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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Mar 17. 2024

33. 우물 안 개구리.

왜 그런 치료를 했어요?

빅 5에서 인턴과 전공의 수련을 하다 보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십상이다. 무슨 이야기냐면, 이 병원이라서 가능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에 대해서도 모르고, 이 병원이니까 환자나 보호자들의 태도가 그렇게 협조적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입은 가운의 마크가 나를 지켜줬다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 잘 모른다. 나도 그랬다. 내가 있던 곳에서는 당연하던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으며 내가 누리던 환경 자체가 정말로 안온했음에 대해서도 뒤늦게 깨달았다. 이 글은 오만했던 그 시절의 내 모습에 대한 반성문이다.


"아니 왜 그 약을 썼어요?"와 같은 질문을, 전원문의를 받으면서 타 병원 의료진에게 했던 적이 있다. 몰랐다. 패혈성 쇼크 가이드라인에서 한참 전에 빠진 도파민을 왜 요양병원에서 계속 쓰시는지를. 왜 그것도 계산하기 어렵게 몇 앰플을 수액 1L에 섞어서 몇 gtt로 주신다는 식으로 쓰시는지를. 쓰자면 노르에피네프린이 1차 약제고, 굳이 도파민을 쓴다면 프리믹스 제형이 있을 텐데. 몰랐다. 노르에피네프린이 비치된 요양병원이 거의 없었고, 도파민 프리믹스 제제는 비싸서 당연히 믹스해서 쓴다는 사실을. 정말 나는 몰랐다. OTC 결핍증(ornithine transcarbamylase deficiency)이라는 희귀병 환아에서 급성기 증상으로 혈중 암모니아 농도가 올라갔을 때  사용하는 벤조산나트륨(Sodium benzoate)이라는 약품이 다른 병원에는 없을 수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래서 전원을 받으면서 왜 그 약을 쓰지 않았는지를 의아해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요양병원의 환자를 같이 이송했던 적이 있었다. 휴가에 내려가서 저녁밥 한 술 떠먹던 중에 아버지의 환자가 혈압이 떨어지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진다는 전화가 왔다. 못 삼키고 사레들려서 콧줄로 식사하시고, 투석을 주 3회 하는 만성 콩팥병 환자. 누워 지내시는 분. 누워서 지내게 되는 환자들은 흡인성 폐렴과 요로감염, 그리고 욕창과 그에 동반된 피부감염 3가지를 반복적으로 겪게 되는데, 이 환자분이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나도 따라가자고 하셔서 함께 가면서, 스피커폰으로 지시를 내리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데, 왜 약이 이렇게 없지, 왜 이렇게 안 되는 게 많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왜 주사는 하나밖에 못 잡겠다고 하는 것이며, 그놈의 도파민밖에 없으며, 항생제는 왜 타조페란(piperacillin-tazoperan)도 메로페넴도 없고, 뭔 약이 없냐. 검사라도 좀 할 수 있는 게 없나 물어봐도 야간에 바로 할 수 있는 검사도 없었다. 빠른 이송만이 답인 상황. 가서 정맥주사라도 하나 더 확보했으면 좋겠는데, 환자 혈관 상태를 보니 어지간한 나도 엄두가 안 나는 정도로 혈관이 없었다. 빨리 옮기자. 그게 답이다.


보호자에게 전화해서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고, 이송을 결정하고 소견서를 다 쓰신 아버지와 함께 구급차에 동승했다. 그 사이 온 보호자에게 아버지는 나를 빅 5에서 일하는 응급의학과 의사 딸이라고 소개하셨고, 동승하는 것에 대해서 동의를 받았다. 사설 구급차 안도 솔직히 열악했다. 혈압계는 고장 났는지 작동이 잘 안 됐고, 산소만 간신히 주면서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얼마 안 되는 그 길이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혈압 모니터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환자의 맥박을 짚으면서 가늠할 수밖에 없었고, 환자에게 계속 말을 걸면서 자극을 주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송 중에 그나마 하나 있던 정맥주사가 붓기 시작했다. 수액도 승압제도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송까지는 한 10분이 남았다고 하는데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보호자에게 도착하면 바로 접수대로 가서 접수부터 빠르게 하시도록 부탁드리고 아버지께는 환자 옆에 계셔달라고 했다. 본가의  대학병원은 언제나 과밀화된 곳이었기에, 구급차들이 이미 늘어서 있었고 대기가 길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었다. 그곳 응급실은 의사가 환자분류소에 바로 나와 있는 시스템이었다.


저 응급의학과 의삽니다. 이 환자 흡인성 폐렴으로 패혈성 쇼크가 온 것 같아요, 오는 동안에 주사가 부어서 수액도 승압제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혹시 혈관확보라도 먼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혈압계도 작동이 안 되어서 모니터링을 못 하고 왔습니다. 바이탈 한 번만 먼저 측정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피로에 상당히 찌들어 보이는 응급의학과 선생님께서 일단 알겠다고 간호팀에 정맥주사 확보를 요청했다. 그런데, 승압제는 왜 도파민을 썼냐, 수액은 얼마가 들어갔으며 항생제는 뭘 썼냐를 묻기 시작했다. 내가 주치의는 아니기에 전원문의 여부는 모르겠고 소견서는 갖다 드리겠다고, 나머지는 내가 파악한 대로 대답을 하는 중에 그 역시 나와 같았다. 왜 이런 약을 썼냐고. 선생님, 요양병원에서 쓸 수 있는 약은 많지 않아요 짧게 응수하는 동안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아 바로 중증구역으로 옮겨졌다. 아버지는 환자 상태에 대해서 담당의에게 마저 인계를 하셨고, 보호자에게도 인사하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딸이 든든했다고 하시는 와중에 아버지께 이야기했다. 몰랐다고. 이때까지 왜 이런 약들을 쓰고 이렇게 처치를 안 하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할 수 있는 게 정말로 없기는 없었다고.


일했던 직장들이 대학병원들이었기에, 아직 나는 더 큰 강호의 세계를 완전히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빅 5를 조금만 벗어나도 많은 것이 달랐다. 환자군 자체도 달랐지만, 병원 안에서 할 수 있는 처치와 입고된 약물의 종류도 달랐다. 삭감되는 것을 알면서도 썼던 급성 장염의 심한 구토에서 썼던 온단세트론도 쓸 수 없어서 답답했던 적이 많았다. 당연히 병원에 비치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3% 염화나트륨 수용액(심한 저나트륨 혈증에서 사용한다)도 없어서 생리식염수에 11.7% 염화나트륨 앰플을 타서 농도를 맞춰 써야 했다. (수포자였던 사람으로서 고역이었다.) 심정지 환자에서 정맥주사가 잡히지 않아 골강 내 주사를 잡으려고 하는데 늘 쓰던 EZ-IO라는 기계 전용 바늘이 다 떨어졌다고, 기기상으로부터 데모 버전을 받은 것이라 사용을 할 수 없다고 하여 없는 대로 뇌척수액 검사용 바늘로 주사를 잡은 적도 있었다. 골다공증이 심한 환자는 마치 두부처럼 바늘이 쑥 들어가서 스스로도 놀랄 지경이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았다. 내가 처방을 내리면 당연히 있던 것들이 없었고, 이미 나를 제외한 모든 이가 그것이 없음에 대해서 완벽하게 적응한 상태였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나였다.


그래서 요즘은 다른 곳에서 전원을 받거나 할 때 그곳의 사정에 대해서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되었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기에 오만했고, 그런 건방진 나의 말에 기분이 상하셨을 다른 병원 선생님들께 이 지면을 빌어 깊은 사과의 말씀을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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