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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두울 Oct 27. 2022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사람들은 대체로 사랑을 자연적으로 촉발되는 하나의 즐거운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사랑이 '기술'이라면 어떨까? 사랑이 기술적인 개념이라면 사람들은 연습을 통해 더 올바르게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고, 노력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하고 좋은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사랑이 기술이라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 사랑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인 교육(?)을 제공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랑을 배우고 발전시키려 하지 않는다.  에리히 프롬은 다음 세 가지를 그 이유로 든다.

1. 사람들은 사랑하는 방법이 아니라 사랑받기 위한 방법만을 찾는다. 연인이나 가족에게 사랑받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꾸미는데 많은 노력을 쏟지만, 정작 사랑을 주는 본인의 모습을 보려 하지 않는다.

2. 사람들은 본인의 '사랑 능력'을 키우는 것보다 매력적인 대상을 찾는 일에 힘을 쏟는다. 매력적인 대상의 존재가 사랑의 경험을 위한 필수 요소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상대의 가치를 저울질하고, 가장 높은 매력을 보유한 대상을 찾는다. 시장지향성이 널리 퍼져 있는 문화에서는 사랑 역시 상품 시장이나 노동 시장을 지배하는 교환 양식에 지배된다.

3.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에 머물러 있는 영속적 상태를 혼동한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서의 설렘이 곧 사랑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랑의 기술을 접하더라도 서로 다른 두 자아가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는 일회성의 과정만을 사랑으로 여기고, 곧 찾아오는 익숙함을 견디지 못한다.

**에리히 프롬은 현대 사회의 물질주의적 풍토가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 사랑은 무엇일까? 분리에 대한 불안은 모든 인간에 내재한 근원적 특성이다. 인간은 분리를 극복하고 합일을 이루기 위한 여러 방안들을 모색한다. 갓 태어난 아기는 본능적으로 어머니를 찾고, 몇몇 사람들은 국가나 이념, 혹은 특정 커뮤니티에서 소속감을 얻는다. 연인에 대한 구속과 집착, 가학-피학적 관계 등에서 보이듯이 합일에 대한 욕구는 개인적 영역에서도 일어난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이것은 근원적 고독과 불안의 또 다른 표출 방식에 불과하며, 성숙한 합일의 유일한 방식인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성숙한 사랑만이 분리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 따라서 인간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만든다.


사랑은 특정 대상과의 관계로 한정되는 개념이 아니다. 사랑은 세계와 나의 관계를 결정짓는 태도이며 성격이다. 어느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그 외에 사람들에게 무관심할 수도 없고, 나를 혐오하면서 타인을 사랑할 수도 없다. 사랑은 (나를 포함한) 세계와의 합일을 향한 지향성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은 역동적인 활동이다. 사랑은 수동적인 개념이 아니라 주는 것이며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는 것'은 무언가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랑은 역설적으로 주는 행위를 통해 더 풍족한 삶, 더 생동하는 삶의 경험을 가능케 한다. 무엇보다도 사랑을 줌으로써 인간은 자기도취와 자기 중심성에 의해 구축되었던 고독과 고립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활동이다. 사랑과 착취, 희생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사랑하는 능력은 근원적 분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간 존재의 고유한 능력이다. 사랑은 태도이고, 성격이며, 활동이다. 사랑과 어울리지 않는 (현재와 같은)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면 사랑이라는 고유한 능력을 배양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랑에는 의식적이고도 기술적인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이라는 성숙한 태도를 지향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관계에 속해 있는 자들의 존엄성을 보존하기 위해, 결국 <사랑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라고들 하는 이성적 사고를 통해 다른 기술들을 배우는 것처럼, 이성을 통해 나와 다른 존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사랑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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