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부정맥'이 발병했다
남편의 '배신'을 겪은 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에 노력을 더하며 직장생활과 가정생활 모두에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며 가능한 몸과 마음을 바쁘게 움직이며 살았다.
잠시라도 빈 시간이 생기면 안 그래도 생각이 많은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더 복잡해져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항상 내게 말했었다.
"ㅇㅇ이 넌, 생각하겠다는 생각만 버리면 사는 게 훨씬 수월할 거야. 머리도 덜 아프고..."
그 말 그대로 나도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고 내 위주로 삶을 살았다면 내 인생이 훨씬 수월하고 평탄하게 살아지지 않았을까?
우리가 살면서 하루에 심장이 뛰는 것을 크게 느끼는 경우가 몇 번이나 있을까?
식구 중에 누군가 갑자기 문을 세게 닫아 깜짝 놀랐을 때 어쩌다 한두 번?
아니면 운동을 격렬히 하고 난 후 숨이 부족해 숨을 몰아쉬며 숨차다고 느낄 때?
아니면 진실된 사랑을 만났다고 느꼈을 때?
현실은 비록 가운데 머리카락 수가 줄어가고 배가 점점 나오기 시작하는 거미형 인간과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상황이지만 아직도 리즈 시절의 브래드 피트가 나오는 영화 '조 블랙의 사랑'을 보고 있노라면.... 그제야 내 심장이 무사히 살아 있음을 가끔 느끼곤 했었다.
그런데 약하기는 했지만 한 번도 심하게 아파보지는 않았던 몸에 이상 신호가 잡힌 건 시댁 쪽으로 이사한 지 보름 만이었다.
살고 있던 전세 집이 계약 만료가 되어 아예 집을 사려고 알아볼 던 중에 새언니가 둘째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알려왔고 그때까지 새 언니네를 데리고 살던 친정에선 지니를 더 이상 봐주실 수 없다고 통보하셨다. 더 이상 집을 알아볼 새도 없이 지니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 상황까지 겹쳐 결국엔 시댁 근처로 집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왕복 40분이면 가능하던 출퇴근 시간이 2시간 가까이로 늘어나고 집의 평수도 줄어 짐도 제대로 풀지 못한 데다가 여태껏 살던 환경과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든 중에 몸에 이상이 생긴 걸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가리는 음식이 없어 뭐든 잘 먹지만 원체 입이 짧아 많이 먹지 못해 항상 마른 몸매를 유지하고 있던 나였지만 이사를 한 후에는 남편과의 그 힘겨웠던 일로 15kg이 줄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몸무게는 처참하게 줄어가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58kg.
그 일을 겪으며 43kg.
이사를 한 후에는 34kg.(키는 161cm)
사람 형상을 한 뼈다귀에 가죽을 씌워놓은 것이 간신히 걸어 다니며 죽지 못해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보기에도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인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난 아이에게 항상 당부해 둔 말이 있었다.
"지니야. 엄마하고 같이 다니다가 혹시라도 엄마가 넘어지거나 쓰러지면 놀라서 울기만 하지 말고 바로 옆에 있는 가게에 들어가서 "엄마가 쓰러졌어요. 119에 전화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엄마 옆에 딱 붙어 있으면 돼.
놀라서 어디로든 막 혼자 가면 절대 안 돼. 그리고 아빠 전화번호 생각 안 나면 엄마 휴대폰 1번을 길게 누르고 있으면 아빠가 전화받을 거야. 그럼 아빠한테 엄마 쓰러졌다고 얘기하고 들어간 가게 주인 바꿔주면 아빠가 데리러 올 거야. 알겠지? 엄마가 아파서 정말 미안해. 지니 무섭게 해서 정말 미안해.
엄마가 말한 대로 연습해 보자"
라며 아이를 수도 없이 연습을 시킬 만큼 몸이 쇠약해졌다.
이제 막 6살이 된 아이에게 연습시킬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몸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직장을 다니는 것도 너무 힘들어 당분간 몸이 회복될 동안 만이라도 견뎌보기 위해 휴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몸무게가 줄어들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동안은 내내 아픈 아이를 케어하며 직장을 다니고 살림까지 완벽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었기 때문에 밤에 베개에 머리만 같다데도 잠이 들기가 일쑤였는데 몸이 쇠약해지고 기운이 없어질수록 밤이고 낮이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쩌다가 잠깐 눈이라도 붙일라치면 꼭 가위에 눌리곤 했다.
침대에 누워 잠이 드는 순간 현관 바깥쪽에 9척 장신의 남자들 대여섯 명이 두리번거리며 우리 집 문 앞에 서서 현관문 손잡이를 돌려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머리에 중절모 같은 모자를 깊게 내려쓴 남자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칠흑 같은 어둠이 깃든 불길한 검은색 띠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뛰어들어올 것 같아 나는 어떻게든 잠에서 깨려고 몸부림쳤지만 손가락 하나도 꿈적할 수 없었고 내가 간신히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게 됐을 때 항상 있는 힘껏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치며 일어나 지니와 남편을 여러 번 놀라게 만들었다.
