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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Feb 23. 2022

말 헤는 밤

좁고 가는 밤에 올라타

사진 출처: pixabay




불면의 밤이면 

멀리서부터 대오를 맞춘 병정들이

침실까지 헤어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삐죽한 그림자가 베갯머리에 드리우자

구호도 없이 행진이 멈추고,

밤은 그림자의 흉내로 가늘어집니다.  


나는 좁고 가는 밤에 올라타

그것들이 아래로부터 일제히 

망막을 찔러오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시뻘건 겨냥을 피해

밤 위로 떼굴떼굴 굴러갑니다.


주인을 따라 공포증에 빠졌던 눈알이 

차츰 안력을 되찾아가매

나는 어둠 속의 날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어느 저명한 인사상말

웃음거리 삼아 퍼다나른 뜬말

댓글창에서 꿈틀대는 벌레먹은 말과

우리를 가르고 찢어놓으려 벼르는 말과

지난 낮 당신에게 성마르게 내뱉은 말과


아, 모든 시가 되지 못한 말들

어둠 속에서 나를 기다리는 검산.





검산: 지옥에 있는, 수없이 많은 칼을 세워 만든 산. 옥졸이 죄인을 산에 부딪히게 하여 머리와 팔다리를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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