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배신을 해결한 방법

배반자의 최후

by 강나루

아이를 낳고 나이가 차며 소위 '어른'이라는 것이 된 후부터 너무 화가 나거나 진심으로 놀라고 당황스러운 일이 생기도 난 오히려 더 착해지고 냉정해졌다.


부모님 밑에서 살며, 분노하고 날뛰는 것은 상을 지켜본 후에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오히려 처음부터 분노하고 화를 내며 날뛰다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와 전화를 하기 원했던 그 상간녀가 그 케이스였다.

나하고 통화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끝장내고 남편과 남편이 가진 모든 것들을 다 망가뜨려 버릴 수 있다 생각한 듯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건네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기가 세고 와일드한 느낌의 목소리를 가진 그 여자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지 아시죠?

얘기는 들었다는 걸로 아는데.... 내가 ㅂㅂ이라는 인간의 실체에 대해서 얘기를 해줘야 할거 같아서.

직접 보고 얘기하고 싶은데 지금 찾아가도 되죠?"

"전화 통화 원한다고 해서 전화받았으니 용건 있음 전화로 얘기해요. 그리고 아이 재워야 하니까 용건만 간단히 얘기하고요. 하고 싶은 얘기가 뭔데요?"

나는 그 여자가 무슨 얘기를 하던 내가 하고픈 얘기만 하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내가 이렇게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참을 수가 없었지만 지난 몇 달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 남편과 자식의 잘못으로 내게 고개조차 들지 못하시고 노심초사 눈물 지으시는 시엄마 생각에 이렇게나마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기는 했습니다.
제 마음조차 추스르기도 전에 뻔뻔하기 그지없게 잘못을 저지른 년이 제게 연락을 해서 무엇이 됐든 지껄여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자체가 더 이상 제 자신이 용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행동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려줘야 할 때가 온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나는 집에 알려져서 아이도 뺏기고 이혼당했어요. 그런데 ㅂㅂ이 그 인간은 나하고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나한테 사랑한다고 할 땐 언제고 나만 이렇게 다 망가지고 그 인간은 똑같이 들켰는데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사는 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내가 집으로 갈 테니 나 좀 만나요.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내가 다 까발려 줄게. 그리고 그 인간 회사에도 다 알리고 당신 친정에도 알리고, 시댁에도 알려서 당신네도 이혼하게 만들 거야!!"

그 여자는 흥분해서 마구 소리쳤다.


하.... 미쳐도 단단히 미친 여자였다.

사람 보는 눈도 더럽게 없지. 어디서 저런 걸 만나 사랑놀음을 하고 돌아다녔는지....


그동안 내가 자존감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슬퍼했던 시간이 순식간에 우스워져 버렸다.

난 조용한 목소리를 낮게 깔아 천천히 '으르렁' 거리듯 말했다.

"주소 알려 줄 테니까 지금 와요. 기다리고 있을게.

그리고 따로 수고할까 봐 미리 얘기하는 건데 우리는 벌써 친정하고 시댁에 다 알려서 이 사람 용서받았어요.

앞으로 다신 이런 일 없이 잘하겠다고.

그리고 회사분들도 저희 집에 다들 다녀가셔서 이 사람 혼날 만큼 혼나고 경위서도 쓰고 해결해서 열심히 일하는 중이고.

나하고 얘기하는 게 그렇게 소원이면 지금 얼른 와요.

뭐가 그렇게 당당한지 나는 당최 알 수가 없네?

그렇게 원하면 이혼할 테니까 이 사람 데려다가 살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시든가.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도 쓰레기 치우고 좋지 뭐.

아! 한 가지 더. 이혼 절차 시작하면 바로 '간통죄'로 고소해서 콩밥 좀 드시게 될 거야.(그때는 아직 간통죄가 유효했을 때입니다.) 남편이 친절하게 증거를 남겨줘서 내가 다 가지고 있거든.

그리고 '상간녀 위자료 소송'도 준비할 테니까 적어도 5~6천만 원 정도는 준비해 놓고.

내가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위자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당신 일원 한 푼까지 다 가져올 생각이니까 정신 바짝 차리시고.

따뜻한 커피하고 맛있는 과일이랑 쿠키도 준비해 놓을 테니 얼른 오세요"

내 말을 들은 그 여자는 알 수 없는 소리로 마구 고함을 쳐댔지만 나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했다.

