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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Jan 06. 2022

정말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

누구든 어릴 적에 잘하는 것 한 두 가지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예전에 엄마가 이런 말씀을 하셨던 적이 있었다. 


"아빠가 월급쟁이 셔서 너희들 셋을 키우느라 엄청 빠듯했어.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었다면 셋 중에 하나라도 예체능 시키고 싶었는데 그걸 못해준 게 많이 아쉬웠지. 소질도 있었는데. 히 ㅇㅇ이 네가  초등학교 때부터 사생대회 있으면 최우수상 받아오고 백일장이 있으면 꼭 원이고 노래도 곧잘 해 예전에 그 동요대회 있었잖아? '누가누가 잘하나!'거기에 학교 대표로 나가기도 했었는데... 그걸 한 가지도 못 살려줘서 많이 안타까웠어. 엄마가 밀어줬으면 네 성격에 뭐가 됐든 한 자락 했을 텐데...."


이제와 생각해 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막을 수가 없지만 만약 내게 그림, 글, 노래, 그 세 가지 중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이는 것이 한 가지라도 있었다면 아무리 빠듯한 살림이었어도 어떻게든  뒷받침을 해주지 않으셨을까?

난 그저 어릴 적에 이것저것 재주가 좀 많은 영특한 아이에 불과했던 게 아닐까 생각하고 말았다. 세월이 지나가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조금씩 특출 나 보였던 재주들은 평범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고 그나마 다행한 건 책을 끊임없이 읽는 것을 사랑하는 어른으로 랐다는 사실이었다.(그리고 이루지 못한 꿈은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한 채 살았습니다. 잘 쓰인 책을 보면 항상 보물을 만난 것 같은 기쁨을 느꼈고 결말을 향해 갈수록 안타까운 마음에 몇 번을 다시 읽은 책이 수두룩 니다.)


어릴 적 생일 때마다 책을 선물해 주셨던 부모님 덕에 웬만한 전집은 종류별로 다 갖추고 있었고 그것들도 모두 열 번씩은 넘도록 읽어 다음장에 무슨 글이 나오는지 외울 정도였다. 집에 더 이상 책을 쌓아 둘 곳이 없어 빌려 읽기 시작했을 때는 내가 읽으려고 빌린 책은 물론이고 엄마가 읽으시려고 빌린 책까지 몰래 읽어야 직성이 풀렸다.

직장생활을 하는 중에도 한 달에 꼬박 6~12권씩은 읽었고 아이를 육아하며 워킹맘을 하던 시절에도 한 달에 2권씩은 읽으려고 노력했었다. 지금은 심한 두통과 노안으로 예전 만은 못하지만 아직도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과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은 꼬박꼬박 구입해서 챙겨 읽고 있다. 책은 내게 큰 기쁨이었고 책을 읽는 순간만은 고통도 아픔도, 현실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들도 잠시나마  잊을 수가 있었다.




수많은 병을 가지고  아직도 죽음에 한 발을 담근  내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내게 딸이 권한 건 '글쓰기'였다.


"엄마, 엄마 항상 글 쓰고 싶다고 했잖아. 엄마 책도 많이 읽었고. 어릴 적에 백일장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고 할머니가 말씀해 주신 적 있었어. 지금 너무 많이 아파서 쉬운 일 아니라는 거 잘 알지만 한번 생각해봐. 엄마 잘할 수 있을 거야. 예전에 교회에서 공부할 때도 그렇고 행사 있을 때마다 엄마가 쓴 글로 간증도 했었잖아. 엄마가 겪은 일 써보는 거 어때? 물론 쉽진 않겠지만..."

"엄마가 글을 쓴다고? 우선 어떻게? 하루는 고사하고 일주일에 일어나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 다 합해도 5시간도 채 안될걸. 그리고 일어나 앉아 있으면 뭘 해.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에 제대로 기억하는 건 한 가지도 없고 당장 머리에 떠오른 단어랑 입에서 나오는 단어도 다른 지경인데 이런 꼴로 무슨 을 써.

 지나간 어릴 적에 꾸던 헛된 꿈이 었을 뿐이야"

"엄마. 그래도... 일단 한번 써보자. 엄마한테 일어났던 일들을. 글이 되든 안되든. 누가 읽든 안 읽든. 처음부터 잘 써지진 않겠지만 하다 보면 실력은 늘 거고 엄마 분명히 잘할 거야. 엄마가 뭐든 시작해서 대충 하는 거 본 적 없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믿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게 우리한테 일어난 사실인데. 내가 읽을 거야. 엄마 내내 일기 썼잖아. 일기 쓰듯 써보면 되지. 그리고 엄마 어릴 적에 작가가 꿈이기도 했었다며!"

"그건 어릴 때 그랬었다는 얘기고. 그리고 그럴 거면 그냥 일기를 쓰면 되지. 지금은 일기도 제대로 못 쓰는데.... 그리고 사람들이 엄마한테 일어났던 일들 사실이라고 믿지도 않을 거야. 힘든 일도 웬만해야 믿지. 이렇게 숨쉴틈도 주지 않고 불행이 연달아 몰아치는 걸 엄마도 겪고 있으니까 아는 거지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생긴다는 걸 누가 믿겠어. 게다가 어둡고 불행한 얘기 읽고 싶기는 하겠어? 제대로 쓸 재주도 없고 써서 어디에 내보여? 그런 거 안 할래. 엄마 못할 거야. 그리고 지나간 일 시 생각하는 거 너무 끔찍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아."


입과 머리가 따로 놀아 버벅거리는 말투와 약에 취하고 통증에 절어 분명하지 않은 발음으로 온 힘을 다해 손사래를 치며 반대부터 하는 나를 딸은 포기하지 않고 득했다.

심지어 강아지를 기르고 싶다고 10년을 졸랐던 그 기술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때를 쓰거나 징징거리지 않으며 상대방이 화가 나지 않도록 웃어가며 모든 대화의 끝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얘기하는 우리 딸만의 특급 기술!!

지치지 않는 딸의 설득과 정신과 교수님과의 상담으로 절대 움직일 것 같지 않았던 내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한 마음은 '내가 과연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벗어나 두근 거리는 설렘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픈 몸을 추스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버거웠던 내게 뭔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과 설렘은 색빛 같이 암울하기만 할 것 같았던 내 앞날 대한 두려움을 겨 낼  발자국을 내딛게 해 줄 조명탄 같은 느낌이었다.


비록 통증에 절어, 그 통증을 잠재우려 먹는 독 약에 절어 맑지 않은 정신이었지만 또한  베체트로 인하여 잠시만 자판을 두드려도 손가락의 통증은 심해져 갔지만  일기가 아닌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만 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그리고 빌었다.

이것으로 다시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를.

다시 한번 험난한 내 인생에 맞서 볼 용기가 생기기를.


10여 편의 글을 써 놓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의 문을 두드렸다.



제가 쓰던 일기장 이에요. 매일은 아니었지만 아픈중에도 내내 일기를 썼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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