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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Feb 12. 2021

딸은 온몸으로 나를 본다.(see)

기절한 엄마 혼자 옮기기

직장을 다니며 호흡기 질환 등으로 고생하는 딸 때문에 집안에 먼지 한 톨도 용납할 수가 없어 아침, 저녁으로 청소를 하고 다니며 대걸레질,

직접 손걸레질을 하고 방안의 습기 조절을 위해 매일 빨래를 해서 널며 미친 듯이 치열하게 살았다.


아이는 업은 등에서 내려놓으면 1분도 지나지 않아 코가 막히고 기침을 시작해, 밤이고 낮이고 작고 마른 내 등에 매달고 눈물을  흘려가며

키워냈다.

남편도 도우려고 애썼지만 남편은 말 그대로  잠시 도우려고 애쓰는 사람에 불과했다.

졸리면 자야 했고 회식도 해야 했고 술도 마셔야 했다.

남편과 함께 아이를 낳았지만 딸의 추억 속엔 아빠가 많이 들어있지 않다.


딸은 엄마와 함께 외가댁의 울타리와 전폭적인 경제적 지원 안에서 외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부족함 없이 바른 아이로 잘 자라 주었다.






내가 CRPS 진단을 받은 1년이 채 안되던 어느 날 심한 돌발통 후에 다리가 부은 것을 발견하게 됐다.


허벅지 까지 피가 안통하는 느낌이 들 정도 였어요. 헐~~완전 코끼리 다리처럼 보이네요!!

그전부터 몸은 차가운데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이상한 몸상태가 지속됐었지만 그저 체력이 떨어지고 아픈 곳이 많아 그러려니 생각하고 있기만 했었다.

게다가 그때 이미 다니는 진료과가 6군데나 되어 어느 과에 문의를 하고 진료를 봐야 하는지도 몰랐던 때였다.

하지만 남들은 한 가지도 갖기 어렵다는 희귀 난치질환을 두 가지나 앓고 있는 특이한(처음인) 케이스였던 탓에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생기면 진료 일정과 상관없이  예민해진 몸을 잠시라도 쉴 수 있도록 언제든지 입원이 가능하게 되어있었기 때문에 다음날 바로 입원 요청을 하게 됐다. ('뇌신경센터' 교수님께서 외래 간호사실에 매달 따로 'memo'를 남겨 놓으신 덕에 통증으로 지치고 예민해진 몸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입원하자마자 그동안 몸에 쌓인 약물들을 다 씻어내는 작업?(wash out)을 거치게 됩니다.
평소에 먹는 약 외에도 통증 발생 시에 먹는 약이나 불안증이 생겼을 때에 먹는 약, 불면증에 먹는 약들이 혈액 속에 남아 있는 것을 없앤 후에 마취제 성분인 '리도카인'희석액을 링거로 맞으며 극도로 예민해진 몸의 통각을 가능한 낮추려고 시도하고 돌발통이 발생했을 때에도 입원 시에는 '모르핀'을 사용해 통증의 시간을 줄이려 애를 씁니다.
그리고 수면제를 먹고도 항상 잠을 못 자는 나를 위해 수면시간에 맞춰 '졸피뎀'을 투약하고 잠이 들지 못하면(항상 잠이 들지 못하지만!) 추가로 '아티반'을 주사해 편히 잠들 수 있도록 해줬어요.
입원을 하는 며칠, 몇 주 동안이 그나마 힘든 와중에 모든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불편했던 건 '리도카인'으로 인해 생길 부작용의 위험 때문에 몸에 여러 가지 패치를 붙이고  여러 대의 기계를 끌고 다녀야 하는지라 화장실 한번 가기가 지독하게 힘들었다는 점이었어요.


입원한 후 바로 내 다리를 보신 신경과 교수님은 '마취 통증  의학과'에 협진을 요청하셨고 이것저것 불편한 검사를 진행한 후에 마침내 내게 병명을 말씀해 주실 수 있었다.