"자 이제 네가 싼 똥 내가 다 처리했어.

이 모욕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지금은 잠시 멈춘 것뿐이지 이혼을 하고 안 하고는 아직 결정 못했어.

만약 이게 아빠에게 알려지면 당신 어떻게 될 줄 알지?

아빠가 당신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버리고도 남을 분 이 시라는 거. 지켜볼 거야."


그 여자는 그날 밤에 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다시는 전화도, 방문도, 그 여자의 머리카락 한올도 볼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더 남아 있었다.

남편의 회사 사람들. 특히 함께 일하는 팀원들.

결혼식에서 한번 보고, 11번의 집들이 중에 한번 더 보고.

아무리 남자들끼리는 이해한다 치더라도 그런 일 하나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고 사무실에 여러 번 전화를 걸려오게 만들었으니 남편의 꼴이 얼마나 우스운 사람이 됐을 것이며 아무 죄도 없는 나는 또 얼마나 동정을 받고 비웃음거리가 되었을지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팀원들 모두를 집으로 초대하라고 얘기를 했다.

갖은 정성을 들여 여러 가지 음식들을 준비하고 친정아버지께서 남편 거래처에 갖다 줄 일이 생기면 사용하라고 주신 양주 중에서 '30년 산 밸런타인'을 열어 극진하게 대접을 했다.

식사 자리가 무르익어 분위기가 훈훈해질 쯤에 내가 남편의 회사 직원들(팀원, 부장을 포함한)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차린 것도 별로 없는데 이렇게 오셔서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을 들은 부장님께서

"아니, 오라고 해서 오긴 왔는데 이유도 모르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랑, 아휴~무엇보다 이렇게 좋은 술까지 잘 먹고 있습니다.... 애 많이 쓰셨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몇 마디의 덕담이 오고 가고 내가 본론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다른 게 아니고요. 몇 달 전에 ㅂ ㅂ씨가 조금 불미스러운 일로 사무실 분위기를 흐린 일이 있었지요?"

내가 얘기를 꺼내자마자 갑자기 다들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민망한 기색이 뚜렷해졌다.

그중에서 몇 번을 더보아 안면이 있던 한 직원이

"아... 그거 다 지난 일이고 사무실보다 제수씨가 더 속상하셨을 텐데... 저희는 상관없습니다.

거기에 부장까지 한마디를 더 보탰다.

"안 그래도 제가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따끔하게 야단쳤습니다. 너무 맘 상하지 마시고 회사 쪽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떨리지만 용기를 내어 말했다.

"사실 제가 조금 서운 했습니다. 다들 저희 결혼식에 오셔서 잘 살라고 축하도 해주시고 감사하게 집들이도 와주시고 몇몇 분은 가깝다 할 정도로 저희와 친한 분들도 계신데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저한테 귀띔으로라도 알려주시는 분이 어떻게 한분도 안 계실 수가 있어요. 너무 속상하고 힘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겠지만 혹시라도 비슷한 일이 생기면 저한테 좀 알려주세요. 그래야 호미로 막을걸 가래로 막는 일이 안 생기지 않겠어요. 다음번에도 모른척하시면 저 회사에 진정서 넣을 겁니다. 잘 좀 부탁드릴게요."

내가 생글생글 웃으며 이렇게 말하자 다들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아이고 당연하지요!!'를 외쳐댔다.

이것으로 회사 쪽까지 이 일의 흔적을 지우고 마무리를 지었다.


친정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친정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얘기를 꺼낸 후 이혼을 하게 된다면야 얼마든지 다 까발리고 내게 유리한 쪽으로 얘기를 했겠지만 얘기를 한 후 이혼을 하지 않게 되면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어떤 대접을 받게 될 것인지, 또 다시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보니 마음을 확고하게 결정할 틈도 없이 이 일은 그냥 지나가는 듯 덮어지려나 했지만 이 일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길었다.

남편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떨어져 나간 자리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 비어있게 되었고 다시는 예전 같은 크기의 사랑이나 신뢰로 돌이킬 수는 없게 돼버렸다.

이 일로 인해 내 삶 전체가 완전히 박살나 버렸다.

이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해피 엔딩은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딸을 봐주시던 친정엄마께서 오빠네 둘째가 태어나는 것을 기점으로 지니를 더 이상 돌봐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내게 여러 가지 큰 변화가 닥쳐오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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