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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Oct 07. 2024

콩이가 아프다

갑상선 기능저하 증후군, 아토피 피부염

올해로 콩이 13살이 다.

사람의 나이로 환산하면 얼추 여든에 가까운 나이.

처음 데려올 때부터 이미 각오하고 있던 일이지만 가족으로 받아들인 생명이 눈앞에서 스러져 가는 것을 보는 것은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지난 10 년 간 아픈 엄마바라보 누나를 도와 나를 간하던 콩이의 마음이 이렇게 간절하고 절박했을까?

사실 콩이는 처음 데려오기 전부터 아토피 슈가 있는 강아지였다. 지금은 강아지의 질병뿐만 아니라 견종의 특성, 사료와 간식의 종류까지 지나치나 싶을 만큼 방대하게 많은 선택지와 정보가 있다. 하지만 콩이를 처음 데려올 때만 해도 그런 것들이 다양해지기 훨씬 전이었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 사람음식을 먹이면 안 된다는 것, 초콜릿, 양파, 포도를 절대 먹이면 안 된다는 것 정도 외에는 거의 전무했다.


처음에 콩이에게 아토피와 알레르기 문제가 심해졌을 때 병원을 데려가면 병원에선 무조건 스테로이드로 치료를 했다. 그건 즉각적인 효과를 보기엔 최고였다. 하지만 콩이가 나이가 들어버린 지금에 와서그것이 최악의 선택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테로이드 과사용으로 인해 콩이는 갑상선 기능저하 증후군에 으며 아토피는 극단으로 치닫 말았다.

콩이가 어릴 적에 치료해 주던 수의사는 내게 단 한 번도 나중에 콩이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다른 치료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지는 이유가 될 수 없다. 그저 변명 지나지 않다는 걸 안다. 콩이에게 미안하고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걸 막을 재간이 없다.


모든 병은 스트레스에 가장 취약하고 그건 강아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남편과 나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던 작년 중순 이후부터 콩이의 아토피 심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슴과 다리, 발, 목, 엉덩이 등에서 점점 털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가 나도록 온몸을 미친 듯이 긁어댔다.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털을 뽑고 살을 물어뜯었다.


남편이 우리를 버리고 집을 나간 후에 콩이는 아빠가 퇴근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매일 남편이 퇴근하던 시간쯤에는 현관 중문 앞으로 나가 앉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아빠를 기다렸다. 산책을 데리고 나갔을 때 남편 또래의 남자들이나 안경을 쓴 남자를 보면 반드시 쫓아가 아빠인지 아닌지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아내와 자식에게도 무심하기 그지없던 사람이 강아지라고 별반 달리 대하지 않았는데... 콩이는 13년간 함께 살았던 아빠의 빈자리에 대한 공백을 이겨내기 몹시 어려워했다.


지난 겨울부터는 온몸이 심하게 건조해졌고 털이 빠진 가슴에선 진물이 흐르고 머리부터 발 끝까지 심한 각질이 뒤덮였다. 그리고 처음엔 먼지 같던 각질이 점점 딱딱한 딱지처럼 변했다. 집 안 전체에 콩이 각질이 버석거렸다.

콩이를 데리고 자던 내 침대는 전쟁터가 되었다. 각질 갑옷을 입은 피 흘리는 전사가 콩이였다.

 손에서 돌돌이 먼지 제거롤이 떨어질 새가 없었다.


콩이의 가려움과 각질이 가장 심해지기 시작한 때 남편이 집을 나 통장에 여윳돈이 한 푼도 없을 때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가장 밑바닥인 순간에 콩이가 제일 많이 안 좋아졌다. 아픈 콩이가 잠들지 못하고 피가 나도록 긁으며 밤새 돌아다니면 병원을 데려가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콩이를 내 다리 위에 안고 재웠다. 못나고 부족한 보호자를 만나 고생하는 콩이가 너무 불쌍했다. 그나마 내가 소파에 앉던, 침대에 눕던 내 다리 위에 앉기를 좋아하고 코를 골며 자는 콩이 여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 다리가 부서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 자그마한 생명이, 내가 아플 때 나를 살리려 누나를 부르러 다니던 내 강아지 아들이 잠시라도 쉴 수 있다면 아픈 내 관절쯤은 참을 수 있었다.  역시 아픈 몸을 부여잡고 마약 진통제를 삼켜가며 콩이를 그러안고 새벽을 지새웠다.


내가 걱정한 건 콩이가 나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러다 콩이를 놓치는 건 아닐까 너무나 무서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다 끝일 것 같은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다. 내가 조금 이나마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기 시작한 순간에 콩이가 나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병들고  무능력한 내가 한심해 미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그 글에 응원댓글을 달아 주신 구독자분들 덕분에 작지만 내겐 너무 소중하고 큰돈이 생겼다. 통장에 돈이 들어오자마자 콩이를 데리고 득달같이 병원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콩이를 지킨 건 나 혼자 만의 노력이 아니다. 내가 힘든 순간 나를 지켜주고 위로해 주던 사람들의 온기 덕분이다.

나는 또 한 번 세상에 큰 빚을 지었다.

그 위로와 응원이 나를 살리고 콩이를 살릴 거라 믿었다.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리라, 먼저 포기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보기 흉한지만 콩이가 고생한 모습이에요.

마지막 사진이 매일 밤마다 털어준 콩이 각질이에요ㅠㅠ. 자기 전에 한 번씩 털면 한주먹만큼 각질이 떨어져요. 그나마 덜 흉한 사진만 올렸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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