤 주소 확인은 하고 들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은 낯선 방문에 문 열기가 조심스러운 시대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라 이해해야지 하며 준비해 둔 포스트잇을 꺼내 현관문에 붙였다.
“101호입니다. 택배가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문 앞에 다시 꺼내 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떨어질까 봐 몇 번이나 꾹꾹 눌러 붙이고 돌아섰지만, 눌려 있던 마음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회사에서 바쁘게 일을 하면서도 불쑥불쑥 택배 생각이 났다. 어차피 찾을 거고, 잘못 배송되었다면 택배 회사에서 알아서 처리해 줄 텐데, 그걸 알면서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오늘 하루를 이렇게 망쳐버렸나. 단순히 택배가 오배송된 것에 마음이 눌린 게 아니라 껄끄러운 사람 집의 현관문을 다시 두드려야 한다는 게 스트레스였나 보다. 게다가 예전에 내 택배를 마음대로 뜯어놓은 기억도 있으니 좀처럼 마음이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퇴근했을 때 내 택배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택배 상자는 온전할까? 내용물에 문제만 없다면 나는 또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웃으며 돌아서겠지만, 아주 이런 내가 싫다. 싸움을 잘하고 싶다.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