자율신경 실조증.

자율신경은 부교감 신경과 교감 신경이 잘 조율되어 혈관, 눈동자, 근육의 수축, 팽창과 위, 장의 자동운동의 조절, 땀샘, 방광, 침의 분비, 위나 장의 점액 분비의 조절 등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자동 조절 기능을 담당하는데, 쉽게 말하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살아가는 일을 돕고 있는 조절 신경이 자율신경이다.

이 기능을 상실한 것이 '자율신경 실조증'이다.


나한테 생겼던 증상은 너무나 여러 가지라 나열할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이었던 건 샤워하고 나오는 동시에 다시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는 사실과(정말 온몸에서 땀이 솟아 바닥으로 '툭툭'떨어졌어요. 전 원래 땀이 별로 없는 체질이었던 지라 생전 처음 겪는 이상한 반응이었어요.ㅠ.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 금세 흠뻑 젖어 버렸으니까요... 그리고 그 땀을 가라앉히려면 몸을 시원하게 하는 게 아니 최대한 옷을 껴입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누운 후에 얼굴만 바람을 쐬면 땀이 가라앉곤 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기절을 하게 됐다는 것이었다.(조금만 오래 누워있다가 일어나도 오래 앉아 있다 일어나도 조금 심한 스트레스 상황이 생겨도 말을 많이 해도 멀쩡히 서 있다가도 집안에서 살살 잘 걸어 다니다가도-발목이 부러지기 전-큰 소리로 웃어도, 울어도 흥분해도 피곤해도... 어떤 상황에서 기절할지 예측을 할 수 없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에서야 전조 증상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됐지만 처음 몇 년은 무방비 상태로 하루에 십 수 번씩 기절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어 갈비뼈가 수차례 금이가고 골반뼈와 꼬리뼈에 금이가고 부러지는 2차 상해를 입었고 이마와 머리를 가구나 식탁 모서리 바닥, 욕실 수납장 등에 부딪혀 여러 번의 뇌진탕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이때 이후론 휠체어를 타지 않고 혼자 외출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게 돼버렸다.

그때의 상실감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지독했다.






내가 집에서 기절했을 때 남편과 딸이 함께 있으면 발견하는 즉시 (대부분 푸들인 강아지 콩이가 아빠나 누나에게 달려가 엄마에게 이상이 생겼음을 알립니다.)


http://brunch.co.kr/@oska0109/20

http://brunch.co.kr/@oska0109/21


두 사람이 함께 침대로 옮기지만(쓰러졌을 당시에 충격으로 깨어난 후 통증을 느낄걸 대비하거나 넘어진 바닥이 차가워 증이 생길걸 예방하기 위해 이동합니다.)


딸이 혼자 집에 있을 때가 문제였다.

다행히 전조 증상을 느껴 기절하기 전 소파나 침대로 이동을 하는 경우엔 상관이 없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엔 집안 바닥 어디든 쓰러질 수 있다는 얘긴데 희한하게도 내가 기절 후 깨어나 보면 항상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것이었다.

기절하고 난 후엔 꼭 통증이 생겨 나를 어떻게 혼자 침대로 옮겼는지 같은 문제를 물어볼 겨를도 없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고는 항상 물어보겠다는 생각 같은 거는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여느때 처럼  며칠째 음식다운 음식을 먹지 못하고 침대에만 누워 간신히 물만 몇 모금씩 마시고 화장실만 간신히 오가며 딸아이의 애를 바싹 태우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음식을 먹을 수가 없도록 내내 구토가 심했던 터라 제대로 음식을 먹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고 매번 다른 음식을 만들고 사 오며 무엇이든 내게 조금이라도 먹이려 애쓰던 딸이 생각나 주스 한잔이라도 마시려 조용히 일어나 주방으로 향한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지만 눈을 떴을 때 나는 침대에 반쯤 걸쳐져 다리는 침대 밑으로 떨어져 있고 상체는 침대 위에 올려져 있었는데

내 밑으로 딸아이가 깔려서 빠져나오지 못고 버둥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내가 딸에게 말했다.

