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 Apr 20. 2024

아부다비에서 온 편지(12)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2)

어제 오후, 한참 요가수련 중인데 1층에서 아이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엄마, 빨리 좀 내려와 봐.”

하도 급해 보여 내려갔더니, 웬걸.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온 아이들... 낮동안 무료함을 못 견딘 아이들이 동네 친구들을 불러 모아 바닷가를 다녀온 것이었다. 물고기를 잡아온 것으로도 모자라 둘째 아이는 너무도 맑은 눈망울로 오늘 저녁 반찬을 이 물고기로 해달란다. 나참..

그나저나 물고기를 살펴보니 죽은 지 한참은 되어 보였다. 내 반응이 시큰둥했는지 아이들은 물고기를 가지고 다시 밖으로 사라졌다.


오늘 아침엔 일찍이 햇빛을 쬘 겸 맨발로 바닷가에 나갔다. 이미 나보다 더 일찍 나온 사람들이 보였다. 최대한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차림으로 언제나처럼 해변을 걸었다.

며칠 전 기습폭우 탓인지 바닷물이 그리 깨끗해 보이진 않았다. 쓰레기도 떠밀려 와 있었다. 무심코 걷는 중에 저 멀리 수영복차림의 엄마와 아기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바닷가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나는 너무 신기해서 조금 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부다비에 와서 처음 보는 광경에 나는 가슴이 뛰었다. 열심히도 줍고 다니던 경주에서의 삶이 떠올랐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 저 사람은 누굴까? 궁금해졌다. “굿모닝.”우리는 서로 눈을 보며 인사했다. 아부다비 와서 정말로 마음을 다해 깊은 굿모닝을 보냈다. 내겐 정말 ‘좋은 아침’인 순간이다.

내겐 정말 ‘굿모닝’이었던 순간.

그 옆으로는 해변 청소부 아저씨 한 분이 또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이곳 프라이빗 비치를 관리하는 분. 사람들은 청소부 아저씨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굳이 ‘쓰레기를 주워야지.’ 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 속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또 걷다 보니 해변가에 죽은 물고기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어제 아이들이 잡아 온건 떠다니는 물고기였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곳 바다도 점점 더 뜨거워지고 쓰레기가 이리도 많으니... 바다가 예전의 그 바다가 아닌 것이다.

떠밀려 오는 물고기.

해변가에서 해맑게 뛰노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리고 여전히 쓰레기를 줍고 있는 청소부 아저씨와 조금 전 수영복 차림의 아기와 엄마...

모두 다 쓰레기를 줍고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 저 아줌마는 어떤 분일까?

그리고 누가 시킨 일이지만 열심히도 쓰레기를 주우시는 해변 청소부 아저씨는 함께 쓰레기 줍는 모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멀찌감치 걸으며 본 풍경이 앞으로의 삶을 떠올려보게 하는 아침이다.

쓰레기 줍는 청소부 아저씨와 두 모녀


아이들이 깔깔대며 바닷가를 뛰논다.

또 새들도 먹이를 찾아 해변가를 걷다 날다 한다.

모두 함께 잘 살 수는 없을까?

잘 산다는 건 뭘까?

나는 또 어떤 방법으로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며 지낼까?

많은 마음들이 바닷가에 둥둥 떠 다닌다.

바다를 거닐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새.

다음번 걸을 때엔 아이들과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와야겠다. 누가 시키진 않았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아부다비에서 온 편지(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