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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음 May 29. 2024

연못은 힘이 세다

나의 사랑, 나의 연못



  글은 쓸수록 글을 불러와서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것 같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고 읽기만 하다가 막상 글을 쓰려했을 때는 좀처럼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고 몇 편의 글을 쓰면서부터는 길을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가만히 앉아 있을 때도 글감이 떠올랐다. 문장이 떠올랐다. 지금 쓰고 있는 문장들도 조금 전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떠오른 생각들이다.

 

  아침에 도서관에 오면서 도서관 앞에 있는 연못 그네에 앉아서 땀을 식혔다. 날씨가 제법 덥다. 그늘은 시원하지만, 태양볕은 뜨거워 아침부터 땀을 흘린다. 버스에서 도서관까지 10분 정도의 거리지만 그늘보다는 햇빛에 몸이 더 드러난다. 비타민 D를 보충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들이다. 그렇지만 땀에 젖어서 도서관에 들어가기도 그렇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연못을 바라보는 것도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는 꿀템이라 그네에 앉는다. 


  그네는 연못을 등지고 있다. 그네에 앉으면 연못이 바라다보이지 않고,  그네에 앉아 발을 구르면 푸른 하늘이 내다보인다.  그네에 앉으면 연못이 보였으면 했는데, 속상했다. 그런데 금방 스친 생각. 아이들이 그네를 타다 혹시 연못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 같다. 그나저나 나는 이 그네에 앉아서 책을 읽기도 하고 그네를 타며 어린 시절에 못 탔던 그네를 하늘 높이 띄우며 깔깔거려 보기도 한다. 어릴 적에는 그네를 타다 떨어져 팔이 부러지거나 다리를 다칠 것을 걱정했다. 다칠 것보다는 내가 다치면 치료할 수 있는 돈이 없는 가정 형편을, 엄마의 몫을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그네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엄마를 걱정했던 마음이 떠오른다.  착한 서글픈 감정이다. 지금은 오기를 부리면서 그네를 탄다. 높이높이 탄다. 저 하늘 끝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을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를 꿈꾸며, 그때로 돌아가면 무서워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면서, 아쉬운 그네를 탄다. 


  연못 바라보기를 좋아했다. 경기도 외곽의 대학에서 늦깎이 대학 시절을 보내던 때였다. 낮은 산 아래에 연못이 있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수업을 마치고 나와서 나무의자에 앉아 연못을 바라봤다. 연못에는 붕어들도 있었고, 가시연꽃이 있었고, 오리들도 있었다.  오리들은 경비아저씨들이 키우는 거라 했다.  물속을 자맥질하며 먹이를 찾는 오리를 보고 있노라면 잠수를 해서 진주를 캐낸 사람이 떠올라 나도 연못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어보고 싶었다. 진주를 손에 들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손에 진주가 아니라 책을 들고 강의실로 향하곤 했다. 연못 가장자리에는 노란색과 보라색 붓꽃이 피고,  연못 둘레에는 쩔쭉꽃이 피었다 졌다. 나무의자 옆에는 벚꽃나무가 그늘을 드리워 주었다. 이 의자에 앉아 연애를 시작한 남편과 어깨를 두르고 찍은 사진이  있다. 


  딸과 아들을 데리고도 자주 연못을 찾았다. 학교 앞  열 평 원룸에서 네 식구가 살면서 공부하는 남편을 두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슬픔이 나를 짓누를 때, 내 삶이 남편과 아이들에게 저당 잡혔다는 생각으로 울적할 때, 건강하게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기쁨을 만끽할 때, 언제나 연못은 내 곁에 있었다. 연못은 언제나 나의 쉼터요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한없이 연못을 바라보고 웃고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평안이 찾아왔다. 고요한 연못을 바라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차분해졌다. 추운 겨울, 꽁꽁 얼어붙은 연못이라도 상관없었다.  연못 앞에 서면 세상의 모든 시름 사라지고 고요해져서 마음의 평안을  얻어 세상을 향해 다시 나아갈 힘을 얻었다. 작은 연못은 그렇게 힘이 셌다. 나약한 나는 힘이 센 연못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이곳 소읍에 와서 연못을 만났다. 내가 사랑한 연못이 이곳에서도 나를 반겨주었다. 비록 이곳의 연못은 청소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풀과 쓰레기들이 연못을 더럽히고, 속은 들여다보이지 않지만, 꽁꽁 얼었던 연못이 연못이었듯 더러운 연못도 나의 연인이 되었다. 연못 둘레를 걷는다. 연못 옆에 서 있는 나무 위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예쁜 목소리를 가진 새다. 새의 노랫소리가 우리 아이들의 웃음소리처럼 싱그럽고 청량하다. 연못 속에서 개구리들이 합창을 한다. 연못은 살아 있다. 나도 살아 있다. 연못은 제 자리에서 나는 내 자리에서 삶 앞으로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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