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을 과잉보호 하기의 결과는?

더러운 감정도 느껴보자

by 선배언니

“그냥 참을래요. 이 상태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얼마 전 동료 팀장과 수년에 걸쳐 갈등과 긴장관계에 있던 여성팀장은 나와 몇 차례 코칭 끝에 자포자기식으로 말했다.


“그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하잖아요. 뭐가 두려워요?”

“그 사람과 언쟁하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 뒤에 남을 나의 감정처리가 더 문제예요. 그런 문제 때문에 내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싶지 않아요.”


상대는 남자 팀장이었다. 그는 자기 방식으로 매우 일을 철저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자기 확신이 지나치고 따라서 자신의 의견이 공격받았다고 생각되면 전투적으로 대응했다. 그래서 그의 의견이 좀 거칠고 지나쳐도 그녀를 포함한 팀원들은 아닌 걸 알면서도 입을 다무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내성적이라 칭했다. 남의 의견에 정면으로 대치하는 것이 불편하고 따라서 언성을 높이는 사람들에게는 빠르게 백기를 든다. 이경우도 그렇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 내부는 그리 순응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상대의 독선적인 태도에 물러나지만 마음은 부글부글 끊고 이것이 점점 쌓이는 게 문제였다.


이런 태도가 계속되다 보니 그녀는 얼마 전 크게 앓았다. 다행히 최근 재택근무를 하게 되어 문제의 상대방을 보지 않게 되자 맘이 편하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농담조로 아픈 곳을 찔렀다.


“ 불안을 안은 평화네요. 언제까지 갈까요?” 그래도 지금이 좋다는 그녀. 자기 자신의 눈을 가리고 귀를 꼭 막은 어린이 같은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과잉보호하고 있다.


또 한 명의 여성리더가 있다. 그녀는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조직의 최고 자리에 있다. 웃음이 많고 상냥하며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진 여성이다.


그런 그녀 역시 목소리 크고 자기주장이 강한 팀원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 팀원은 회의에서 70% 이상의 발언권을 독점하고 있었고 심지어 상사인 그녀의 말도 서슴없이 가로막았다.


똑똑한 팀원이지만 이런 성향은 조직의 분위기를 망치고 있었다. 지금쯤 리더가 어떤 조치를 취해 주기를 기대하는 팀원들의 눈길을 느끼며 그녀는 일단 1:1 미팅의 자리를 마련하고 나를 만났다.


“그 팀원에게 무엇을 말할 건가요?”

“미팅을 잡긴 했는데 지금부터 잠이 안 오고 긴장돼요. 일단 해야 할 말을 스크립트로 정리해 놓긴 했는데 그날을 생각하면 두려워요.”


“무엇이 두려운가요?”

“평소대로라면 상대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속사포로 부당함을 주장하고 나는 반박도 못하고 있다가 미팅이 끝날 것 같아요.”


“그런 경우에는 무슨 느낌이 드나요?”

“저는 그런 경우 머릿속이 하얘지고 얼어버려요.”

헐! 50이 넘게 조직생활을 하면서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간 그녀는 뜻밖에 나약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요?”

“네? (침묵), 글쎄요. 그 이후는 잘 모르겠어요. 말씀을 듣고 나지 갑자기 띵 하네요.”

“어떤 느낌이 드는데요?”

“제가 항상 회피하고 도망가는구나 싶어요. 실제 부딪혀 본 일이 거의 없어요.”


그녀는 무엇을 회피하고 있을까? 상대방과의 갈등과 부딪힘을? 아니다. 첫 번째 사례를 포함해서 그녀들이 회피하고 있는 것은 상대방과의 다툼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서로 존중하면서 합리적으로 의견을 좁혀 가는 것이 최선이겠으나 그래도 회피는 차선이 아니다. 차선은 필요시 언성이 좀 높아지더라도 정확히 내 의사를 표현하고 상대의 반응이 어찌 되었든 정면으로 직면하는 것이다. 그때 감정이 상하는 것은 사람인 이상 당연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조직에서 따듯하고 평화로운 감정만을 느끼겠는가?


우리는, 특히 여성들은 지나치게 자기감정을 보호하려 전전긍긍하며 목소리를 내야 할 때 말을 삼키며 돌아서서 끙끙거린다. 자기감정의 진폭이 출렁거리는 것이 그리도 겁나는 일인가? 감정은 마냥 차분하고 잠잠할 수는 없다. 파도와 마찬가지로 때론 풍랑이 일고 때론 파도가 치고 가끔씩 고요하다.


나는 두 번째 케이스의 여성리더와 대화를 마치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서로 웃으면서 헤어졌다.


“리더로서 이제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될 때인 것 같네요. 부드러운 리더십은 지금까지는 강점이었으나 상황과 사람에 따라 리더십을 바꿔야 하는 리더십 체인지가 필요할 때라 생각돼요. 지금의 경우는 차분하게 지금까지 보고 느끼신 것과 그것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세요. 그리고 그에게 앞으로의 태도변화를 요구하세요. 난리 치겠지요?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나 보시지요. 다음번에 엉망징창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래요?”


그녀는 처음과 다르게 외려 다소 편안해진 얼굴로 웃었다.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특히 여성들의 경우에 말이다. 감정도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 생각하자. 꽉 끌어안고 있을 수는 없다. 때론 요동치고 때론 내 품을 뛰쳐나가기도 한다. 그냥 그대로 바라보자. 바라보면 그러다 돌아오는 게 감정이다. 적어도 화병은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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