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함께 온 '부정맥'
내가 병에 걸렸다.
죄는 남편이 저질렀는데 벌은 내가 받는 형국이었다.
내가 그를 용서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가 만약 진심을 다해 나에게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사과를 했더라면 그 기간은 훨씬 단축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 일에 대해 사과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것이 그만의 방식이었고 내 마음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그 일로 인해 우리는 수시로 말다툼을 하게 됐었다.
그리고 말다툼의 끝은 항상 수세에 몰린 남편이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남편은 입을 다물어 버리기 전에 항상 같은 레퍼토리의 말을 반복했다.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더 이상 뭘 어떻게 하라고. 다 지난 일을 자꾸 얘기해서 어쩌자는 건데!"
남편의 사과엔 진정성이 없었다.
단 한 번만 이라도 진심으로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여보, 내가 정말 미안했어. 내가 잠시 어떻게 됐었나 봐. 당신하고 지니를 두고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하다니... 당신 가슴에 깊은 상처를 준 것 같아서 뭐라 말할 수 없이 미안하고 나도 가슴이 아파. 이번에 잘못 한건 평생 동안 내가 당신에게 죗값 치르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살게. 힘들겠지만 한번 만 용서해 줘."
이렇게 얘기해 줄 순 없었던 걸까?
본인이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에 말솜씨가 없어 입을 다물고 있는 것까지 내가 이해를 해줘야 했었던 걸까?
세상에 어떤 여자가 남편이 배신을 한걸 확인했지만 일을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엔 남편이 해결하지 못하고 집착하는 상대방을 떼어? 내주고 직장에서 엉망이 되어버린 남편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남편 직장동료들을 집으로 불러 만찬을 대접하는 일을 아무런 내색 없이 해낼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한 일에 칭찬을 바랐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남편은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지 않았다. 모든 일들을 당연하다 여기고 있었다.
나는 남편의 엄마가 아니라는 걸 남편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이 자기 연민에 빠져 있지 않고 나와 지니의 가장으로서 역할을 해 주기만 바랐을 뿐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30년의 결혼 생활 중에 26년 동안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26년 동안 갖은 꼴통 짓을 다하고 살았다.
남편은 결혼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난 26년간을 지독한 외로움, 사랑 없는 결혼에 대한 후회에 갇혀 살았다.
지니는 내가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우리 집의 문제가 무엇 때문인지 모르고 사랑 없는 부모님과 살아야 하는 불행을 겪었다.
그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남들보다 항상 두세 배는 더 노력하며 살았고 친정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사랑으로 감싸며 기르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항상 결핍을 느끼며 살 수밖에 없었고 아빠에 대해 이유 모를 화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린 지니에게 부모의 불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절대 이유를 얘기해 줄 수 없었다. (얘기해 주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 스스로도 아무 말 없이 노력하고 살았지만 아이는 말하지 않아도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았고 엄마가 아픈 것이 항상 아빠 때문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아이가 성인이 되고 우리가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이 일에 대해 쓰기 시작했을 때 아이는 경악했지만 어느 정도 각오가 돼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의 나이보다 몇 살 많지 않았던 엄마가 어린 나이에 겪었던 아픔에 대해 위로하며 나를 안아 주었다.
이제 우리가 겪은 험난한 결혼 생활에 대한 본격적인 얘기들을 펼쳐 나갈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됐다.
이보다 더한 어려움들을 겪으신 분들도 많으실 거라 믿는다.
그럼에도 이 글들을 계속 이어가는 이유는 나와 우리 지니의 마음을 위로받기 위해, 또 이 보다 더 힘든 일들을 겪으신 분들의 마음 또한 위로하기 위함이다.
거래처 의사 선생님이 써주신 진료 의뢰서를 가지고 예전 동네에서 가까운 서울 강남 성모병원 심장센터로 먼저 예약을 한 후에 찾아갔다.
여러 가지 검사(심장 초음파, 운동부하검사, 심전도 검사, 생활 심전도 검사)를 했다.
그중에 생활 심전도 검사는 심전도기를 가슴에 부착한 후 작은 기계를 어깨나 목에 메고 생활을 하는 검사라 더운 여름에 검사할 때는 밴드 알레르기로 항상 고생을 해야 했다.(요즘 기계는 훨씬 간편하고 좋아졌어요)
나는 심장이 갑자기 '쿵'하고 내려앉는다거나 박자에 맞춰서 뛰지 않고 건너뛰게 되는 '심방세동'과 멀쩡하게 가만히 잘 뛰고 있다가 갑자기 숨이 가빠올 정도로, 기차가 달려오는 것처럼 빠르게 뛰는 '빈맥(頻脈)' 두 가지의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진단받은 심장 부정맥들은 '갑상선 기능 항진증'의 증상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이 '갑상선 기능 항진증'으로 이사한 이후 내가 겪었던 모든 힘든 일들의 이유가 밝혀지게 됐다.
불면증, 심장의 이상, 예민해진 신경과 심한 손떨림, 에너지 과소모로 인한 체중감소, 심한 탈모 등을 겪고 있던 나는 갑자기 증상이 발현돼 심해진 관계로 보통의 환자들이 처음에 2-4알 처방받던 경우보다 훨씬 많은 11알 반을 처방받아 그때 당시에 쓰기로 유명했던 항진증 약을 억지로 삼켜가며 투병을 시작해야 했다.
친정에는 알리지 않고 먼저 병원을 다녀온 후에 얘기할지 말지를 결정하자고 했었던 우리는 생각보다 중한 상황에 사흘 앞으로 다가온 친정 식구들을 위한 집들이를 앞두고 큰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