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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Sep 14. 2021

믿지 않는 도끼에도 발등은 찍힌다.

이스방은 개자식.

두 번째 희귀 난치 질환을 진단받고 가 살던 세상은 무너져 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들이 많아졌다. 순식간에 완벽한 중환자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옷을 입으며 스치기만 해도, 하다못해 씻기 위해 틀어놓은 물에 잘못 닿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통증에 시달려야 했고 이런 나를 스스로 견디다 못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다스릴 수 없어 매일 짜증을 부리고 말도 안 되는 신경질로 날 간병하는 딸을 괴롭게 만들었다.


병을 앓던 초기에 나의 부재와 병을 염려하여 자주 연락하고 찾아 주시던 교회분들도 내가 연락을 거부하면서 난 스스로를 고립시켜 갔다.

그때의 나는 하나님께 화가 나 있었다.

믿으라고 해서 믿었고 사랑하라 해서 온 맘을 다해 사랑했는데 내게 돌아온 건 배신과 병이었다. 주님 계신다 해도 내 옆에는 절대 계시지 않는다고 큰 소리로 악다구니를 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빠 하고만 문제가 있었을 뿐 친정 가족 누구에게도 내가 얼마나 아픈지를 알리지 않았지만

평소에도 아픈 걸 괜찮다고 말하는 내가 새로운 희귀 난치 질환을 얻었다는데 괜찮으면 얼마나 괜찮았을까.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대로만 믿는 가족들에게 이미 큰 실망을 하고 있기도 했던 때였다.


게다가 이스방!

그때는 정말 개자식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통증을 한 번에 한 시간 아니 두 시간을 꼬박 참아야 하는 그 지독하고 끔찍한 통증의 순간을 오로지 나와 딸 둘이서만 견디도록 지켜보고만 있었다.

하다못해 강아지인 콩이마저 내가 통증에 겨워 몸부림치며 울부짖을 때, 이를 악물어 잇몸이 녹고 이가 깨져나가는 순간에 그 작은 몸으로 체온을 나눌 때 남편은 그저 거실에 앉아 TV를 틀어  낄낄 거리며 웃어댔고 애가 타서 동동 거리는  딸의 심부름을 어쩌다 들어주는 정도만 하고 있었다.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엄마가 통증을 겪는 무참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어린 딸 혼자의 몫이었다.

내가 CRPS가 발병하고 난 이후에 통증을 시작할 때 남편이 내 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건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스방이 내 인생에 크게 걸림돌이 된 건 결혼 초에 있었던 외도뿐만이 아니었다. 그때는 이혼이라도 생각해 볼 여지라도 있었다 치자.

이번은 정말 내 영혼까지 짓밟고 내가 인생의 바닥, 무저갱을 경험하는 단초를 제공하게 됐다.


CRPS를 진단받고 1년 후쯤 살고 있던 아파트 단지가 재개발이 결정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기한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어차피 이사를 해야 하기도 한 데다 이미 오빠와 불화가 생기고 몸이 여기저기 아파졌던 탓에 조금 서둘러 병원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기로 결정을 했다.


급격하게 진행된 CRPS 때문에 항상 정신이 온전치 않은 듯 반쯤 멍한 상태로 지내던 때에 어제 일과 오늘 일도 구별하지 못하며 마약진통제의 독함에 익숙해지지 못해 힘들어하던 때였다.

이사하기 두 달 전부터 남편에게 마지막 날 잔금을 맞춰 놓으라고 얘기를 하고 부족한 금액이 있으면 미리 준비해야 하니 은행에 가서 확인하라는 얘기를 수십 번도 더 했었다.

물론 인터넷 뱅킹으로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확인을 한 후에 남편에게 얘기를 한 것이었다.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남편의 성격을 잘 아는 나는 정말 수십 번, 수백 번을 확인했다.


"은행 가서 확인 다 했지? 잔금 부족하지 않지?"


수십 번을 더 들은 내 잔소리에 남편은


"아이고. 마나님. 확인했다고요. 했어요. 당신은 그저 이사 끝날 때까지 친정에 편히 누워 계시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다 알아서 할게요."


라며 큰 소리를 쳤다.

몸이 너무 안 좋았던 나는 이사 당일에 친정에서 있기로 했고 이사는 남편과 딸 둘이서 하기로 얘기를 했다.


남편의 큰 소리를 완전히 믿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믿지 않기에는 내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맑지 않은 정신에 언제 생길지 모르는 통증, 예민해진 신경에 오락가락하는 기억력까지. 게다가 이사를 하기 2주일 전쯤 무릎 아래가 퉁퉁 부어오르며 다리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갑자기 입원을 하게 됐다.

그 증상으로 자율 신경 실조증을 진단받게 됐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점점 더 절망의 나락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이사를 하던 날 이사 업체가 오기 전에 남편은 나를 친정에 데려다주고 친정 엄마가 챙겨주신 이른 아침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 이사를 서둘렀다.

돌발통이 생기는 모습을 부모님께서 보시게 되면 많이 놀라실 거라는 생각에 난 가능한 가만히 누워 움직임을 최소하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12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몸은 좀 어때? 엄마 놀랄까 봐 전화 안 하고 싶었는데.... 전화 안 할 수 없었어. 엄마. 이사 갈 집에 줘야 할 잔금이 부족하대."


깜짝 놀란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딸에게 물었다.


"지니야. 얼마가 부족한데? 지금 아빠는 뭐 하고 네가 전화를 해? 하! 내가 몇 번이나 묻고 당부했는데."

"6,100만 원. 아빠는 점심 먹어. 지금 두 공기째야. 난 걱정돼서 밥이 안 넘어가서..."

"지니야. 걱정하지 마. 엄마랑 아빠가 해결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말고 얼른 밥 먹어. 엄마가 아빠한테 전화할게. 걱정하지 마라. 알겠지?"


전화기를 잡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금 태평하게 밥을 먹고 있다는 그 미친 인간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순간 내 눈앞에 지옥문이 열렸.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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