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이가 잘 견뎌낼 수 있을까?

병과 함께 찾아온 노쇠함

by 강나루

아주 심한 무더위와 끝도 없이 비가 쏟아지던 지난해 여름이 오기 전부터, 자주는 아니었지만 콩이와 함께 아파트 단지 주변을 조금씩 산책할 수 있게 됐다.

잦은 기절과 심한 광장 공포증 때문에 잠시 잠깐의 외출조차 두려웠던 내게는 장족의 발전이었다.

모든 것은 콩이 덕분이었다.

작디작고 연약한 콩이지만, 그 아이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황은 한결 누그러졌다. 비단 이 일뿐만이 아니었다. 콩이는 지난 10년간 누나를 도와 나를 간병해 왔다.



언제 CRPS 돌발 통증이 찾아올지 몰라 조심스레 걸어야 하는 엄마의 아픈 다리를 배려하기라도 하듯, 콩이는 언제나 천천히 노즈워크를 즐긴다. 비록 2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일지라도, 매일 나가지 못하는 산책일지라도, 콩이와의 짧은 데이트는 어느새 몸에 익은 일상이 되어갔다.

그리고 그것은 콩이와 나에게 몇 안 되는, 그러나 가장 진정한 기쁨이자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남편이 집을 나간 뒤, 비가 오면 통증이 더 심해져 까라지는 엄마 곁을 지키느라 함께 꼼짝도 하지 않던 콩이의 컨디션이 눈에 띄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아토피가 심했던 아이였기에 늘 예민하게 상태를 살폈지만, 이번처럼 급격히 나빠지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콩이가 노쇠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더는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겁이 덜컥 났다.

과연 내가 콩이를 지킬 수 있을까.
나이가 들며 쇠약해진 몸에 찾아든 병을, 이 아이가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콩이의 상태가 심각해진 직후 바로 피부과 전문 병원을 찾았어야 했지만, 병원비 문제로 우선은 평소 다니던 동네 의원에서 치료를 시작했다. 피부 전문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많은 강아지들을 진료하며 쌓았을 경험치를 믿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이 판단 착오였을까.

처방받은 항생제와 알레르기 약은 생각보다 독했다. 약을 먹은 뒤 콩이는 심하게 늘어졌다.

처음에는 약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콩이에게 더 큰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겁부터 났다.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고, 이름을 불러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

대소변을 가리기 시작한 이후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던 아이가 아무 곳에나 배변을 하기 시작했다.

달라진 콩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미 가진 병도 모자라, 나이가 들어 치매까지 온 것은 아닐지 두려움에 떨었다.


밤새 달라진 상태를 딸에게 전하며, 눈물을 쏟지 않고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콩이가 잘못될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해야 이 아이를 지킬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콩이가 너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당장 생활비가 부족했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남편이 집을 나간 뒤 남아 있는 네 식구 중 누구 하나라도 무너진다면, 우리는 그걸 감당해 낼 여력이 없었다.

차라리 밥을 굶고, 관리비를 못 내고, 난방과 냉방, 수도가 끊기는 한이 있더라도 콩이부터 살리고 봐야 했다. 콩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리 중 누구도 괜찮을 수 없다는 걸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지니와 의논을 하고 강아지 피부과를 수소문했다.

피부과에 가서야 콩이의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독한 약을 써야 했지만, 일주일쯤 지나자 1년이 훌쩍 넘도록 목에 씌워 두었던 넥카라를 벗길 수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치료의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는 걸 실감했다.


작년 10월 이후로 일년 가까이 산책할 때를 제외하곤 넥카라를 차고 있었어요 얼마나 고생했는지...


약이 독한 건 여전했지만, 염증은 가라앉고 가려움도 줄어들었다. 털이 빠졌던 자리마다 새 털이 자라났고, 각질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1년 동안이나 수족처럼 달고 살던 넥카라를 벗을 수 있었다. 너무 긁고 핥고 빨아대서 도저히 벗겨줄 수 없었던 그 넥카라였다.

아무거나 함부로 먹일 수 없고 입도 짧은 아이지만, 살기 위해 먹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며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작고 연약하며 노쇠한 우리 아들 콩이가, 살기 위해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한때는 후회를 많이 했다.
내가 콩이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우리보다 더 좋은 집으로 입양을 보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아픈 나를 돌보느라 배우지도 않은 간병견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콩이의 아픈 곳도 더 빠르게, 더 제대로 치료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이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내가 콩이를 가장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콩이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지금은 그거면 다 된 것 같은 마음이다.


언제 다시 재발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콩이가 노환과 지병을 잘 이겨내고 우리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나이 든 나의 강아지 아들을, 오래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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