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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음 Dec 23. 2021

J에게 2

삶의 편린 들을 읊다


     J야!     

    어제 쓴 편지를 오늘 부치려고 하는데 언제 도착할지는 알 수 없구나. 나는 직장에 매인 몸이고 여긴 시골이라 가까운 곳에 우체국이 없는 탓에 이모부가 오늘 부쳐주기로 했단다. 

이곳은 어제 약 1시간가량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요란했어. 어느 지역에서는 우박이 왔다는 소식도 있었는데, 네가 있는 진주는 어떤지 모르겠구나. 빗방울이 너무 굵어서 우박인가 헷갈릴 정도였는데. 아무튼 무섭게 비가 오더구나. 인간들이 생태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 아니겠니.     


    잘 지내고 있지. 어제도 말했지만, 잘 못 지내도 잘 지내야 한다!   

  

   어제 어디까지 이야기 했더라. 그래 한신대 문창과에 편입했다는 이야기까지 했지. 3학년에 편입해서 1년 정도 다니고는 이모부를 만나 학교를 다 끝내지 못하고 결혼을 했네. 그런데 1년 학교 다니는 그 시간이 삼십 해의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너무나 행복해서,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생각과 이 행복이 깨져버릴까 두려웠다. 그래 두려워할 정도로 행복했었어.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수업시간에 수업 듣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기숙사 문을 잠그는 밤 11시50분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도서관에서 기숙사로 걸어오면서 올려다본 밤하늘에서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거렸어. 밤공기는 상쾌하고 나는 걷는 게 아니라 날고 있는 기분이었지. 지금도 그날이 생생히 떠올라서 그때의 행복한 마음이 가슴을 찌른다. 열여섯 살부터 서른 살까지 내가 원치 않은 삶을 살다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을 거다.      


    걱정했던 대로 행복은 깨졌어. 이모부를 만나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느라 학교도 다 마치지 못했단다. 4학년은 진희를 낳고 진희를 데리고 다니면서 학교를 마쳤어. 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모부는 가난한 신학생이었고 지금도 가난한 목회자란다. 우리는 10평짜리 원룸에서 이모부는 대학을 다니고 나는 아이를 키웠어. 뒤돌아보면 참, 뭘 먹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시댁과 친정에서 먹을거리는 보내 주셨어. 시어머니는 주로 반찬을, 우리엄마는 쌀을 택배로 보내주셔서 먹고 살았지. 그리고 시어머니가 보내주시는 70만 원이 한 달 생활비였지.      


    아이들 옷도 사 입히지 못하고 다른 아이들이 입은 옷을 물려받았고, 내 옷은 당연히 예전 옷을 입거나, 그래 너희 엄마나 다른 이모들이 가끔씩 사서 보내주는 옷을 입었어. 이런 가난이 나는 싫지 않았단다. 이모부와 결혼하겠다고 생각했을 때도 가난하게 살 것을 알았고 그 사람의 근면성과 검소함을 사랑했어. 그리고 당당함을 좋아했지. 그 옆에 서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펴지고 당당해졌거든. 그래서 경제생활 전선에 뛰어들지 않고 적은 소비를 택했지.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단다. 마음은 언제나 부자였거든. 내가 공부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배우자도 공부하는 사람이기를 바랐었어. 가난했지만, 이모부도 대학원까지 다녔고, 나도 여기 완주로 내려와서 대학원을 다녔지. 논문을 마치지 못해 수료 중이지만. 곧 논문을 써서 졸업을 해야겠지.   

  

    J야!

   나는 결혼해서 살면서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지 못하고 카페 한번 가보지 못했고, 연극이나 영화관에서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했지만, 후회하지도 않고 안타깝지도 않으며, 속상하거나 억울하지도 않단다. 옷은 몸을 가릴 수만 있으면 되고, 먹을거리는 배가 고프지만 않으면 되지 않겠니. 연극이나 영화 대신 책을 읽었어. 책 속에 모든 길이 있다는 말, 맞는 말이야.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뼈저리게 깨달은 때가 있었어. 이 이야기는 내일로 미룰게.      


    너도 너희 부모님 사시는 것 보면서 결혼생활이 맨날 행복하고 평화로울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힘든 날의 연속이었지. 가난해서가 아니라 30년 넘게 각자의 인생, 다른 환경과 다른 가치관을 가치고 살았던 두 사람이 만나 한 공간에서 한 방향을 바라보고 걸어가야 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 다투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그러다 웃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한 날들이지. 그래, 그래서 인생 아니겠니. 힘든 날들이 있기 때문에 웃을 수 있고 행복을 느낄 수도 있지 않겠니.     


    사람이 자존감이 바닥일 때가 있지. 나도 농협에 다닐 때까지는 자존감이 바닥이었어. 농협 직원 중에서도 고위직 사람과 비교하면서 나는 그 사람의 발가락의 때만큼도 안 된다고 나를 깎아내렸지. 나 스스로 나 자신을 사람 취급을 하지 않고 살아서 어디를 가든 나는 하찮은 사람, 어깨를 움츠리고 한쪽으로만 걸어 다니는 사람으로 살았단다. 그러나 한신대학을 다니고 책을 읽고, 유명한 소설가인 임철우 교수님 그리고 이모부를 만나면서 사람은 누구나,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 그래서 굽었던 어깨도 펴지고 그늘졌던 얼굴이 환해졌어.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당당해졌어. 비단옷이 아니어도 예쁘게 화장을 하지 않아도 내 모습이 아무리 초라해도, 어느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수가 있어 졌단다.  

    

    J야!

   혹시 너도 나처럼 자존감이 바닥은 아니더라도 무슨 일에든 자신이 없고 두렵고 무섭거나 너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너 자신에게 물어보도록 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 그리고 죽는 것 말고 세상에 무서울 것이 무엇이 있겠니. 세상 앞에, 네 삶 앞에 당당히 서는 네가 되기를 바라. 말을 하고 생각을 하면 그것이 그렇게 되더라. 너는 멋지고 당당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늘 갖고, 너 자신에게 말을 하면서 살기를 바라. 그러면 그렇게 살게 되더라. 

너무 긴 글이어서  지루하지 않는지 모르겠구나. 내일 또 보자. 안녕.


                                                                                      2021.6.29.(화)넷째 이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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