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엄마의 엄마
내가 기억하는 외할아버지는 좁은 방 안에서 담배연기 가득 뿜어내면서
방바닥에 비스듬히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다.
그러다 무언가 요구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좁은 방안에는 낡은 책장이 있었고 알 수 없는 책, 아니 제본이 안된 교본 같은 것들이
꽂혀 있었다.
후에 알고 보니 그것은 세상에 나오지 못한 할아버지의 영화대본이었다.
그렇다.
할아버지는 평생을 발을 땅에 붙이지 못한 채 붕붕 하늘을 날며 꿈을 이루려 했고
늙어서는 이루지 못한 꿈을, 영화대본을 눈앞에 마주한 채 아쉬움과 낙담을 삼키고 있었다.
큰 외삼촌과 결혼하여 평생을 좁은 집에 함께 살며 시부모를 모신 외숙모는 곱고 착한 심성이었지만
가끔 힘드냐는 엄마의 질문 겸 물음에 고개를 숙이며 말이 없었다.
뭔가를 이루려 밖으로 싸돌아다니던 할아버지는
언제부터인가 나이도 들고 힘이 빠지자 할머니의 집으로 슬쩍 들어왔다.
후에 이모를 포함한 자녀들은 왜 그를 받아들였나며 두고두고 할머니를 원망했다.
할머니가 가장 피해자인데 자식들의 상처도 그만큼 컸다.
할머니는 남대문에서 구제품, 중고 옷을 파는 장사를 하면 생계를 이어갔다.
어릴 때 엄마의 손을 잡고 찾아간 할머니의 가게는 정식 가게가 아니었다.
그저 좁은 골목에 길게 천막을 친 곳에 땅바닥에 뭔가를 깔고 옷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파는 그런 간이 천막가게였다.
하루종일 장사를 한 할머니는 우리들의 생일에는
장사를 마치고 떡과 과일을 사서 이고 지고 우리 집으로 오셔서
하룻밤 자고 가시곤 했다. 말도 없이 가지고 온 과일과 떡을 내밀며
피곤한 몸을 방 한편에 뉘우셨던 할머니.
그때 먹은 꿀배기 사과를 잊을 수 없다.
동네 과일가게의 사과와 확연히 다른 크고 가운데 꿀이 배긴 사과.
지금도 꿀사과를 보면 할머니의 하얀 얼굴, 피곤과 그늘이 있는 작은 얼굴이 떠오른다.
슬쩍 집에 들어온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사고를 쳤다.
할머니가 좌판으로 어렵게 마련한 개봉동 꼭대기 집을
몰래 담보 잡고 돈을 빼낸 것이다.
생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방을 포기하며 집의 한 칸을 헐어 슈퍼마켓, 아니 구멍가게를 내어
숙모가 장사를 한 그 집을 말이다.
나중에 담보 잡힌 집이 넘어가는 순간에 이 사실을 안 자식들과 할머니.
할머니는 쓰려지셨고
그 중간의 일은 내가 기억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방학 때면 며칠 머물며
마당의 푸세식 화장실에서 신문지를 비비며 볼일을 보곤 했던 개봉동의 그 집을
다시 갈 순 없었다. 그로서 나의 푸세식 화장실, 똥파리와 구더기와의 대면은
이것으로 끝났다.
그 뒤로도 꺾이지 않은 할아버지의 당당함. 버럭.
내쫓아야 한다는 이모의 강한 주장과 쌓인 미움에도
할머니는 그 뒤로도 말없이 할아버지를 묵인했다.
단, 말도 섞지 않았던 것 같다.
할아버지의 인생은 결국 길에서 끝났다.
백수이고 노인인 주제에 끝까지 양복 차려입고 시내에 나가 못다 한 꿈을,
허황된 꿈의 끝자락을 붙들려했던 그 노인은
어느 날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타려는 순간 쓰려졌고 그 길고 눈을 감았다.
집을 떠나지 못해 환장했던 그가 선택한 마지막 장소도 지하철 선로 옆이었다.
평생 아버지를 보지 않으려 했고,
할머니댁에 가서도 할아버지를 쳐다보지 않고
강렬한 적대감을 감추지 않았던 이모는 한마디 했다.
'잘 죽었다'
엄마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요즈음의 죽음의 과정을 보면 어쩌면 그는 잘 죽었다.
끝까지 꼿꼿하게
가족에게 변함없는 미움을 받으며
젊음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채
질병 없이 화끈하게 그 좋아하던 길 위에서 한 순간에 생을 마친 것이다.
이것이 그가 할 수 있었던
가족에 대한 마지막 봉사였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할머니는 그 뒤로 몇 년을 더 사셨다.
마지막에는 집이 없어 이북에서 내려와 성공한 친척의 별장에 옮겨
그 큰 별장에서 무서움을 호소하며
나날이 쇠약해지시며 눈을 감으셨다.
학창 시절,
아직 철없었던 나는 지금의 김포 고촌에 있는 그 별장을 찾아가
너른 잔디와 바베큐장을 즐기면 부러워하고 신나 했던 기억이 있다.
두 노인의 삶.
특히 할머니의 인생.
내가 감히 평가할 수도 없지만
한 여자의 일생을 생각할 때
아직도 마음이 저리다.
할머니의 음성을, 웃음을 기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