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안고 싶다
내게 두 번째 희귀 난치병이 생기면서 여러 가지 문제와 오해가 겹쳐지고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졌다. 강단 있다 생각하며 살던 내 멘털은 가루가 되다 못해 먼지처럼 흩어졌다.
병으로 인한 통증도 상상 이상이었다.
그렇게 쓰러진 나를 지킨 것이 하나뿐인 외동딸 지니였다. 그리고 그 곁엔 배워본 적도 없는 치료견의 역할을 해내며 콩이가 함께 했다.
콩이는 아픈 몸과 정신에 갇혀 외출 한 번 못하는 내 옆을 우직하게 지켰다. crps돌발통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벌벌 떨어도 겁 한 번 내는 법이 없었다. 심한 우울증과 공황 장애로 변덕스러울 정도로 널뛰는 기분에도 항상 같은 자세와 따뜻함으로 날 진정 시켜 주었다.
그런 세월을 10년이 넘도록 함께 했다.
다시 일어서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어둡고 지난한 세월 동안 내 고통을 오롯이 함께 느낀 존재는 콩이뿐이다.
나를 간병하던 지니에게 MS(다발성 경화증)라는 희귀 난치병이 있다는 걸 발견한 건 내가 심하게 아픈 지 3년이 지난 후였다. 이미 중기(中期)를 지난 상태에서 발견되어 뇌에 수 없이 많은 병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세상이 나를 밀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내게 이다지도 아픈 형벌을 주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본인도 투병 중임에도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엄마를 돌봐야 하는 지니가 불쌍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나와 지니의 중심을 잡아 준 것도 콩이였다.
5년 동안 자가 주사를 해야 하는 지니를 위해 냉장고에 보관했던 주사를 항상 품에 품었다 내주었다. 지니가 주사를 놓으려 방으로 들어가면 방문 앞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 이고 서서 다 맞고 나오는 순간까지 지키고 서 있었다. 누나가 나오면 고생했다는 듯 촉촉한 코를 다리에 들이밀곤 했다.
콩이는 위로이자 버팀목이었다.
지니에게 콩이는 좋은 남매였고 항상 서로를 돕고 의지하는 전우였다.
사실 외출은 둘째치고 내가 침대를 벗어나 거실에 오래 나와 앉아 있게 된 지도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잠시 나와 앉아 있다가도 금세 다시 방으로 들어가 누워 있어야 할 만큼 병세가 깊었다.
그나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을 늘리기 시작했고 집에서 스텝퍼를 타면서 다리 운동을 하고, 별거를 시작한 이후로 공황 발작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재작년(2023) 늦겨울에 지니와 콩이, 리아와 함께 산책을 시작해 작년(2024) 늦여름부터는 콩이와 단둘이 산책을 다닐 수 있게 됐었다.
광장 공포증으로 공황 발작을 시작했던 내겐 장족의 발전이었다.
비록 불편한 걸음걸이로 빨리 걸을 순 없었지만 어깨가 많이 아파 노즈워크를 즐겼던 콩이와의 합은 찰떡이었다. 아프기 시작한 이래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가을이었다. 너무 추워서 돌발통이 생길 것을 염려해 못 나가게 되기 전까지 그동안 함께 하지 못한 산책을 원 없이 했다고 생각했다. 힘들긴 했겠지만 콩이도 그 시간이 나만큼 행복하지 않았을까!
아프기 시작하면서 나를 기만하고 외면하는 가족들로 인해 받은 상처로 해리성 기억 상실과 해리 장애를 겪었다. 우울증과 불안증, 심한 공황 장애로 예전의 내 모습을 잃고 살았다.
다시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지니의 꾸준한 격려와 정성 어린 간호, 거기에 더해 글쓰기등을 통해 내게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깨닫게 된 후 삶의 흐름이 바뀌었다.
더 이상 떨어질 수도 없던 바닥을 치고 올라올 거라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에 한 가지, 작년 말에 전자책 출판을 제안받았고 지금도 꾸준히 출간하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좋아 기대를 품고 열심히 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에 2차 약을 두 번째 복용하고 1년 만에 병변의 활성화와 기존 병변의 유무 검사를 위해 지니가 입원을 했다. 1차 약인 자가 주사를 하면서 5번 재발을 했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2차 약으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몸의 면역 기능을 다 누르는 치료인데 코로나 시기와 겹쳐 많은 걱정 했고 지니는 애를 써야 했다. 그 이후로 처음 재발 유무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너무나 다행히도 기존의 병변도 많이 줄어 있었고 새로 활성화된 병변도 없다는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콩이는 그림자처럼 내 곁에 붙어 있으며 내게 일어나는 변화를 나 스스로가 느끼는 것보다 더 정확히 느끼고 살았다.
절망의 시간은 지나갔다고 느꼈나 보다.
이제는 괜찮아질 거라는 걸 알았나 보다.
아픈 몸으로도 엄마와 누나를 지키려 악착같이 노력했는데 이제 안심이 됐었나 보다.
내가 정신을 차리는 모습을 보고, 지니의 병변이 줄어드는 것을 알고 할 일을 다 마친 듯 서둘러 떠난 것이다.
함께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이제는 좋아질 일만 남았는데.
네가 아파도 돈 생각 하지 않고 병원으로 달려갈 수 있는데.
누구보다 콩이를 사랑했다.
콩이가 자면 지니에게 조용히 얘기하라고 할 만큼 콩이를 아기처럼 생각했다. 지나치다 말할지 모르지만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콩이를 더 살게 할 수 있다면 내 수명 몇 년쯤 떼어줘도 아깝지 않았다. 내 평생 강아지는 콩이뿐이다.
몇 주를 그칠 줄 모르던 지니의 눈물이 조금 잠잠해지니 내 눈물이 고장 나버렸다. 거실로 나와 있다가도 다시 침대에 눕는 날이 늘어가고 있다. 매일 밤 공황 발작으로 숨을 쉬기가 어렵고 말 수도 줄어들었다. 얼굴에서 표정도 사라져 버렸다. 반복되는 crps돌발통에 매일 마약 진통제를 먹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콩이의 사랑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 아직도 많이 아픈 환자 지만 혼자 살아가기 위해 더 나아져야 한다.
시간이 빨리 흐르길 바란다.
헤어짐의 고통이 그리움과 추억으로 남는 순간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