이런 나를 지켜보던 남편은 거래처 중에 유능한 의사 선생님이 계신 곳을 골라 검사와 진료를 받게 했다.
어느 한 날은 너무 지쳐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나를 걱정하다 못해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지니에미가 너무 아프니 죽을 쒀서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하고 출근을 했다.
그날도 밤새 가위에 눌렸다 깼다를 반복하고 결국엔 밤을 홀딱 새우고 남편이 출근하며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키는 것을 보고 간신히 잠깐 잠이 들었을 때였다.
"쾅 쾅 쾅!!! 쾅 쾅 쾅!!!"
나는 다시 가위에 눌린 줄 알고 "악"하고 소리를 지르고 침대 위에 벌떡 일어나 핏발이 잔뜩 선 눈에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선 이 소리가 어디서 나는 것인지 귀를 기울였다.
"쾅 쾅 쾅. 나다. 아버지. 문 좀 열어라. 쾅 쾅 쾅 쾅!! 나라고. 문 좀 열라고!"
시계를 보니 8시 45분.
지니를 유치원에 보낸 지 채 10분이 지나지도 않은 이른 시간에 시아버지가 찾아오신 거였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간신히 문을 열어 드렸다.
"오셨어요? 이른 시간에 어쩐 일로 저희 집엘 다 오셨어요? 아버지랑 지니는 다 출근하고 유치원 가고 저 만 있는데요? 무슨 일 있으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잠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시아버지를 맞이 하고 거실로 모신 뒤 카디건만 챙겨 입고 거실 소파에 간신히 기대앉았다.
시아버지께서는 집에 있는 영양제를 챙겨 오셨는지 검은 봉투에 담긴 약통을 한 보따리 내놓으시며
"이거 원래 실버 영양젠데 젊은 사람이 먹어도 괜찮으니까 잘 챙겨 먹어라.
몸이 말라 보였어도 강단 있게 잘 버티는 것 같더니 어디가 그렇게 아픈 거냐?
사람이 살다 보면 스트레스받는 일도 생기고 하는 법인데 그거 그냥 훌훌 털어버리고 그래야지 자꾸 곱씹고 살다 보면 별것 아닌 일로도 병 되고 그런 거다. 너 아픈 거 보름도 넘었지?
알겠니? 얼른 훌훌 털고 일어나라.
아범 아침밥은 어떻게 하냐? 그냥 굶고 다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네가 아무리 아파도 남편 아침밥은 꼭 챙겨줘라.
못 차려 주는 건 할 수 없지만 챙겨 먹고 다닐 수 있게 준비는 해놔야 한다.
나 출근하던 중에 들렸으니까 나중에 또 와보던지 네가 얼른 나아서 집에 오던지 해라. 나 간다."
..... 시아버지의 말은 때로는 칼로 변해 나를 마구 난자한 후 내 심장을 깊숙이 찔러 마지막으로 숨통을 확실히 끊어 놓으신다.
그 순간에 시아버지가 야차(夜叉)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때서야 내 몸의 이상한 증상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내 심장이 뛰는 것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1분에 맥박이 60~80 정도를 뛴다.
난 누워만 있어도 1분에 140번의 맥박이 뛰고 있었고 심할 땐 160번의 맥박이 뛸 때도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쉬고만 있어도 항상 전력질주로 달리기를 하는 것 같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던 거였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바뀌고 말았다.
남편 거래처의 병원으로 검사 결과와 진료를 보러 가던 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진료 의뢰서를 작성해 줄 테니 큰 병원으로 가보셔야겠습니다. 심장센터와 내분비 내과 두 군데로요."
"내분비 내과요?"
"부정맥이 급성으로 온 갑상선 질환의 증상인 것 같아요.자세한 건 그쪽에서 검사를 다시 하시고 치료하셔야 할 것 같네요."
20년이 넘는 파란만장한 내 투병생활의 첫 신호탄이 발사되는 날이었다.
내가 이혼하지 못한 것은 이것들을 나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억울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 이어서였을까?
아니면 절대 한 번도 거짓말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다는 얼굴로
"이제 다시 너만 사랑해. 그건 실수였고 마지막도 당신에게 의지할 만큼 난 당신뿐이잖아. 당신만 사랑해."
라고 말하는 남편의 깜찍한 아니, 끔찍한 거짓말의 진실을 끝까지 확인하고 싶었던 나의 미련함이 이유였을까?
아니면.... 정말 미련하게도 이런저런 끔찍한 일을 겪고 마침내 병까지 얻었음에도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었던 걸까? 망가져버린 나의 결혼 생활을 다시 본드로 이어 붙여서라도 유지하고 싶었던 안타까운 마음의 몸부림이었을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