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사 공부를 하고, 자격을 취득하는 경험을 하면 도파민 분비가 급증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약간 중독의 증상을 보이게 되죠. 기술사병이랄까요? 이 병의 특징은 늘 뭔가 배우고, 공부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 본인만 뒤쳐지는 기분이 들면서 불안해집니다. 취미가 독서, 관심사는 다른 기술사가 하고 있는 공부 엿보기. 공부가 주는 쾌락에 중독된 환자들이죠. 그래서 제가 아는 기술사분들은 기술사를 한 종목만 보유하고 계신 분보다 다관왕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저와 친한 기술사 3관왕 동료는 오랜만에 만나면, 안부인사를 하고 항상 물어봅니다. '요즘은 무슨 공부하세요?'라고요. 그 역시 4번째 기술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술사병을 앓고 계신 분들은 공감하실 겁니다. 그렇게 저도 건설안전 기술사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18년 토질 및 기초기술사를 10년 만에 취득하고 난 후, 방황했습니다. 물론 2019년부터 박사과정에 입학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목표가 없는 상황은 퍽이나 막막했습니다. 그때 당시, 건설안전기술사 합격율이 10%를 넘었고, 전회 111명 합격(합격율 17%)시킴으로써 정점을 찍었습니다. 건설 관련 경험과 공부가 오래된 저로서는 특별히 공부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짧고 굵게 기술사 3관왕 가즈아!라고 시작했지요. 아주 거만했었습니다.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됩니다.
주식투자 하시는 분들이 많이 하시는 말 있잖아요. 본인 주식을 사면, 그 주식이 꼭 떨어진다는. 아니나 다를까, 제가 공부를 시작한 2019년 3차 시험부터 건설안전기술사 합격율이 고꾸라지기 시작합니다. 저의 불순한 의도를 혼내듯 말이지요.
건설안전기술사는 산업안전보건법이 핵심인 기술사입니다. 근로자 안전을 위한 작업방법, 작업환경, 장비, 보호구, 안전시설물 등이 관련내용인데요. 2020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이 됩니다. 건설안전기술사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격동의 2020년이었습니다. 관련법과 제도, 규정이 계속 바뀌고, 지속적인 시사, 이슈에 대한 문제들이 출제되었습니다. 이후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시행되면서, 안전은 건설업 최대 이슈로 떠올랐고, 관련제도는 지금도 지속적으로 개정되고 있습니다.
합격률만 보고 무모하게 시작했던 저는 2019년 3차 시험에 가벼운 마음으로 일주일정도 안전키워드만 외우고,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물론 시험 보기 전 2달간 일요일만 열리는 안전기술사 강의를 수강했습니다. 강의라기보다 최신 기출경향 분석을 엿듣고, 강사가 제공하는 서브노트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미 답안작성 틀이 잡혀있던, 저는 안전에 대한 주요 내용만 알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시험점수 57점. 공부량이나 시간대비 잘 나온 점수였죠. 60점이면 합격이니까, 다음시험 합격을 자신했습니다. 2020년 1차 시험, 59.4점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뒤 2차, 3차 시험도 57점 언저리.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건설안전기술사 강사가 제공한 답안보다 잘 썼다고 자부했는데, 점수는 상승하지 않았지요.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물론 2020년 1차 시험부터 6.5%, 4.9%, 3.7%까지 합격율이 감소했습니다. 대충 1000명 가까이 시험을 보는데, 100명 정도 뽑다가 37명까지 줄어든 것입니다. 그 후 시험을 치르지 않았습니다. 떨어지는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시험을 보는 것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기술베이스인 저와 안전은 맞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늘 그곳을 향해 있었습니다. 답답했지요. 뭐가 문제인 걸까? 그 답을 제 안에서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때까지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규칙 한번 제대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건설안전기술사 강의를 했던 강사의 서브노트를 통해, 건설안전 전반을 이해하려 했거든요. 안전업무에 무지했던 저는 그 차이를 몰랐습니다. 어떤 공부든지 기본이 먼저입니다. 어리석은 저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던 거죠.
