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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늬의 삶 Sanii Life Jul 29. 2024

메린커피농장에서 손에 작은 화상을 입다

베트남 보름살기 19 : #달랏여행 #호아손 #빅씨마트 #도하카페


외국 나올 때마다 좋은 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 해방감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마음 그대로 한국에서 한동안이나마 살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이방인이 아니다 보니까 암만 내멋대로 살아도 은근한 오지랖들이 있다. 가족도 뭐라 안 하는데 꼭 나를 잘 모르는 인간들이 그러는 게 너무나도 싫다. 여행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이라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트랑에서 안 좋은 수질에 물갈이를 하느라 잔뜩 텄던 양 손등은 달랏에 온 이틀차 쯤부터 괜찮아졌고, 일상을 살아냈더니 슬슬 지루한 참이라 관광을 해볼까 결심했다. 호스트와 아는 사이인 그랩바이크를 불렀다. 매연을 다 들이마시며 미지근한 바람을 가르다가 오늘 처음으로 마스크를 안 하고 나온 걸 깨달았다. 여기는 호아손 매표소다. 



호아손은 그냥 포토스팟 모음 관광지였다. 친절한 베트남 분들께 사진을 여럿 부탁했다. 세 군데 스팟에서만 사진 찍고 나서 다른 데는 다 지나쳤다. 풍경도 괜찮긴 한데 등산이나 트래킹 하는 정도의 보람은 없어서 택시투어 같은 거 하면서 잠깐 들를 정도인 곳 같다.


첫 포토스팟


오늘은 여름이다. 그것도 한여름이라 쪄죽는 줄 알았다. 바이크를 타도 시원하지가 않고 한여름에 차 창문 연 정도의 느낌을 받았다. 이 더위에 여기 사람들은 패딩도 입는다. 반팔 입은 사람들도 있는데 베트남 기준으로 추위를 정말 안 타는 분들일 테니 신기했다.


째깍째깍
덥다 더워


다음으로는 메린커피농장에 도착했다. 메뉴판을 받아읽으며, Den은 블랙이고 Sua는 연유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 듣고 온 터라 Moka sua 95,000동을 골랐다. 커피 주문하고 영수증 받아서 캐셔가 정해주는 number로 가면 된다. 나는 3번이었다. Number 3에 가서 영수증을 주면 드리퍼랑 컵 등을 올린 트레이를 보통은 서빙까지 해주는 모양이다. 그걸 모르고 한국 카페에서처럼 직접 가져가려 했더니 직원분이 트레이 내가 가져갈 거냐고 물어봐왔다.



"Yes."라고 했는데 1분도 안 돼서, 계단 오르다가 드리퍼 뚜껑이 떨어지는 바람에 오른손을 뜨거운 커피에 데였다. 베트남 아저씨가 맞은편에서 조심 안 하고 막 내려와서 피해가다가 엎은 건데, 억울한 나만 빼고 주변에서 모두가 당황해서 소리를 질렀다. 심지어 그 아저씨도 비명 질렀다. 참나.


예전에 팔팔 끓는 물에 2도 심재성 화상을 입었던 적이 있다. 그때에 비해 이 정도는 괜찮은 느낌이라 당황한 것 같은 직원들한테도 커피 쏟아서 미안하고 괜찮으니 손 좀 씻자고 했다. 내 커피를 바로 다시 만든 남직원이 이번엔 본인이 트레이 들고 따라와주었다.



화상 입은 부위를 흐르는 물에 5분씩 서너 번을 씻었다. 허허. 이번에 여행자보험 안 들고 와서 다치면 안 된다고! 다행히 자기 전까지 화상 느낌이 좀 있긴 했지만 다음 날 완벽히 괜찮아졌다. 딱 하루만 따갑고 만 것 보니까 운도 좋았고 후처리를 잘한 듯했다.


좋은 풍경


메린커피농장에서는 화장실 들어가는 입구에 휴지를 돈 받고 파는 직원분이 있다. 다행히 화장실은 무료고 쾌적하다. 풍경이 너무 좋았다. 보조배터리를 완충해왔다면, 그랩바이크기사와 만나야 하는 시간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한없이 바깥을 보면서 커피를 마셨을 것 같다. 아주 더운 날씨인데도 건물이 그늘을 만드니까 대체적으로 시원하기도 했다.


널찍한 곳


카페 쓰어다라는 메뉴를 주문하면 딸려오는 게 많다. 원두가 모두 드립되면 얼음컵에 붓고 연유를 넣어서 숟가락으로 저으면 커피가 완성된다. 한 입 마셔보고 놀라서 눈이 트였다. 오, 맛있어! 세 입거리인 게 무척 아쉬울 따름이다.



메린커피농장 곳곳에서는 물을 마실 수 있다. 더운 나라라서 그런지 수분 보충 하나는 확실히 할 수 있게 해두었으니 물 걱정은 없다. 혹시나 빨간색은 뜨거운 물일까 조심스레 접근해보았는데 파란색 통, 빨간색 통 둘 다 차가운 물이었다.



커피 주문하면서 포토존 입장권을 받았다. 요즘 한참 유행 중인 포토 스팟인, 하늘로 향하는 것 같은 조형물 '천국의 계단'에서 사진 찍고 싶어서 달랏 Sunny Farm에 가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메린커피농장에도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야호, 이득이다.


목에 카메라를 걸고 있는 베트남 남자분한테 약간 신뢰가 가서 사진 찍어줄 수 있냐고 부탁드렸는데 결과물은 영 아쉬웠다. 한국인이냐고 물어봐서 그렇댔더니 무리 중 다른 남자가 엄청 좋은 발음으로 "하나~ 둘~ 셋!" 이래서 깜짝 놀랐다.


베트남 커피 드리퍼 두 개 구입했다
가두어진 족제비를 볼 수 있었다


빅씨마트에 들렀다. 그랩바이크기사가 기다려줄까 물어봐서 오늘 달랏의 마지막날이고 마지막 저녁이라 풍경 보면서 걷고 싶다고 하고 굿바이 했다. 처음도 오늘도 30만 동 줬는데, 오늘은 호스트가 가격 듣더니 좀 애매한 얼굴로 “그래, 그래도 그랩택시보단 나으니까…….”라고 반응했다. 아나, 차라리 처음처럼 '이 정도면 싼 거'라고 하지! 마음 다 잡았는데 괜히 아깝게 왜 그러세요. 그래도 진짜 가고 싶었던 곳 편하게 다녀왔으니 됐다.


잘 가, Duc. 베트남사람들은 Duc를 덕이 아니라 덱이라고 읽는다.
Ahh, Gery, 쓰어다 믹스 한 박스 구입


빅씨마트 달랏점 바로 옆에 있는 도하 카페DOHA Cafe로 갔다. 어우, 에어컨이 없으니 환경 보호에는 좋겠지만 더워서 미치는 줄 알았다. 2층 올라갔는데 선풍기 몇 대가 겨우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없고 베트남 사람들은 나보다 더위 덜 타지 싶어서 선풍기 하나를 아예 내 쪽으로 돌렸다.


조금 진하던 카페 쓰어다
노래 들으면서 핸드폰 충전 중
의자도 편하고 여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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