"◇◇아! 금 뭐해? 괜찮아? 엄마 기절했었구나!!! 아.... 네가 이렇게  엄마를 침대에 옮기는구나!"


"아이! 다른 날은 가뿐하게 옮기는데 오늘은 팔이 껴서 안 빠지는 바람에 딱 걸렸네"


딴 소리를 하며 둘러대는 딸을 붙잡아 앉히고는 본격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아. 안 그래도 엄마가 몇 번 물어보려고 했는데  도대체  엄마 어떻게 방으로 옮기는 거야? 아빠 있을 땐 둘이 옮긴다 쳐도 둘이 옮길 때야 가벼운 몸무게지 너 혼자서는 절대 못 옮길 거 같은데 어떻게 안방까지 움직이는 거야?"


그때 한창 구토가 심하고 몸상태가 좋지 않아 (방송을 촬영하기 한참 전이에요^^.) 몸무게가 50kg대 초반이었지만 그건 정신을 차리고 있었을 때 얘기고 기절했을 땐 몸의 힘이 빠지고 늘어져 체감으로 느껴지는 무게는 훨씬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에 웬만한 장정이 아니고서는 안아서 옮기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 엄마인 나보다 키는 좀 많이 크지만 몸무게라 해봐야 많이 차이도 안나는 딸이 나를 혼자 옮긴다는 사실이 항상 신기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었다.


그리고 딸은 자식을 기르는 어미 마냥 집안에 있는 순간에는 자신이 어느 곳에 있던 오감(五感)을 열어 나를 향해 시선을 두고 혹시라도 엄마가 기절하는 순간을 놓쳐 다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항상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

거기에 강아지 아들 콩이의 어시스트(assist)까지 환상의 복식조였다.

1, 내가 기절을 하는 순간 콩이가 확인을 하고 누나에게 달려가 문을 긁어 알리거나, 아니면 기절하는 순간을 포착한 딸이 달려와 내 머리가 땅에 닿기도 전에 손으로 받치고 일단 바닥에 눕힌다.

2,◇◇이 책상에 있는 여섯 발짜리 사무용 바퀴 의자(시*즈)를 가지고 나와 엄마가 쓰러진 가장  가까운 벽에 붙인다.

3, 엄마의 상체를 붙잡고 일으켜 젖 먹던 힘을 다해 의자에 앉힌다.

4, 엄마가 미끄러져 내리기 전에 최대한 신속하고 빠르게 안방 침대로 이동한다.

5, 다리를 먼저 침대에 걸친 후 엄마의 상체를 안고 침대에 같이 눕다시피 옮긴 후 ◇◇이는 빠져나온다.

6, 팔, 다리에 통증이 생기지 않게 이불로 잘 감싸준다.

7, 상황 종료.


이 과정이 기절해 쓰러진 나를 혼자 침대로 옮겼던 딸의 노력이었다.


도와주는 사람없이 기댈곳도 없던 딸은 하루에도 십 수 번씩 쓰러지는 엄마를 혼자서도 훌륭히 지키고 보살펴 주었다.


밤새 눈물을 흘리며 어부바를 하고 등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오로지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에 애쓰던 엄마를 이제는 아이가 지켜주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약으로 인해 몸이 붓고 살도 찌고 지금은 기절하는 횟수도 예전보다는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보다 지금은 조금 두툼한 토퍼를 장만해 이젠 기절한 나를 옮기지 않고 토퍼를 가져와 그 위에 눕히고 깨어나길 기다린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는 온몸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언젠간 나는 아이를, 아이는 미래만을 바라볼 날이 올 것이라는 걸. 

오늘도 나와 아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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