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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쩌면 네가 제일 힘든지도 모르겠다

변해버린 리아

by 강나루
사이가 많이 좋은 오누이 였습니다.

지니가 처음 리아를 데려오자고 말했을 때 솔직히 기꺼운 마음은 아니었다.

콩이를 외동으로 기른 지 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호자에 대한 애착이 심한 견종인 푸들이었던 콩이가 새로 데려오는 아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걱정 됐다. 이미 아픈 엄마를 돌보는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콩이에게 다른 부담을 주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한 번 파양 당한 경험이 있던 리아에게도 같은 상처를 두 번은 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입양되지 않으면 다시 농장으로 돌려보내진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지니는 결국 리아를 입양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콩이와 리아가 잘 지내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리아를 데려오기 전에 했던 우리의 모든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원래도 다정하고 배려심 많은 콩이였지만 리아를 데려온 후에 꼭 자신이 낳은 새끼인 것처럼 대소변을 다 핥아주고, 먹을 것을 양보하고, 놀아주고, 함께 데리고 자며 끔찍하게 아꼈다. 수컷인 콩이가 어미인 것 마냥 리아를 돌봤다.


리아가 파양 됐던 이유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진한 눈물 자국이 없어지지 않아서였다. 콩이와 리아가 함께 지낸 지 한 주가 채 지나지 않아 리아는 오빠를 따라 패드에 볼 일을 보기 시작했고 지니의 노력으로 리아의 눈물자국도 완전히 없앨 수 있었다.


리아에게 콩이는 천군만마였다.

애견 카페를 가도, 내가 입원하게 되어 호텔링을 맡겨도, 콩이만 있으면 리아는 천하무적이 됐다. 친구들과 까불며 놀다가도 맘에 들지 않으면 오빠뒤로 숨어들며 큰 소리로 짖어댔다. 그러면 콩이는 리아의 앞을 막아주고 으르렁 거리며 리아를 보호했다.

호텔링을 할 때도 한 케이지 안에서 같이 자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루는 통에 항상 따로 부탁을 해둬야 했다. 외출을 할 일이 있어도 콩이만 있으면 걱정할 일이 없었다.


리아가 슬개골 탈구 수술을 하고 입원하고 있을 때 이틀을 먹지도, 자지도 않아 큰 걱정을 했던 적이 있었다. 딸의 냄새가 배어 있는 옷 가지도 소용이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콩이가 쓰는 이불을 챙겨 보냈다. 그제야 리아는 밥도 먹고 잠도 자며 회복하기 작했다. 엄마도 언니도 아닌 오빠 콩이가 리아에겐 큰 위안이고 버팀목이라는 걸 알게 된 계기였다.


그렇게 리아의 8년 생애 동안 콩이는 단 한순간도 리아와 함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리아가 다른 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콩이를 보내고 거진 두 달이 다 지날 무렵이었다.


처음 한 달 동안 매일 시도 때도 없이 미친 듯이 울어대는 지니를 진정시키느라 나오는 눈물과 슬픔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슬픔은 가슴속 깊이 파고들어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냈고 각자의 상처를 돌보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리아가 강박적으로 느낄 만큼 쫓아다니며 간식을 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간식을 먹고는 제대로 소화시키지도 못하고 토하기 시작했다. 란 마음에 병원으로 쫓아가서 들은 말은 리아가 우울증인 것 같다는 말이었다.

산책이라고 속삭이기만 해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던 리아가 산책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콩이가 떠나기 전까지 나와 함께 쓰던 이불 위에 올라가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리아의 얼굴에서 표정이 없어졌다. 콩이가 사랑하던 리아의 똥꼬 발랄함이 사라져 버렸다.

각질이 있던 콩이가 쓰던 이불을 버리지 못하게 내내 누워 있어요

콩이가 떠나고 몇 주 동안, 외출하고 돌아온 언니가 들어 때마다 한참이나 현관문 앞을 지키고 낑낑대며 콩이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리아가 콩이가 없다는 것을, 더 이상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 같았다.

리아는 부모이자 오누이였고 친구였던 반려를 잃은 것이다. 리아의 상실이 얼마나 클지 짐작할 수 조차 없다.


콩이를 보낸 후 리아를 혼자 두고 외출하는 일이 큰 고역이 돼버리고 말았다. 일생동안 한 번도 혼자라는 경험을 해본 적 없던 리아는 집 밖을 나서기 힘들어하는 내가 어쩌다 병원이라도 다녀올라치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데이 케어 센터에 잠시 맡기고 서둘러 다녀와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구석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리아가 잘 견뎌내길 바라며 나도 지니도 각별히 애정을 쏟는다. 살아남은 자들은 남은 시간을 열심히 살다 가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웃는 얼굴로 콩이를 만나 긴 회포를 풀 수 있는 순간이 어서 오길 손꼽아 기다린다.

리아가 오빠가 자신을 버리고 간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날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콩이가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내게 말을 했었다.

콩이가 나이가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아픈 곳이 많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

그런 말들을 들으며 항상 생각했다.

그런 마음의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대?

그리고 막상 콩이를 보내고 나니 이건 준비한다고 견딜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예상했다고 감당할 수 있는 마음도 아니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슬픔과 상실이며 그리움이다.


엄마인 나에게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허용해 주고 나를 자신의 세상이라 여기며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보여주고 간 나의 소중한 콩이가 미치도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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