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던 날
집안 일도 모두 지니가 하고 그나마 작년부터 유일하게 했던 매일 쓰레기 버리는 일도 지니가 하게 돼버렸다. 혼자서 집 밖을 나설 수 없어졌다.
어떻게 저떻게 1층 까지는 내려간다 해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발로 명치를 세게 걷어 차인 것 마냥 '헉' 소리를 내며 앞으로 허리가 꺾어진다. 그리곤 숨을 쉬지 못한다.
팔다리가 덜덜 떨리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머리가 깨질듯한 두통에 눈앞이 아득해지고 앙다문 입 속엔 시큼한 침이 가득 고인다.
콩이를 보내고 나는 다시 고장 났다.
밥만 먹고 누워 지내는 것이 일상이 돼버렸다.
이렇게 슬프고 고통스러운데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차라리 기억상실이 다시 심해졌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기억은 나노 단위로 쪼개져 다시 재생을 반복한다.
콩이의 마지막 숨, 마지막 심장 박동, 지니가 안아 들자 떨어지던 콩이의 머리... 단 한순간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2년 전부터 콩이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긴 했어도 꾸준히 아이를 추적 관찰 하고 있었다. 보내기 한 달 전에 했던 전체 건강검진 상에서도 이상소견은 전혀 없었다. 콩이가 우리보다 먼저 떠날 걸 알고 있었지만 단 이틀 사이에 아무런 준비도, 예고도 없이 아이를 보내게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콩이가 많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내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말을 자주 건넸었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 그런 것이 애초에 가능한 일이긴 한 것이었는지 묻고 싶어졌다.
헤어질 걸 알고 있었지만 상상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고통이다.
재작년(2023) 말에 남편과 별거를 시작하면서 집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겼을 때 집을 옮기려고 마음을 먹었다. 집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혼자서 내 병간호를 해가며 큰 집을 관리하는 지니가 버거워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사를 앞두고 3주 전에 콩이가 우리 곁을 떠났다. 콩이를 보내고 이사를 하기 전에 콩이의 물건을 모두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 같아선 콩이와 연관된 물건을 단 한 가지도 버리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면 콩이가 편히 떠나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콩이의 물건으로 70L 쓰레기봉투 2장을 꽉 채워 버렸다. 겨우 그 봉투 2장에 콩이의 13년 5개월의 생이 전부 담긴다는 게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콩이가 편히 떠나길 바라서 모든 물건들을 정리했지만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었다. 콩이가 떠나기 전 잘라둔 귀털 조금과 콩이가 죽도록 아끼던 인형 하나, 그리고 콩이를 찍은 사진액자였다.
이사를 하던 날 마지막에 시계와 십자가, 액자를 벽에 걸어 주시던 이사 업체 직원분이 내게 말했다.
아이고!! 죽은 아이 사진은 뭐 하러 걸어 놓으세요. 저기 살아 있는 애, 저 하얀 강아지 쟤 사진이나 걸어 놓으시지!!
그냥 잘 걸어 주세요. 그 아이 보낸 지 얼마 안 됐어요. 아직도 눈에 선하고 믿어 지지도 않아요.
에이. 그래도 죽은 강아지 사진 오래 걸어 놓으면 안 좋아요. 빨리 잊어야지. 제가 버려 드릴게.
아니요. 그냥 걸어 두세요. 치우든지 말든지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아저씨와 말을 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콩이가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고 끔찍하기만 한 내게 사람들은 잔인하리만치 강요한다.
콩이는 죽었으니 빨리 잊으라고. 그리고 콩이의 물건 같은 건 다 내다 버리라고.
죽은 사람이나 죽은 강아지의 물건을 집안에 두면 좋지 않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
너무 오랫동안 슬픔에 잠겨 있지 말라는 의미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함께 한 세월이 있고 그 시간 동안 쌓은 추억과 사랑이 있는데 물건을 없앴다고 해서 금방 잊을 수 있겠는가.
보고 싶은 만큼 보고 슬퍼할 만큼 충분히 슬퍼해야 콩이를 제대로 보내 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제대로 된 애도의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콩이를 보낸 슬픔이 내게 또 다른 병이 되어 나타날지 모른다. 그것만큼은 콩이도 나도 가장 원하지 않는 일이다.
콩이가 심하게 아파지기 전 미모가 한참 물 오를 때 찍어둔 스냅사진으로 새 액자를 만들어 안방 벽에 걸어 두었다.
이 액자를 바라보며 아침, 저녁으로 인사를 나눈다.
이불을 바꾸고 이사를 한 후 콩이와 함께 지내던 내 방의 냄새는 완전히 달라졌다.
콩이의 냄새가 사라지고 콩이의 코 고는 소리가 없어진 지독히도 적막한 방에서 난 여전히 뒤척이며 밤을 지새운다.
내 남은 생은 내내 적막함과 고독함이 공존하겠지만 마음 한편 가득히 채워진 콩이와의 추억으로 버티며 살아낼 것이다.
콩이를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