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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음 Jun 04. 2024

율리와 괴물

화장실에 괴물이 있어요

   <율리와 괴물> 그림책은 크리스턴 보이에가 글을 쓰고 유타 바우어가 그렸다. 옮긴 이는 카테리나 스티그리츠이다. 글과 그림 그리고 옮긴 이가 모두 외국 사람. 글과 그림은 외국인이 맞겠지만, 흠, 옮긴이가 외국인이라! 옮긴이를 잘못 표기했나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문학동네에서 그런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다시 생각하고 표지를 넘겼다. 역시 옮긴이 '카테리나 스티그리츠'는 미국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한국인 남자와 결혼하여 지금은 전라북도 익산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번역은 우리말에  가까워 쉽게 잘 읽혔다



   율리는 유치원에 가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오라는 엄마의 말을 듣지만 화장실에 갈 수가 없다. 화장실에 괴물이 살고 있는데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 율리는 화장실에 가고 싶지만, 괴물이 엉덩이를 물어버릴 것 같은 무서운 마음에 발가락에 힘을 주고 참는다. 엄마는 그런 율리에게 유치원에 갈 때까지 오줌을 싸면 '절대' 안 된다고 다짐에 다짐을 받는다. 


   유치원에 도착한 율리는 어서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엄마는 엄마가 해야할 것을 다 하고 동생을 안고 돌아간다. 번개처럼 뛰어 화장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율리는 유치원 화장실에도 괴물이 있을거라는 생각에 교실로 뛰어가 화장실에 함께 갈 친구를 찾는다. 

"아르네, 나랑 화장실 안 갈래?" 하는 사이 선생님이 들어오고, 선생님은 악수를 먼저 시키고 

"화장실은 혼자 가는 거 알지?" 



   어제 함께 화장실에 갔던 니나랑 카트린은 갈 수가 없다. 선생님께 들켜서 혼났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노느라 율리와 화장실에 아무도 가지 않았고, 율리는 교실에 선 채, 바지에 오줌을 싸고 말았다.

율리와 작은 오줌 바다!

선생님은 율리를 데리고 교무실로 가서 속옷과 바지를 갈아입게 했다. 교실로 돌아온 율리에게 아이들은 '오줌싸개'라고 놀렸다. 율리는 아이들을 넘어뜨렸고, 선생님은 율리를 혼자 벌을 서게 하고는 아이들과 밖으로 나가버렸다. 



   혼자 남은 율리에게 "이건 비밀인데, 나도 바지에 오줌을 싼 적이 있어."하고 카트린이 다가와 말한다. 율리는 변기 속에 괴물이 있다는 말을 하고 카트린은 자신의 집 화장실에도 있었던 괴물의 머리에 오줌을 갈겼더니 괴물이 도망가 버렸다고 비밀을 알려준다. 율리는 집에 돌아와 화장실로 간다. "당장 꺼져 버려. 이 괴물아, 안 그러면 오줌을 싸 줄 거야. 에잇!" "쏴아--" 그리고 괴물은 영원히 사라진다.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거나 화장실에 괴물이 있다고 생각한 아이들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화장실에 가고 싶지만 변기 속에서 괴물이 나타나 엉덩이를 물어버릴 것 같은 두려운 마음 때문에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변기에 앉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변기와 연결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물웅덩이만 보일 뿐이다. 일을 보고 물을 내리면 시끄러운, 무언가 빨아들이는 소리와 함께 감쪽같이 사라진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쑥 잡아 당겨버리는 변기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무서운 것이 어찌 변기뿐이겠는가. 문을 닫고 혼자 있어야한다는 점도 눈여겨보아야할 부분으로 읽힌다. 어른도 혼자는 무서운데, 아이들에게 혼자는 무슨 일이 생겨도 어디에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갇힌 마음이 들 것이다. 그래서 율리는 화장실에 혼자 가려고 하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가기를 원했고, 율리가 혼자 벌을 서고 있을 때, 카트린이 와서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그것도 자신도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율리의 상처 난 자존심에 약을 발라주면서. 


   나도 초등학교 1학년 때, 교실에 선 채로 오줌을 쌌다. 일곱 살에 학교를 들어갔지만, 양력으로 12월 25일이 생일인 나는 여섯 살이나 다름 없었다. 나는 화장실에 괴물이 나올까 봐 두려워했던 것이 아니라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다급해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과 책상 사이에 섰을 때, 오줌이 나왔다.  율리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어떻게 할 수 없이 시원하게 오줌이 나온 것처럼 나도 그랬다. 바닥에 고이는 오줌을 쳐다보면서 엉거주춤 서 있던 내 모습이 율리와 겹쳐진다. 


   나는 오줌싸개라는 별명을 얻지 않고 남은 학교를 잘 다니고 어른이 되었다. 율리처럼 화장실을 무서워하는, 혼자라는 사실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게는 좋은 책이다. 어쩌면 더 많고 깊은 뜻이 숨어 있을 테지만. 나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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