2021년에도 합격율은 2.2%까지 떨어져, 전문기술사 보다 합격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냥 저의 길이 아니라고 자위하며 시험을 접으려던 때, 2022년 1차 시험 합격율이 16%까지 치솟습니다. 역대 최대합격자(110명 합격) 수준이었습니다. 시험을 계속 봐야 하는 이유가 이런 잭팟을 두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2022년 2차 시험에 다시 응시했습니다. 5번째였지요. 오만했던 저는 이렇게 혼줄이 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때의 저는, 과거의 저와 조금 달랐습니다. 블로그 이웃님의 기출문제 풀이답안을 보고, 왜 그동안 합격하지 못했는지, 57점 답안만을 썼는지 바로 깨달았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다시피, 2020년은 건설안전분야에 있어 격동의 해였습니다. 제가 가진 강사의 노트는 과거 안전보다 기술 쪽에 치우진 답안들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안전전문가가 부족하다 보니 기술베이스의 안전기술사들이 주류를 이뤄 기술문제가 많이 출제되었습니다. 그 기조가 2020년을 기점으로 바뀝니다. 안전에 중점을 둔 문제들이 주류로 등장하고, 그 답안의 깊이 또한 매우 깊어졌죠. 몰랐습니다. 단 한 번도 산업안전보건법을 제대로 본 적도 없었으니까요.
블로그 이웃님은 안전에 관한 전반적인 법과 제도, 규정을 잘 버무려 답안을 정리해 놓으셨고, 안전기술사 다운 답안이 이것이구나를 보자마자 깨달았죠. 그때 법과 규칙을 다시 보았습니다. 안전보건 자료도 보고, 블로그 이웃님의 답안을 보며, 답안의 틀을 다시 잡았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저의 마음자세였죠. 안전이 무엇인지, 왜 이런 법령과 규칙을 만들었는지, 정부의 정책방향이 왜 그러한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공부를 한 겁니다.
하지만 시험에 또 낙방했습니다. 또, 59점이었죠. 합격인원은 9명. 전회 합격인원 110명이었는데... 저에게도, 선발을 주관하는 기관에도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렇게 합격인원을 운영하는 것은 좀 아마추어 같지 않나? 하면서도, 결국 그 1% 안에 들지 못한 제 실력을 탓했습니다. 그래도 걱정은 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공부방향을 제대로 잡았고,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않았거든요. 시험을 보다 보면 합격하는 날이 올 거라 자신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시험, 합격률 1% 안에 들어 합격했습니다. 응시인원 925명 중에 10명이 합격, 그 10명 중의 한 명이 되었습니다. 이 때는 공부보다 시험을 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앎의 문제가 아니라 채점의 문제였으니까요.
저처럼 건설안전기술사 57~59 트랩에 갇힌 분들이 제법 많습니다. 더욱이 기술사 종목 중 응시인원 최대규모 종목(약 900~1000여 명)이다 보니, 시험 횟수가 증가할수록 답안의 퀄리티가 향상되어 경쟁은 더 치열해졌습니다. 최저 1% 합격율 이후 상승추세에 있긴 하지만, 5%가 안 되는 합격율은 많은 수험생을 지치게 하고 있습니다. 실력이 모자라기보다, 합격인원 관리 때문에 이미 합격권에 계시는 분들이 떨어지고 있으니까요. 이미 기술사이신 분들입니다. 답안의 틀을 보는 관점을 조금만 고민해 보십시오, 반드시 합격하실 거라 믿습니다.
건설안전기술사는 제가 이 책을 쓸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해 준 기술사입니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관점을 조율하게 해 주었고, 시험응시를 반복하면서 스스로를 단련하게 해 주었습니다. 답안의 틀과 전반적인 개념의 이해 잡는 방법 등, 바뀌는 트렌드에 민감한 기술사는 도전하지 않는 것이 좋다... 는 것도...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저는 기술사 3관왕이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묻습니다. 이제 뭐 할 거냐고요.
당장은 책 읽고, 글 쓰는 여유를 부리고 있습니다만,
과연 공부를 접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