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이가 내게 준 사랑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난 살면서 생겼던 어려움들을 대부분 혼자 삭여가며 살아왔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그 어려움들, 다 삭여 내지 못한 아픔들이 내게 병이 되어 돌아왔다.
매일 한 순간도 떨쳐낼 수 없는 극한의 통증을 견디며 무너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야 하는 날들이었다. 그런 날들을 죽을 때까지 견디며 살아야 하는 일이 끔찍하고 괴로웠다.
그 괴로움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존재가 콩이였다.
통증에 몸부림치면 따뜻한 자신의 몸을 붙여오며 위로를 건네고 우울증과 공황발작에 눈물을 흘리면 자신도 따라 눈물을 흘리며 내 눈물을 핥아줬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 홀로 통증에 시달릴 때 밤을 지새우며 내 곁을 지킨 것도 콩이였다. 기절하는 순간마다 누나에게 달려가 위급함을 알린 것도 콩이였고 지독한 외로움과 고통에 죽고 싶어 하는 마음을 붙잡은 것도 한결 같이 내 옆을 지키던 콩이였다.
약이 없으면 한 시간도 잠들지 못하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통증 때문에 적으면 40알, 많으면 50알이 넘는 약을 매일 먹으며 약에 취한 채 간신히 견디며 사는 보호자의 곁을 지키며 콩이는 자신의 많은 것을 포기했다.
많이 아프고 말할 수 없이 힘들었지만 콩이의 그런 헌신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였다.
그런 콩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콩이를 강아지답게 살지 못하게 했다는 마음이 죄책감처럼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하지만 영리한 콩이는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해줄 수 있는데 안 해줬던 것이 아니라 해줄 수 없었기 때문에 못해줬다는 사실을.
그래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 가능한 것들은 과하다 여길 정도로 챙기며 아껴줬다. 그것이 강아지로서의 삶에 부합하지 못할지언정 넘치는 사랑이었다는 걸 콩이도 잘 알고 있었다.
아토피로 인한 알레르기로 때문에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없었던 콩이에게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과일을 나눠줄 땐 가장 달고 맛있는 부위는 항상 콩이 몫이었다. 콩이와 살며 딸기를 온전한 모양으로 먹은 것이 몇 번 되지 않을 정도였다. 딸기 끝의 가장 달콤한 부분은 언제나 콩이에게 먹이고 싶었다.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항상 콩이 몫이었고 가족들은 그걸 당연히 여겼다.
내가 두 번째 희귀 난치병을 진단받고 쓰러졌을 당시에 곁을 지키던 콩이는 극한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오른쪽 눈에 심한 백내장이 진행 됐었다. 3살이 조금 지난 나이였으니 스트레스가 아니고선 병증을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콩이의 눈에 렌즈를 삽입하는 수술을 하고 한 달이 넘는 간호를 내 손으로 직접 했다. 병원을 데리고 다니고 수술을 지켜보는 건 모두 지니의 몫이었지만 아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내 몸도 혼자 가누기 힘든 때였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나 때문에 눈을 잃을지 모르게 된 콩이가 너무 안타까웠다.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며 나를 간병하느라 고생하는 딸 지니에게 다른 짐을 지울 수는 없었다.
콩이와 나는 함께 병을 이겨낸 전우였다.
콩이가 떠나기 전 마지막 2년 간 아토피 피부염으로 많이 고생했다.
심한 각질로 온 가족이 모두 고생을 했지만 무엇보다 콩이의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따갑고 가렵고 진물이 흐르는 피부를 견디며 짜증 한 번 없이 의젓하게 병을 견디고 간 내 새끼. 고생하는 콩이가 안쓰러운 마음에 콩이에게 짜증 한 번 내 본 적 없었다. 그저 콩이가 잘 견뎌내길 바랐고 그런 콩이와 오래 함께 살 것이라 믿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산으로, 바다로 여행 한 번 제대로 데려가지 못하고 죽기 1년 전까지는 내 손으로 산책 한 번 편히 시켜준 적 없지만 함께 해 주지 못했던 내 미안한 마음을 콩이가 모르지 않았을 거라 믿는다.
그나마 누나인 지니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매일 산책도, 병원도, 목욕도 모두 남부럽지 않게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여긴다.
콩이를 데려 왔을 땐 내가 아플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걸 미리 알았다면 아마 강아지를 기르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아지에게 보호자는 온 세상이라고 말하는데 자신의 세상이 아픈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내가 아픈 중에 콩이가 내 곁에 있어줘서 난 진심으로 행복했다.
콩이마저 없었다면 지난 10년의 시간이 더 지옥 같았을 거란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사랑하는 콩이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한 인생이었다. 남은 세월은 그 행복했던 시간을 되새기며 살아보려 한다.
콩이가 내게 준 사랑의 힘으로.
내가 콩이를 사랑하던 그 마음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