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이스방)가 살아남는 법

이스방의 생존 전략

by 강나루

계획적인 나와 달리 무계획이 계획인 남자.

나이가 스물아홉 살이 넘도록 밥상에 숟가락 한번 자진해서 놓아 본 적이 없고, 임신한 형수님이 배를 땅에 끌면서 방을 닦아도 자기 이부자리 한번 개어 본 적이 없는 사람.

샤워를 하고 나온 욕실을 들어가 보면 온 사방에 튀어놓은 비누 거품으로 자신이 씻고 나왔음을 알리던 남자.

옷과 양말은 반드시 뒤집어서 몽땅 벗어젖히며 들어오는 입구부터 손을 씻으러(내 성화에 못 이겨) 욕실까지 가는 동안 지나간 자리의 흔적을 남기던 남자 이스방.(25평 작은 집 안에서 길을 잃을까 봐 무서웠나 봅니다. ㅉㅉㅉ)

함께 퇴근해 육아에 저녁 준비에 정리, 청소까지 정신없는 내가 견디다 못해 도와 달라는 부탁을 두 가지 이상만 해도 입이 십 리는 튀어나오던 못돼 쳐 먹었던 인간.(시 부모님의 자녀 교육은 한마디로 꽝!입니다.)


도대체 연애했던 기간 동안에 자기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그 노력이 가상해 박수를 쳐주고 싶은 순간이 얼마나 많았었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반대하던 결혼을 내가 선택하고 생애 처음으로 고집? 부려했던 결혼이었기에 나는 친정 쪽에는, 아니 누구에게도 힘들다는 얘기 한 마디 없이 결혼 생활의 고충들을 참고 견뎠다.

처음으로 내게 닥쳤던 큰 고비를 도와주었던 은행 언니에게도 어린 나로선 도저히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닥쳤을 때 간간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긴 했어도 단 한 번도 자세하게 내가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상황들을 헤쳐 나가는가를 얘기해 본 적은 없었다.

난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사는 good listener였지만 내 얘기를 털어놓는 데는 한없이 서 사람이었다.


특히 친정 에는 항상 좋은 얘기만 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남편이 보여주는 좋은 면을 극대화시켜 전달했기 때문에 내가 어떤 어려움들을 겪고 있는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셨다.


그리고 남편은 아이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내 아이, 남의 아이 가릴 것 없이 아이들을 좋아했고 지니 밑으로 줄줄이 태어난 조카들은 스스럼없이 이스방에게 다가가 안길 만큼 이스방은 아이를 다루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아버지가 이스방을 예뻐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이스방의 이 유별난 아이 사랑 덕분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러 가게 되는 경우 이스방은 자신의 몫을 번개처럼 먹어 치우곤 갓난아이부터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까지 모두 능숙하게 돌봐주어 오랜만에 외식을 나온 동생이나 올케가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항상 배려해 주는 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영업일을 했던 노하우로 어디서나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서글서글한 모습을 보여 낯가림이 심했던 오빠의 모습과 비교되어 더 좋게 보셨던 것도 있었던 것 같았다.


다만 어쩌다 내가 막을 수 없게 드러나는 모습에서 내 삶이 그리 녹록지 많은 않겠다는 짐작을 하시곤 했다.


나와 오빠, 동생네가 결혼한 후 아버진 1년에 두 번씩 양가 사돈들을 모시고 평소에는 다녀 볼 일이 없을 법한 식당을 예약하셔서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시는 걸 연례행사처럼 하시게 됐었다.

항상 화목하게 좋은 음식을 먹으며 덕담을 나누던 그 모임이 6년 만에 깨지는 일이 우리 시댁으로 인해 생기게 됐다.

아니 정확히 우리 시아버지로 인해 생기게 됐다.

그 해 모임도 정갈하고 보기 드문 한식집에서 다 같이 모여 분위기 좋게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서로 덕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남편이 저질렀던 일로 내 맘에 생긴 상처가 결국은 몸의 탈이 되어 한참 병원을 드나들며 치료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시던 시아버지가 느닷없이 폭탄발언을 하시는 거였다.

"제가 지니에미를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몹쓸 꾀를 쓰는 것 같아 요즘 좀 괘씸하게 생각하는 중입니다"

함께 웃으며 말씀을 나누시던 아버지는 시아버지가 갑자기 하는 말에 안색이 굳어지시며

"무슨 언짢은 일이 있으셨나 본데 말씀해 보세요.

ㅇㅇ이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제가 야단을 치겠습니다."


난 너무 당황해서 몸 둘 바를 몰라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 마냥 그 얘기를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론 우리 가족들만 모인 것도 아니고 오빠네 사돈 어르신도 모신 자리에 '이게 무슨 망신인가' 싶은 생도 들고 딱히 잘못한 일이 떠오르지도 않아 내심 무슨 일인가 궁금한 맘도 생겨 뭐라 말씀하시려나 신경을 곤두 세웠다.


