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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Feb 23. 2022

영화 같은 삶과 그 이야기

소중하기 때문에 기적이라 부르는

비뚤어진 자세만큼 비뚤어진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저울질할 때가 있습니다. 굽은 어깨와 구부정한 자세로 남들과 똑같은 세상을 바라보지만, 왠지 나에게는 어딘가 불편하기만 합니다. 창밖을 통해 바라보는 각진 세상이 눈에 담기에 아직 버겁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나만의 좁아터진 시야에 세상을 욱여넣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나와 다른 성질의 색깔, 맛, 냄새까지 겁도 없이 마음에 들이는 일, 흔해빠진 사랑 노래를 듣는 일, 내 주변 사람의 언어와 몸짓을 조심스레 관찰하는 일도 어려워 사뭇 경직되고 맙니다. 사소한 눈과 코, 머리의 움직임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네요.



발걸음의 보폭, 시선의 방향이 닿는 곳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바라보는 '현실'이 있습니다. 같은 곳에서 나와 다른 삶이 바라보는 현실에 긍정하기도, 부정하기도 어려운 것은 섣부른 감정에 몸과 마음을 태우기에 아직 나의 껍질이 단단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똑같이 청회 빛 겨울을 지나지만 누군가는 냉랭한 도시의 그을음을, 또 다른 이는 한 움큼의 낭만을 품고 세상을 관조합니다.



저마다 꽤 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그런 '현실'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흥행' 보증을 찍는 영화가 있다면 개봉도 못한 채 미래가 불투명한 저예산 독립영화도 있습니다. 성공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나 인기를 끌 소재가 없어 '가망'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영화. 그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는 기분은 어떨까.


태어나기 전부터 세상이 너무나 궁금했던 주인공에게 탄생 이후의 현실은 버겁기만 합니다. 절정 없는 영화가 재미없다고는 하지만 평탄한 길만을 바라는 주인공에게, 현실은 불편함이라는 무게에 짓눌린 짐과도 같았습니다.


탄생의 설렘을 느끼기도 잠시, 어느새 태엽인형처럼 되감기를 반복하는 하루 속에서 비뚤어지는 시선과 함께 긍정했던 이전의 감정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고마워했던, 사랑했던 감정마저도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추어 자신을 바꿔가면서 금세 싫증이 나 '기대'하지 않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모양의 마음과 성격을 서로 맞추어 나가며 상처 난 생채기. 다치고 데인 감정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으며 스치고 지나가다 마주친 문구가 있습니다.



"실망했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연에서 예기치 못한 기쁨을 느끼기 위해 기대하지 않는 것"


- 만남은 지겹고 이별은 지쳤다 中



내 마음의 껍질을 단단하게 하는 것으로 인생의 불행을 옅게 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답은 결국 내 안에 있다고. 기대가 적기 때문에 내 인생은 더 좋아질 거라고.



인생을 긍정하는 일로 스스로를 키우는 연습을 해봅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매력을 가진, 아픈 삶을 한 편의 영상으로 그려내서 더 인생 같은 독립영화의 관객이 적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남들이 보는 것을 보고, 듣는 것을 듣고, 서로 가진 다양한 모양의 성격과 마음이 맞물리는 기적을 느끼고 그 하루의 나를 다시 긍정해 봅니다.


터질 듯한 감정이 없어도 여전히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소중한 감정이 있음을 느끼고, 알고, 또 되뇝니다. 매 순간순간마다 소중함을 잊지 않고 살아가면 다행이지만, 그건 너무나 힘든 일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고마워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기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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