시아버지는 남편이 잘못을 저지른 그 처참한 일 이후로 내가 병이 생겼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아시면서 친정아버지께

"아니 매번 명절 전에 벌초를 하러 시골을 내려갈 때 큰애들이 미용실 영업을 해서 둘째네를 데리고 다녔는데 몇 번은 잘 따라다니더니 요 근래는 아프다는 핑계로 꾀병을 부리면서 번번이 빠지고 아범하고 지니만 보내길래 크게 야단을 한 번 쳤는데도 못 알아먹고 여전히 꾀병을 부리고 빠질 궁리를 하네요.

보기엔 괜찮아 보여 가자고 하는데도 자꾸 그러니 눈물이 쏙 빠지게 다시 야단을 쳐야 하나.... 사돈한테 말씀드려 초장에 버릇을 고쳐야 하나 두고 보고 있는 중입니다."

빙글빙글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전후좌우 사정을 다 알고 있고 문제의 근원인 남편은 가시방석에 앉은 마냥 어쩔 줄을 몰라하며 시아버지를 쳐다봤다가 도와 달라는 듯 시어머니를 쳐다봤다 꽁쥐에 불붙은 쥐처럼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했다.

듣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아니, ㅂㅂ이가 와서 에미가 많이 아프다고 자세히 설명하고 갔잖아요. 꾀병은 무슨 꾀병이요.

애가 힘들어서 저렇게 말라 돌아가는데 좋은 자리에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또 하고 그래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여기 못한 식사나 마저 하세요"

어머니는 이 상황이 어이없고 아버님의 돌발행동으로 좋은 자리가 망쳐질까 봐 노심초사하고 계셨다.


그러나 우리 시댁의 최강 빌런 '우리 시아버지'를 누가 말릴 수 있었겠는가....


굳어진 안색으로 조용히 듣고 계시던 친정아버지는 또박또박 한 마디씩 힘을 주어 말씀하셨다.

"사돈어른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조금 서운합니다. ㅇㅇ이가 앓고 있는 병 저희 안사람도 아파봐서 제가 잘 압니다.

겉으로는 어떻게 보일는지 모르지만 저게 엄청 힘든 병입니다. 많이 먹어도 점점 살이 빠지고 30분만 움직여도 반나절은 시체처럼 누워있어야 할 만큼 힘든 병인데 ㅇㅇ이는 먹는 것도 시원찮아 걱정이 많니다. 그래도 ㅇㅇ이가 별 내색 없이 잘 버티는 게 다행이다 싶고 장하고 기특하다 생각했는데.... 그리고 ㅇㅇ이 성격상 해야 할 일 미루고 꾀병이나 부릴 그런 아이 절대 아닙니다.

사돈께서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실제로 아이가 많이 아픈 겁니다. 열심히 살아 보겠다고 맞벌이하느라 고생하다 생긴 병인데 가족들이 도와줘도 시원찮을 마당에 그렇게 오해하시면 아이 마음에 상처 입지 않겠습니까.

사돈께서 분명히 오해하시는 겁니다."

괜한 말을 꺼낸 시아버지만 머쓱해지고 말았다.


이래저래 분위기가 깨진 식사 모임은 서둘러 마치게 되었고 각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친정에 2차?로 함께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는 대로(大怒) 하고 마셨다.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하시는 아버지의 맘을 가라앉히는 것도 남편과 내가 해야 할 몫이었다.

한편으론 아버진 괴팍하신 시아버지의 모습을 보시곤 내 시집살이의 고됨을 걱정하셨다.


잔뜩 속상하셨던 친정아버지께서는

"내 다시는 내 돈 내고 이런 언짢은 일 안 겪으련다. 내가 ㅇㅇ이랑 그렇게 오래 한 직장 다녔어도 칭찬하는 소리만 들어봤지 지나가는 소리에라도 허물 있다는 소리 못 들어봤다. 그래도 내가 어디 가서 자랑 한번 안 하고 맘으로만 기특하다 생각하고 살았는데... 봉변도 이런 봉변이 어딨냐!

어린애 데리고 가 갖은 고생시켜 병나게 했음 입이 열개라도 할 말 없지 어디서...!!!!

ㅂㅂ이 너 똑바로 해라."

라고 말씀 하셨고 남편은 두말도 못하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뭐가 두려워 이혼을 주저했을까?

사회적인 시선? 아이에 대한 미안함?

부모님이 나를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


내가 지금껏 보여드린 몇 편의 에피소드는 결혼 초창기에 일어났던 일들이다.

30년을 함께 살며 많은 것들이 변하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변하지 않은 것은 단 하나. 남편.

남편은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것이라 생각이 들 것 같았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벌어질 스펙터클 하고 서스펜스 넘치며 호러블하며 박진감 넘치는 얘기를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단, 시원하게 마실 것을 준비하셔야 할 것 같다.

고구마, 감자. 천만 개다.... 하!!!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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